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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劍과 길] 제4회: 대우(大宇)와 합기도의 세계화

김우중 회장과 지한재 총재의 꿈, 그리고 그 찬란한 파산

편집부 | 기사입력 2026/04/25 [09:46]

[김정호의 劍과 길] 제4회: 대우(大宇)와 합기도의 세계화

김우중 회장과 지한재 총재의 꿈, 그리고 그 찬란한 파산

편집부 | 입력 : 2026/04/25 [09:46]

▲ 김정호 총재(세계해동검도연맹)  © 한국무예신문

1998년 겨울, 미국 뉴저지주 트렌톤.

 

지한재 총재는 사모님과 함께 현관에 서 있었다. 반가운 얼굴, 따뜻한 악수. 도복 대신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그 체구에서는 여전히 무도인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유럽 무도 잡지사 초청을 받고 막 인터뷰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자, 총재의 입에서는 이내 한 남자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그 양반이 꿈을 같이 꿨어요. 나하고."

 

총재는 그 꿈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천천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기치로 전 세계에 지사를 세우고 있었다. 전 세계 130여 개국, 수백 개 거점. 김우중 회장의 화두는 단순했다 — 어떻게 하면 현지에 뿌리를 내리느냐. 주재원들은 거점 도시에 파견됐지만, 현지인과의 신뢰를 쌓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무렵, 한 젊은 합기도 사범이 김우중 회장의 면담을 신청했다. 평범하지 않은 용건을 들고.

 

같은 시기 지한재 총재는 국내 합기도 보급에 박차를 가하며 신무합기도를 정립하고 있었다. 합기도 종주 최용술 도주 밑에서 수련을 시작한 이래, 지한재라는 이름은 국내 합기도 계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그 두 거인 — 재계의 지배자와 무도계의 선각자 — 이 역사적인 만남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한 사범의 특별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젊은 합기도 사범이 중동으로 건너간 것은 보급 강사 자격으로였다. 어느 왕국의 왕자에게 합기도를 개인 지도하는 자리. 그는 도복을 펼치고 손목 꺾기와 투기를 가르치는 한편,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했다. 왕자는 흥미를 보였다. 특히 조선의 조선소에 대한 이야기에서 두 눈이 빛났다.

 

"우리나라에서 수십만 톤짜리 유조선을 만든다고요?"

 

왕자는 부왕에게 말을 전했고, 왕은 면담을 허락했다. 합기도 사범은 공식 채널이 아닌 도복 하나로 왕과 마주 앉아 대한민국의 조선 기술을 설명했다. 이야기는 곧 유조선 발주 가능성으로 옮겨 갔다.

 

그 사범이 귀국 후 찾아간 것은 대우 본사였다. 김우중 회장의 면담을 신청했다. 비서진은 당연히 의아해했겠지만, 사연을 들은 김우중 회장은 자리를 만들었다.

 

"김 회장님이 누구십니까? 이런 아이디어를 놓치겠습니까."

 

지한재 총재가 회고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우중 회장의 반응은 단호했다. 합기도 사범은 각 나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무술 지도라는 이유로 왕족과 고위층의 사생활 공간에 들어가고, 인간적 신뢰를 쌓는다. 어떤 외교 채널도, 어떤 로비스트도 대신할 수 없는 방식으로.

 

김우중 회장은 지한재 총재를 불렀다.

 

두 사람이 구상한 계획은 대담했다. 전 세계 대우 지사 건물을 지을 때 2층을 합기도 도장으로 설계한다. 1층은 대우 사무소, 2층은 합기도 도장.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도장 문을 두드리고, 사범들이 그들과 신뢰를 쌓으면서, 대우의 현지화 전략을 뒷받침한다는 구상이었다. 마케팅도, 홍보도 아닌, '관계'로 시장을 열겠다는 발상.

 

대우 본사 사옥에 합기도 본부가 입주했다. 전국에서 합기도 사범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해외 진출이라는 꿈 — 1990년대 한국에서 그것은 젊은 무도인들의 가장 빛나는 미래였다. 언어 교육, 합기도 기술 통일, 국제 매너. 지한재 총재는 합기도교육부를 설치하고 정밀한 교육 계획을 가동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터졌다.

▲ 김우중과 지한재  © 한국무예신문


술기(術技)의 통일 교육이 화근이었다. 교과서적 표준을 세우기 위해 젊은 교육 사범들이 고난도 수련을 강도 높게 진행하자, 연배 있는 사범들 사이에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십 년 경력의 선배 사범이 한참 후배인 교육 사범의 교정을 받는 형국이 된 것이다. 한 명, 두 명씩 교육 현장을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한재 총재로서는 생각지도 않은 난관이었다. 안으로는 사범들의 이탈, 밖으로는 김우중 회장과의 이견이 쌓였다. 갈등은 결국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합의는 없었고, 결별이 있었다.

지한재 총재는 고국을 떠났다.

 

1998년 트렌톤의 그 집에서, 총재는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하지만 담담함 뒤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는, 듣는 이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만약이라는 역사는 없지만……."

 

만약 그 계획이 실현됐다면, 합기도의 역사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대우의 세계 경영망 위에서, 합기도 사범들은 외교관도 기업인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한국의 얼굴이 됐을 것이다. 대우의 역사도, 국익의 역사도 어쩌면 조금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최용술 도주가 어린 나이에 일본인에게 이끌려 일본에서 아이키도(合氣道)를 수련하고, 해방 후 대구에 귀국해 도장을 개관한 것은 정설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용술 도주의 기법과 지금의 합기도는 분명히 다르다. 아이키도는 관절 꺾기 기법 중심이지만, 한국 합기도에는 지한재에 의해 아이키도에 없는 수십 종의 발차기 기법이 더해졌다. 한국의 무예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가혹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무예 종목에서 합기도는 외래 무예로 분류됐다. 대한체육회 인정 단체로는 가입했지만, 수십 년을 활동해 온 수십 개의 법인 합기도 단체들은 여전히 제도의 변방에 있다.

 

지한재 총재는 2026년 타계했다.

 

합기도와 관련해 세계해동검도연맹 김정호 총재는 제언했다.

 

"합기도라는 이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합무도(合武道)'로 개칭해서, 81년의 역사를 학자들과 함께 증명하고, 전통무예 종목으로 당당히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100년 대계입니다."

 

▲ 지한재 총재(우측)와 함께(사진제공: 김정호 총재)  © 한국무예신문

 

【인물 박스】

 지한재(池漢載, 1936~2026) 신무합기도 창시자. 최용술 도주 사사. 미국 뉴저지 트렌톤 정착 후 세계 보급. 대우그룹과의 합기도 세계화 협력을 주도했으나 결렬, 이후 재미(在美) 무도인으로 활동.

 

김우중(金宇中, 1936~2019) 대우그룹 창업자. '세계경영'을 모토로 130여 개국에 지사 운영.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망명·귀국·사면의 곡절을 겪었다.

 

최용술(崔龍述, 1904~1986) 한국 합기도의 종주.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키도를 수련 후 1945년 귀국, 대구에서 합기도 도장 개설.

 

【다음 회 예고】

5회 — 정도술(正道術)의 영광과 좌절: 안일력·안호해 형제가 빛낸 시대, 그리고 "검도"라는 이름을 둘러싼 법정 싸움이 뜻밖의 문을 열기까지.

※ 이 글은 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 김정호의 구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록입니다. 인물의 경력과 사건 경위는 구술자의 기억과 제보에 근거하며, 각 회차는 김정호 총재의 사전 확인을 거쳐 게재합니다.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운 부분은 향후 보완 예정입니다. 아울러, 등장 인물 중 일부는 당사자의 요청 또는 편집상의 필요에 따라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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