사이비 무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예인이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휴대전화로 무술 관련 커뮤니티를 살피다 보면, 종종 ‘진정한 사이비 무술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접하게 된다. 영상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손을 대지 않고도 공격해 오는 상대를 쓰러뜨린다거나, 매우 편안한 상태에서 공격자를 제압하는 등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동작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행태가 왜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니, 주로 대외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종목들이 자신들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러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실전성이나 객관적 검증이 부족한 만큼, 과장된 연출로 신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합기도 역시 한때 이와 유사한 사태에 빠질 뻔하여 많은 수련인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합기도는 분명히 실용성을 인정받아 왔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제도권 내 무도 종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련되었고, 서로 다른 두 유파가 차례로 경호실에서 채택될 만큼 공신력을 인정받은 무예였다. 더 나아가 경찰과 군부대 채용 시험에도 채택되며 실전성을 검증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사적 노력과 검증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술기의 고수라 착각하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수련하는 작태는 결국 고립과 도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극진가라데의 오야마 마스타쓰 총재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이 있다.
“실전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받을 수 없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며, 모든 무예인이 새기고 수련해야 할 명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무예의 존재 이유가 양생(養生)에 있다면 굳이 실전, 증명, 신용이라는 개념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무예의 성격이 실전 지향적이라면, 수련과 홍보 역시 실전 지향적이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실전보다는 정신 수양이나 레크리에이션에 더 비중을 두고 무예를 수련한다.”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라 하더라도, 만약 자신의 관원이 학교나 외진 곳에서 폭행을 당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더 나아가 관원이 실전성에 의문을 품고 수련 지속 의사를 철회한다면, 그제야 후회해도 이미 늦다.
그럼에도 대중은 ‘무도인(武道人)’이나 ‘무도가(武道家)’라는 표현을 더 익숙하게 사용한다. 이는 기술뿐 아니라 정신적 덕목을 중시하는 ‘무도’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무예(武藝)’라는 용어가 더 자주 사용된다.
무예, 무도, 무술 중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그 가치를 증명하는 길은 결국 무(武) 자체로서의 강함을 입증하는 데 있다. 과거에는 전쟁이나 타 유파와의 대결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면, 오늘날에는 경기나 실생활의 위험 상황에서 실전성을 보여 주는 것 외에는 가치를 인정받을 방법이 많지 않다. 결국 유파의 우월성과 실전성은 내부 평가가 아니라 타인의 객관적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사제나 동문 사이에서 아무리 강함을 과시하더라도 외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실전성을 인정받아 온 무예와 스포츠화된 무예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왜 대중에게 인정받는 종목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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