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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논문 비평 · 1/3] 승자의 기록인가, 제도의 예속인가

김정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탈구축적 독해 — 연구자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편집부 | 기사입력 2026/04/07 [19:51]

[무도 논문 비평 · 1/3] 승자의 기록인가, 제도의 예속인가

김정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탈구축적 독해 — 연구자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편집부 | 입력 : 2026/04/07 [19:51]

합기도가 대한체육회 정회원으로 진입한 과정을 다룬 박사학위 논문 한 편이 있다. 공문서와 판결문을 총동원하고, 소송 기록을 집성하며, 합기도 현대사의 굴곡을 제도의 언어로 재구성한 이 연구는 분명 방대한 공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방대함이 곧 공정함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이 비평은 그 간극을 추적한다.

 

3회에 걸쳐 게재될 이 시리즈는 김정환의 박사학위 논문 「합기도의 통합 및 발전과정에 관한 사적 고찰」(2021)을 대상으로, 연구자의 위치성과 방법론의 구조, 논리적 균열, 그리고 학문 윤리의 문제를 순서대로 검토한다. 논문 저자 개인의 인격이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학술 텍스트가 어떻게 구성되고, 무엇을 배제하며, 어떤 권력 질서를 정당화하는지를 살피는 작업이다. 이것이 언론 비평이 해야 할 일이다.

▲ 김정환 박사학위 논문 비평을 주제로, 연구자의 위치성과 이해충돌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 한국무예신문

 


■ 무예의 역사는 어디서 결정되는가

 

스크린의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프레임 안의 사건을 결정하듯, 한 무예의 역사는 수련장 안의 기술 교류보다 법정과 회의실의 문서 더미 속에서 결정될 때가 있다. 합기도의 현대사는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단합과 통합을 가장 크게 외쳐온 무예가, 역설적으로 가장 첨예한 분열의 전선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부인하기 어렵다.

 

김정환의 논문은 바로 이 복잡한 역사를 다룬다. 합기도 최초의 단체 설립부터 대한체육회 정회원 진입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며, 공적 권위를 통한 대표성 확보를 발전의 핵심 경로로 제시한다. 기존 합기도 담론이 개별 유파의 정통성 논쟁이나 내부 계보 문제에 머무른 데 비해, 이 연구는 행정과 법률, 제도와 권력의 층위에서 합기도사를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학술적 성취를 인정할 수 있다.

 

 

■ 논문이 이룬 것들

 

먼저 성취부터 말해야 한다. 이 논문은 흩어져 있던 공문서, 판결문, 법인 설립 허가 과정과 행정 기록들을 비교적 일관된 흐름으로 배열해 보여준다. 후속 연구를 위한 자료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더 나아가 이 텍스트는 합기도의 현안이 더 이상 전통적 도제 질서나 유파 간 경쟁에 머무르지 않고, 법적 지위 확보·체육회 가맹·국제연맹 창설·진흥법 논의 등 현대 스포츠 행정의 영역으로 이동했음을 증언한다. 합기도가 '무술'에서 '스포츠 제도'로 편입되는 과도기를 기록한 자료라는 성격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자료의 가치와 해석의 정당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 연구자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제도와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일수록 연구자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에 대해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이 논문은 비판적 탐구의 결과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논리와 자료가 배치된 목적론적 서사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겉으로는 '사적 고찰'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특정 단체의 승리 과정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서술이 조직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연구자의 위치성이다. 저자는 논문에서 대한체육회 가맹과 소송 관련 핵심 문서를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를 통해 직접 입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연구 방법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각주 137번에서 저자는 더 결정적인 사실을 스스로 밝힌다. 합기도 민원 처리 과정에서 "연구자 본인이 합기도협회의 답변을 맡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전달받았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보 접근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자가 연구대상 기관의 실무 — 구체적으로는 소송과 민원 대응 과정 — 에 직접 참여했다면, 그 연구는 처음부터 이해충돌 관리와 반대 자료에 대한 교차 검증 장치를 엄격히 갖추었어야 한다.

▲ 김정환 박사 논문 각주 137번에 연구자 본인이 합기도협회의 답변을 맡아 진행했다고 적혀 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 한국무예신문



■ 소송 당사자의 문서로 소송을 서술하다

 

구조를 좀 더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논문 12쪽 연구방법론 부분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대한체육회 정가맹 과정 속에서의 송사과정에 대한 문서도 모두 확보하였는데 이 기록들은 송사를 직접 담당했던 대한체육회 정회원종목단체인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를 통하여 직접 입수할 수 있었다."

 

소송 당사자 일방이 관리·보유하는 소송 문서를, 그 단체를 통해 단독 입수하여 소송의 정당성을 서술했다. 반대 소송 당사자(문체부 측, 이의 제기 단체들) 경로를 통한 교차 검증 없이, 한쪽 당사자의 문서만을 핵심 자료로 삼은 구조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은 분명하다. 이것은 사료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연구인가, 아니면 소송 당사자 측의 논리를 학술적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에 가까운가.

 

 

■ 역사 서술은 중립이 아니다

 

역사학의 오랜 통찰은 이 문제를 간명하게 정리한다. 역사 서술이란 결코 '있었던 일'의 중립적 재현이 아니라, 서술자가 위치한 권력 관계 속에서 선택되고 배치된 구성물이다. 문제는 이 논문이 그 구성성 자체를 충분히 성찰하지 않은 채, 특정 입장에서 수집된 자료를 객관적 사실의 토대처럼 제시한다는 데 있다.

 

자신의 서술이 이미 어떤 입장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방법론적으로 제어하는 것, 그것이 연구 윤리의 핵심이다. 그 제어 장치가 보이지 않을 때, 자료의 신뢰성은 흔들린다. 행정적 승리를 역사적·윤리적 승리로 치환하며, '공익'이라는 탈정치적 언어로 승자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문서처럼 읽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연구자의 위치성이 이처럼 논문의 기반을 흔드는 문제라면, 그 위에 세워진 방법론의 구조는 어떠한가. 구술사 방법론과 목적론적 서사 구조의 문제는 다음 회에서 다룬다.

 

▶ 2회에서는 구술사 방법론의 구조적 빈곤과 '법적 승인을 존재론적 승인으로' 비약시키는 논리의 균열을 해부한다.

 

※ 이 글은 공개된 박사학위 논문 「합기도의 통합 및 발전과정에 관한 사적 고찰」(김정환, 2021)에 대한 학술적 의견 표명 및 언론 비평입니다. 논문의 방법론과 논증 방식에 대한 학문적 검토를 목적으로 하며, 저자 개인의 인격이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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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호 공존 상생의 길 2026/04/09 [19:31] 수정 | 삭제
  • 냥냥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정성스러운 답변 감사드립니다.
  • 냥냥 2026/04/08 [13:27] 수정 | 삭제
  • 정중하게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오해 없이, 가능한 한 솔직하고 차분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저 역시 처음 일명 ‘얼음’ 시범을 보았을 때는 매우 낯설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합기도에 대한 제 스스로의 기술 이해도와 기준이 지금보다도 훨씬 부족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신기하게 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웃으며 가볍게 따라 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굳이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큼 저 역시 처음부터 어떤 확신을 가지고 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후 협회 수련 과정과 전수관 수련에 스승님과 함께 직접 참여해 보면서, 예전처럼 이 문제를 단순히 “된다”, “안 된다”로 쉽게 단정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제 입장은 분명합니다. 저는 아직 수련의 단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 기술이 완벽히 된다거나 반대로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할 만큼 충분한 경지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적어도 지금은,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쉽게 잘라 말할 문제도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60년 이상 수련하신 원로 선생님들께서도 못 하신다”는 부분도 저는 매우 존중하는 마음으로 듣습니다. 다만 그 부분 역시 조금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로 선생님들께서 60년 이상 수련하신 것은 분명 대단한 세월이며 깊이 있는 무력과 연륜으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60년이 곧바로 일명 얼음이라 불리는 그 방식 자체를 60년간 수련하신 것과 동일한 의미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평생 닦아오신 기술 체계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면,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 바로 구현되지 않는 것 자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만약 그 방식 자체를 오랜 시간 깊이 반복 수련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결과에 이를 가능성 역시 함부로 부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기술의 진위 여부를 감정적으로 가르는 문제라기보다, “그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수련하고 검토해 보았는가”의 문제로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술이든 해보지도 않고, 또는 충분히 탐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가능 여부를 단정하거나 조롱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교육자의 태도로서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수련자는 수련으로 말해야 하고, 지도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도자의 철학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문제를 봅니다. 실제로 다른 도장에서 아이들이 저희 도장으로 옮겨 오거나, 태권도 등 유사한 운동을 배우고 온 친구들에게 비슷하거나 같은 기술을 가르칠 때 저는 이전 지도자의 방식부터 부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늘 비슷하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이전에 배운 것도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방식이 조금 다를 수 있고, 이건 우리 도장의 방식이니 이렇게도 한번 해보자”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저는 지도자라면 적어도 이전 지도자의 방식과 배움을 무조건 깎아내리기보다, 맥락과 차이를 설명하면서 아이가 더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는 교육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도 철학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저 역시 앞으로 더 수련하고 경험이 쌓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저는, 기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틀렸다고 하거나 비웃는 방식보다는, “그 방식은 그 방식대로 왜 형성되었는지”,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 “직접 수련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공개 시범이나 유튜브 영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 역시, 어느 종목이든 전달과 연출, 그리고 퍼포먼스적 요소가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용운 사무처장님과 이 부분에 대해 직접 깊이 논의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실제 시범의 현장이라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한 구성과 표현 방식이 어느 정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합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도, 주짓수, 태권도 등 여러 무술의 단체 시범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영상만으로 기술 전체의 성립 여부를 모두 재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결국 더 본질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특정 시범 하나를 두고 맞다 틀리다를 나누는 문제를 넘어,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합기도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국술이 포함되는지, 격투술이 포함되는지, 기존 여러 계보와 현재 제도권 합기도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일본 아이키도와 한국 합기도는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 이런 더 큰 질문들이 사실 더 본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가 한국 합기도의 정체성을 공적으로 정리하고, 일본 아이키도와는 별개의 한국 무예로서 인정받는 과정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을 중요하게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기존의 스승님들, 기존 협회, 기존 단체에서 이어져 온 기술과 계보를 가볍게 본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저 역시 기존에 배운 뿌리와 기술을 잊지 않습니다. 총협회에 가입했다고 해서 이전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서로 다른 계보와 방식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을 갖고, 제도와 정체성의 문제는 또 그것대로 차분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처럼 서로 정중하게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 자체는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토론과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서로가 과열된 상태에서 상대의 수련이나 의도를 먼저 재단하는 방향으로 흐르기보다는, 가능한 한 차분하게, 허심탄회하게,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태도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한 수련자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에 대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비웃거나 단정하지 않으려 하고, 직접 수련과 검토를 통해 이해해 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제 말 역시 어디까지나 그런 부족한 수련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생각 역시 충분히 존중합니다. 다만 이 문제를 조금 더 차분하고 균형 있게, 기술의 가능 여부와 합기도의 정체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함께 논의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안동역에서 2026/04/08 [10:42] 수정 | 삭제
  • 스승님들이라는 분들께서 정말 중심을 잘 잡아야합니다. 대표단체일 수록 더 진지해야한다. 이미 합기도 호신술 영상으로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계속 합기도가 부끄러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많은 개선할 부분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해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무도인 2026/04/08 [09:09] 수정 | 삭제
  • ​기사가 짚어낸 특정 박사학위 논문의 '위치성'과 '이해충돌' 문제는 현재 합기도계가 앓고 있는 구조적 질병의 근원을 정확히 찌르고 있습니다.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교차 검증'과 '객관성'이 결여된 채, 소송 당사자의 자료만으로 쓰인 논문이 어떻게 합기도의 역사를 대변할 수 있겠습니까. 연구자가 특정 단체의 실무와 민원을 대리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그 단체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논문을 작성했다면, 이는 '사적 고찰'을 빙자한 기득권의 자기 합리화 문서에 불과합니다.
  • IN2U 2026/04/08 [08:09] 수정 | 삭제
  • 신무합기도의 사범 이었던 김정환이 부친과 함께 총협회로 갈아타 그 협회의 브레인 노릇을 하는구나. 합기도의 다양성을 인정 하고 총협회가 나아가야 할 점을 내세워야지 총협회가 밖에 인정이 안된다는 식의 글은 논문이 아니다.
  • 상호 공존 상생의 길 상생의 길 2026/04/08 [01:04] 수정 | 삭제
  • 냥냥님께서 쓰신 글은 이미 엑스맨님께서 여러 번 설명해 주셔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다른 분들의 의견도 함께 잘 보았습니다 냥냥님께 정중히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타 협회에 스승님도 계신다고 하니 무력과 배움이 어느 정도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혹 총협회 시범(일명 얼음)을 배우신 적이 있으실까요? 배우셨다면 시연도 가능하신지 궁금합니다. 또한 냥냥님의 스승님께서도 해당 얼음 시범을 하실 수 있으신지 여쭤보셨는지요?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저 또한 40년 넘게 수련해왔지만 아직 깨달음이 부족한지 못하고 있고, 60년 이상 수련하신 원로 선생님들께서도 못 하신다 하시니, 궁금한 마음에 여쭙는 것입니다. 오해 없이 허심탄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냥냥 2026/04/07 [23:47] 수정 | 삭제
  • 합기도 역사에 대해 관심도 많고 합기도를 사랑하는 젊은 지도자 입니다.
    우선적으로 저는 저희 스승님이 기존 협회와 스승님이 계시지만,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에 가입해주시고, 제가 이 곳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너무 축복이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 역시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 그 어떠한 직책도 없는 단순한 사범일뿐입니다.
    총협회에 가입했다고 저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뿌리, 기술, 그리고 기존 단체까지 그 모든것을 잊지 않습니다.

    한국무예신문 기사를 보며 매우 아쉬운 점은, 합기도의 대한체육회 정가맹 구조와 그에 따른 제도 운영의 현실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마치 특정 단체가 일방적으로 기존 합기도계 전체를 배제하고 있는 것처럼 인상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한체육회 체계는 기본적으로 종목별 1단체 가입 원칙 위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표단체로 들어간 곳은 단순히 이름만 얻는 것이 아니라, 승단 체계, 대회 운영, 행정 기준, 가맹 절차, 공인 질서 등을 제도적으로 정비할 책임도 함께 지게 됩니다.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가 그 과정에서 승단 및 대회 규정을 만들고, 일정한 기준을 세운 것 역시 이런 제도권 편입 구조 안에서 이해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일부 기사들은 이러한 제도 형성의 배경과 행정적 필연성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결과적으로 규정을 적용받게 된 단체들의 불만과 반발만 반복적으로 부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장의 불편과 반대 의견은 기사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왜 그런 기준이 만들어졌는지, 왜 대표단체 체계가 필요한지, 왜 통합과 이관, 갱신 문제가 제도 안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지까지 함께 설명해야 균형 잡힌 보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미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협회 이관이나 단증 갱신, 제도 정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난 뒤 동일한 권리만 요구하는 방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필요한 책임과 절차는 외면한 채, 제도권에서 발생하는 대회 참가나 공적 무대의 혜택만 동일하게 요구하는 것은 공정의 문제로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현실적으로는 합기도 단일 종목만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곳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목과 중복 운영하거나 복합적으로 수업을 구성하는 도장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목 정체성과 대표성, 공인 체계의 기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 자체를 모두 ‘독점’이나 ‘배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권 종목으로서 최소한의 기준과 질서를 세우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어도, 종목 전체의 장기적 공신력과 행정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측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논문 비평 기사 역시 학술 비평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연구의 한계만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한 인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읽히는 부분이 있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비평은 가능하지만, 그 비평 또한 균형과 맥락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개된 자료를 비판하는 것과 특정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축적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입니다.

    합기도의 제도권 진입은 누군가의 사적 소유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종목의 공적 기반과 미래 세대의 활동 무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반복적인 갈등 부각이나 감정적 프레임이 아니라, 제도 형성의 경과와 책임, 그리고 권리와 의무가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성실하고 균형 잡힌 논의라고 봅니다.
  • 동심초 2026/04/07 [22:42] 수정 | 삭제
  • 언론이든 학계든 무예계의 질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무거운 책임
  • 관조 2026/04/07 [22:14] 수정 | 삭제
  • 언론사도 뜻한 바가 있겠지요.. 이창후 박사 이후 무도 논문 비평 정말 오랜만이라는.. 개인적으로 한국무예신문 요즘 분발하고 있다는 생각듭니다. 그동안 좀 그랬죠.. 척박한 무예산업 환경에서 15년.. 인정합니다!!!
  • 김영규 2026/04/07 [20:55] 수정 | 삭제
  • 의도하시는 비평은 충분히 이해하나, 김정환선생 논문까지 거론하시는 걸 봐서는 좀 과하다 싶네요, 이런 방식이 진정 합기도 발전과 지도자들 어린 수련생들을 위한 것일까? 라고 의문을 품어봅니다. 이런 생각 해봐요. 이해도 가지만 요며칠 편집부의 글들은 이해가 안 가네요, 중언부언? 혹시 ai돌려서 쓰시는 건지요? 저두 대한민국에서 합기도를 지도했던 사람이었기에 방향과 다르다고 쓸데없는 비방이나 욕설 댓글은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 이근복 2026/04/07 [20:12] 수정 | 삭제
  • 이 글은 단순한 논문 비평이 아니라 지금 무예계 현실을 정확히 짚은 경고라고 봅니다. 겉으로는 통합과 단합을 이야기하지만 현장은 이미 분열과 배제의 구조 속에 있습니다. 특정 제도가 기록과 기준을 독점하는 순간, 그 결과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정해진 승자’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옳다를 가르는 논쟁이 아니라 누구나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현장의 지도자, 수련생, 학부모까지 모두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현장을 살리기 위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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