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독선반론은 없고 저주만 남았다…익명 댓글이 자백한 사유화 권력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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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지【심층탐사】 조직사유화 ⑤편 기사 하단에 달린 엑스맨 댓글 일부 캡쳐 © 한국무예신문 |
본지의 심층보도 이후 【심층탐사】 조직사유화 ⑤편 기사 하단에 달린 익명의 장문 댓글은 우연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조직이 얼마나 깊이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는지, 그리고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 어떻게 끝내 맹신의 언어로 추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표본이다.
문장은 길었지만 논리는 짧았고, 분노는 넘쳤지만 반박은 비어 있었다. 그 댓글은 본지를 공격하려 했으나, 정작 세상에 폭로한 것은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권력 구조의 후진성과 폐쇄성뿐이었다.
가장 먼저 확인되는 것은, 이들이 더 이상 사실로 싸울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기사에서 제기한 쟁점은 명확했다. 이사회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거수기처럼 작동하고 있는지, 비가맹 세력 배제가 구조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정관에도 없는 권력이 비공식적으로 군림하고 있는지, 공적 권한이 특정 인물과 계보의 사적 권위 증식에 동원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댓글은 이 질문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성실하게 답하지 못했다. 대신 튀어나온 것은 낡디낡은 인신공격이었다. 비판자의 과거를 뒤집고, 동기를 의심하고, 자격을 조롱하는 방식. 이것은 반론이 아니라 도주다. 논리가 궁지에 몰렸을 때 권력이 가장 먼저 하는 짓은, 질문에 답하는 일이 아니라 질문한 사람을 더럽히는 일이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사실이 아니라면 조목조목 반박하면 될 일이다. 구조적 문제가 없다면 자료를 내놓으면 된다. 절차가 정당했다면 회의록과 규정을 공개하면 된다. 그런데도 해명은 없고 적개심만 있다. 설명은 없고 욕설만 있다. 이런 태도는 대단한 자신감의 산물이 아니라, 정반대로 내부의 허약함을 감추기 위한 과잉 반응일 뿐이다. 떳떳한 권력은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질문을 증오하는 권력만이 익명 뒤에 숨어 독기를 분출한다.
더 우스운 것은, 자신들이 기대고 선 체제를 아예 ‘국가 시스템’과 동일시하는 오만이다.
“100편을 써도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식의 호언은 강자의 언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실은 그 문장만큼 초라한 자기고백도 없다. 언론의 문제 제기를 ‘소설’로 깎아내리면서, 자신들이 점유한 현재의 구조를 마치 국가 자체인 양 떠받드는 사고. 이 얼마나 비대해진 자의식인가.
언론이 비판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다.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권한이 어떻게 사유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특정 집단의 철옹성 구축에 이용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비판하는 일이 곧 국가 질서를 흔드는 일이라고 강변한다면,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 권력중독이다. 공적 제도에 기생하는 사적 권력이 흔히 보이는 증상이기도 하다.
더 노골적인 문제는 과거 공로를 현재 독점의 면허증으로 바꾸려는 태도다.
“우리가 욕먹으며 여기까지 만들었다”는 식의 자기연민은 기득권이 가장 즐겨 쓰는 서사다. 물론 어떤 조직이든 형성 과정의 공로자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로가 특권을 영구 보장하지는 않는다. 희생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과거의 헌신을 앞세워 현재의 독단을 정당화하려는 순간, 공동체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라 사유물로 변한다. “우리가 만들었으니 우리가 지배한다”는 논리는 조직 운영이 아니라 영지 경영에 가깝다. 민주적 거버넌스와는 거리가 멀고, 봉건적 충성 체계와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결정적으로, 이 댓글의 본질은 ‘닫힘’이다.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의지가 아니다. 자백이다. 비판도 받지 않겠다, 성찰도 하지 않겠다, 고치지도 않겠다, 달라질 생각도 없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경직이다. 원칙이 아니라 독선이다. 살아 있는 조직은 외부의 문제 제기를 통해 더 정교해진다. 그러나 죽어가는 조직은 비판을 곧 배신으로 읽고, 질문을 곧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조직은 제도를 운영하는 집단이 아니라 교리를 수호하는 신도 집단으로 변질된다.
바로 그래서 이 익명 댓글은 단순한 감정 배설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지가 왜 이 문제를 계속 물어야 하는지, 왜 이 구조를 공론장에 다시 세워야 하는지, 왜 침묵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덮여 온 권력의 속살을 끝까지 해부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자백서다. 반박하려고 쓴 문장이 오히려 혐의를 보강하고, 언론을 공격하려던 손끝이 조직의 병리만 적나라하게 노출한 셈이다.
공적 단체는 비판받을 수 있다. 아니, 비판받아야 한다.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공적 단체는 이미 공적 단체가 아니다. 질문을 적으로 돌리고, 침묵을 무기로 삼고, 익명을 동원해 여론을 저주하는 조직이라면 그 실체는 봉사기관이 아니라 방어기제에 사로잡힌 폐쇄 권력일 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외쳐도, 바로 그 말이야말로 왜 이 구조가 반드시 흔들려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자랑인 조직은 썩고 있는 조직이다. 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원칙의 증명이 아니라 퇴행의 증거다. 그리고 오늘 이 댓글은, 그 퇴행이 얼마나 깊고 완고한지를 세상 앞에 스스로 진술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