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림 칼럼] 전통을 말하려면 먼저 검증받아야 한다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 논란이 드러낸 ‘전수’의 왜곡과 제도권 무예의 책임
합기도는 단순한 기술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전승의 역사이며, 몸으로 축적된 철학이고, 계보를 통해 이어져 온 무예적 질서다. 그렇기에 합기도에서 ‘전통’은 장식용 수사가 될 수 없고, ‘전수’는 조직 내부의 홍보 문구로 소비되어서도 안 된다. 전통을 말하려면 먼저 검증을 받아야 하며, 전수를 말하려면 먼저 계보와 내용, 과정의 정당성을 공개해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감정적 갈등이나 단체 간 시비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 전통인가, 누가 전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제도권 무예단체의 지도자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전수자’라는 이름은 왜 이렇게 가벼워졌는가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는 ‘전수자(傳受者)’라는 직책을 두고, 이들이 이른바 ‘전수관 수련’이라는 형식으로 현장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용어의 무게다.
‘전수자’란 본래 지식이나 기술을 온전히 전하여 받은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기능 습득을 넘어 원형에 가까운 기술, 사사 관계, 전승의 정통성 같은 의미가 내포된다. 따라서 이 명칭은 수련자나 지도자들로 하여금 마치 어떤 정통 계보의 핵심 술기를 직접 이어받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술기 일원화나 조직 내 기준 통일을 위한 실무 교육에 불과하다면, 이를 ‘전수’라고 부르는 것은 과장에 가깝다. 더 나아가, 기본 합기도를 수십 년 수련한 지도자라면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두고 ‘전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개념의 오용일 수 있다. 용어가 실체를 넘어서는 순간, 조직은 교육이 아니라 이미지를 판매하게 된다.
문제는 이 왜곡된 표현이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 현장에는 수련 경력이 짧거나 체계 이해가 깊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전수’라는 이름은 곧 권위로 작동한다. 그 결과, 본래 검증되어야 할 기술과 지도 체계가 오히려 비판 불가능한 권위의 외피를 입게 된다. 무예 단체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기술은 전통을 자처하지만, 계보는 왜 불분명한가
합기도에서 전승의 핵심은 결국 기술의 계보다. 어떤 술기가 어디서 왔고, 누구를 통해 이어졌으며, 어떤 수련 체계를 거쳐 정착되었는가가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전수를 말하는 이들의 기술적 뿌리가 불분명하다면, 전통의 정당성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 제기 속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총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던 인물의 시범 스타일 변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해당 인물은 총협회 이적 이전에는 대한합기도협회 계열에 있었고, 이후에는 금산 용술관 계열을 연상시키는 술기 스타일을 보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변화에는 분명 어떤 영향 관계나 학습 계보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스승은 누구였는지, 어떤 수련 과정을 거쳤는지, 그 계보는 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지 묻는 것은 정당하다.
더욱이 무기술의 경우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합기도 창시자의 정통 기술과 직접 연결되기 어려운 창작형 시범들이 전통의 이름으로 편성되고 있다면, 이는 계승이 아니라 재구성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를 마치 원형의 일부처럼 포장한다면, 그것은 전통 보존이 아니라 전통의 혼성화이자 왜곡이다.
대회 규정에 포함된 정체 불명의 검술, 봉술, 쌍절곤 등의 편성 역시 같은 문제를 드러낸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료와 계보를 통해 정당화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면, 전통 무예단체가 전통을 말할 자격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최용술, 장인목 선생의 맥락과 무관한 요소들이 전통의 외피를 쓰고 제도권 종목 안으로 편입되는 순간, 무예의 역사성은 희석된다.
타 무예를 배척하면서 타 무예를 닮아간다는 역설
더 아이러니한 것은 타 합기도 단체의 기술을 철저히 배척해 온 조직이, 정작 외형상 다른 무예의 동작이나 형식을 닮아간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공개된 일부 영상 속 권법이 국술원 형과 유사하다는 지적, 특정 시범의 표현 방식이 다른 계열 무예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무예는 역사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교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들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다. 차용이 있었다면 차용이라 밝혀야 하고, 재구성이 있었다면 창작이라 설명해야 한다. 정직한 설명 없이 모든 것을 전통의 이름 아래 묶으려 한다면, 그것은 계승이 아니라 권위의 연출이다.
무예의 품격은 폐쇄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기술의 출처를 숨기지 않는 정직함, 타 유파와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학술적 태도, 그리고 검증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개성에서 나온다.
연출된 퍼포먼스는 왜 전수를 더 의심받게 만드는가
최근 논란이 된 연출성 짙은 퍼포먼스 문제는 이 모든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특히 문제의 시연과 관련해, 해당 기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누구에게 배웠으며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무예 시범은 상징성과 연출성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적 검증이나 실증적 설명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소비될 때, 시범은 교육이 아니라 신비화의 장치가 된다. 과도한 신비감은 일시적으로 대중을 압도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검증 앞에서는 가장 먼저 무너진다.
더구나 과거 SNS상에서 제기된 발언들처럼 특정 인물이 어느 계열 도장에서 몇 개월 수련했는지 여부, 해당 계열과 실제 관계가 있었는지 여부, 기술적 영향이 있었는지 여부 등이 공론장에서 언급된 바 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명확한 설명이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그리고 그것이 합기도의 정통성 논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대한체육회 산하 무예 단체의 관계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제도권의 이름은 권한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 책임도 함께 부여한다. 제도권 인사가 검증되지 않은 기술, 과장된 시연, 불투명한 계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면, 그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신뢰 문제로 확장된다.
제도권 성과는 면죄부가 아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합기도가 제도권에 편입되고 정부의 인정을 받는 무예단체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한 성과다. 오랜 시간 주변화되었던 무예가 공적 제도 안으로 진입했다는 것은 행정적 안정성과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도권 진입이 곧 내용의 정당성까지 자동으로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권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더 높은 윤리 기준과 더 엄격한 검증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전통을 빙자한 사실 왜곡, 불분명한 계보, 과장된 퍼포먼스, 자격 논란이 있는 인물들의 교육 주도는 제도권 무예단체일수록 더 치명적이다.
조직은 외형의 성과로 유지되지 않는다. 결국 한 단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자격 있는 지도자, 검증 가능한 기술 체계, 그리고 투명한 운영이다. 그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제도적 성과는 껍데기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투명성이다
혼란이 지속될수록 무예단체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거나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렴성’과 ‘투명성’이다. 특히 합기도처럼 전통성과 계보를 중시하는 무예일수록 기술의 출처와 전승 과정, 교육 체계와 지도자 자격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지도자의 역할도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단지 기술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철학과 정신, 윤리와 기준을 함께 전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나 과장된 시범을 통해 대중을 현혹하는 일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후학들에게 왜곡된 기준을 심는 일이다.
비판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은 문제 제기를 적대 행위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자정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판을 외면하는 조직은 결국 폐쇄성과 자기기만 속에서 붕괴한다. 반대로 비판을 수용하고,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필요한 설명과 검증을 거치는 조직만이 살아남는다.
전통은 직책이 아니라 정직함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논란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합기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계승하고 있으며, 그 계승은 과연 정직한가.
전통은 밀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검증과 계승, 기록과 실천 속에서 축적되는 것이다. 권위는 직책에서 나오지 않는다. 실력과 시간, 그리고 정직함에서 나온다. 따라서 ‘전수’라는 이름이 형식적 교육의 권위 포장 수단으로 계속 사용된다면, 그것은 전통의 계승이 아니라 전통의 훼손일 수밖에 없다.
무예는 몸으로 증명되고, 시간으로 검증되며,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 이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외면한 채 외형과 직책, 감정적 연출과 권위의 포장만을 좇는다면, 어떤 제도권 성과도 결국 허상으로 남는다.
지금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에 필요한 것은 회피가 아니다. 설명이다. 변명이 아니다. 검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성찰이다. 전통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그 전통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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