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사라는 허울로 무예계에 군림해 온 자들에게 — 더는 지성의 이름을 훔치지 말라부실한 논문, 빈곤한 사유, 허약한 검증으로 얻은 학위가 어째서 현장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었는가
박사학위는 무거운 이름이다.
학문 앞에서 자신을 끝내 증명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자리다. 자료의 엄밀함, 논리의 투명함, 반론을 견디는 인내, 그리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줄 아는 용기—그 모든 관문을 통과한 연구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 무게를 아는 사람은 박사가 된 이후에도 함부로 학위를 앞세우지 않는다. 학문이란 완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검증이며, 박사학위는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무예계에서 박사라는 이름은 너무 자주, 너무 가볍게 타락했다.
학문적 성취의 증표가 아니라 권위를 연출하는 가면이 되었다. 진실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비판을 막는 방패가 되었다. 지적 책임의 표식이 아니라 군림의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 역전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무예계가 오랫동안 눈감아 온 구조적 부패의 산물이다.
호칭이 클수록 내용이 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호칭에 집착한다. 연구가 허술할수록 직함을 앞세운다. 내용으로 인정받지 못할수록 명함으로 사람을 제압하려 든다.
질문을 받으면 답하지 못하고, 비판을 받으면 발끈하며, 검증을 요구받으면 예의와 권위를 들먹인다. 이들은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의 외형을 빌려 권위를 소비하는 것이다.
진짜 학자는 반론 앞에서 더 단단해진다. 가짜 권위자는 호칭 뒤에 숨는다.
핵심은 이것이다. 허술한 연구로 취득한 학위가 어떻게 제도 안에서 권력으로 환전되는가. 내용은 빈약해도 직함은 화려하고, 논증은 허술해도 호칭은 번듯하며, 학문적 검증은 빈곤한데도 현장에서는 "박사님"으로 추앙받는다. 이 기이한 역전, 이 왜곡된 위계. 바로 여기서 무예계의 병리가 뿌리를 내린다.
검증받아야 할 자가 검증자가 된다
더 심각한 것은 부실한 학위가 제도권 입장권으로 기능하는 구조다. 이 구조 안에서는 비판받아야 할 자가 심사위원이 되고, 성찰해야 할 자가 강단에서 훈계하며, 실력이 의심스러운 자가 정통성과 발전을 논한다. 검증의 체계가 검증을 회피하는 방패로 변질될 때, 제도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된다.
부실 논문은 단지 학문적 흠결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위험이다.
사회는 박사라는 이름을 보고 전문성을 신뢰하고, 조직은 그 학위를 보고 자리를 맡기며, 사람들은 그 호칭 앞에서 스스로 말을 줄인다. 그 출발점이 허술하다면, 그 위에 쌓인 권위도 본질적으로 허위다. 부실한 논문 위에 세운 권위는 권위가 아니다. 검증 실패 위에 얹힌 허세일 뿐이다.
이것은 카르텔이다
이런 인물들은 대개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주변에는 늘 침묵하는 동료가 있고, 눈감아 주는 선배가 있고, 통과시켜 준 심사 체계가 있으며, 그 학위를 권위로 소비하는 조직이 있다. 서로의 허술함을 덮어주고, 서로의 약점에 침묵하며, 서로의 직함을 부풀려 주는 구조. 이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지식의 이름을 빌린 카르텔이다.
무예계는 특히 이런 카르텔의 유혹에 취약하다. 역사와 철학, 정통성과 계보, 제도와 자격을 둘러싼 언어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말을 어렵게 할수록 깊어 보이고, 직함을 길게 붙일수록 높아 보이며, 학위를 내세울수록 감히 질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어려운 말이 깊은 생각을 보증하지 않는다. 긴 직함이 높은 수준을 증명하지 않는다. 박사라는 호칭이 결코 진실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무예는 증명의 세계다
무예는 몸으로 증명하는 세계다. 역사는 자료로 증명하는 세계다. 학문은 논리로 증명하는 세계다.
이 세 가지 증명을 모두 회피한 채 "박사"라는 말 하나로 현장을 훈계하고 제도를 흔든다면, 그것은 무예계의 수치다. 그런 박사는 무예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좀먹는 것이다.
무예계가 오랫동안 병들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련의 본질, 기술의 검증, 역사 서술의 엄밀함, 제도 운영의 투명성보다 간판과 직함, 학연과 인맥, 의전과 서열이 더 크게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직시해야 한다. 평생 수련하며 현장에서 스스로를 증명해 온 지도자들, 자료를 성실하게 쌓고 논리를 끈기 있게 다듬어 온 진지한 연구자들—이들이 부실한 학위를 가진 자들의 그늘에서 제 몫을 빼앗기고 있다. 허위의 권위가 진짜를 밀어내는 구조, 이것이 가장 잔인한 불공정이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박사라고 해서 자동으로 존중받는 문화부터 버려야 한다. 직함이 아니라 논문을 보아야 한다. 호칭이 아니라 내용으로 평가해야 한다. 의전이 아니라 검증을 앞세워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무엇을 새롭게 밝혔는가. 어떤 자료를 어떻게 다루었는가. 반대 증거는 왜 외면했는가. 그 논문이 공개적 반론을 끝내 견딜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흔들리는 박사라면, 그 사람은 학위를 가진 것이지 학문을 가진 것이 아니다. 종이 위의 학위와 삶 속에 체화된 학문은 다르다. 그 차이를 모르는 자가 후학 앞에 선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현장을 모르는 박사, 검증을 견디지 못하는 박사, 직함으로 사람을 누르려는 박사, 기득권에 기대어 군림하는 박사. 그들이야말로 무예계를 병들게 한 오래된 적폐다. 지성과 품격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박사라면, 그 호칭은 영예가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학문의 이름을 훔쳐 권위를 꾸미는 자들에게 더 이상 경의는 없다.
묻겠다.
그들은 정말 박사인가. 아니면 박사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제도와 직함을 빌려 현장 위에 군림해 온 것인가.
무예계가 이 질문을 끝내 회피한다면, 부실한 논문은 앞으로도 권력이 되고, 허약한 학문은 앞으로도 권위로 포장될 것이다. 그 피해는 늘 현장 지도자와 수련생, 그리고 진실하게 공부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제는 벗겨낼 때다. 박사라는 허울을. 권위라는 분장을. 기득권이라는 가면을.
학문 없는 박사, 검증 없는 권위, 실력 없는 군림은 무예계의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무예계의 부패다.
논문이 저급한데 권위가 크다면, 그 사람의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기준이 무너진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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