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합기도 검무관의 후예가 묻습니다합기도 80년, 기득권의 성벽을 언제까지 쌓을 것입니까
나는 서울 모래내에 뿌리를 둔 합기도 '검무관(劍武館)' 본관 출신이다. 35년 넘게 매트 위에서 땀을 흘렸고, 검무관이 가르쳐준 술기와 정신을 내 삶의 가장 단단한 기둥으로 삼아왔다. 공교롭게도 지금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를 이끄는 핵심 집행부 역시 나와 같은 검무관 출신들이다. 한 뿌리에서 갈라진 선후배들이 제도권의 중추를 맡고 있는데도, 나는 오늘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같은 관(館)의 후예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침묵할 수 없다.
나는 대한민국합기도총협회 1급 지도자 자격을 갖추고 정식 승단까지 마쳤다. 그러나 내 도장을 총협회에 가입시키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미래를 위해 제도권의 우산 아래 들어가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의 행정 시스템이 일선 도장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족쇄'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자들을 그 족쇄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없었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다. 35년 합기도인으로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판단이다.
한국무예신문 서민성 기자의 심층 보도는 내가 현장에서 오랫동안 품어온 우려를 정면으로 끌어냈다. 단증과 대회 출전권—합기도인이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누려야 할 공적 자산—이 일선 지도자를 돕는 수단이 아니라, 제도권의 경계를 긋는 배타적 무기로 쓰이고 있다는 현장의 탄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형 기술 보존'이라는 명분 자체를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십 년을 땀으로 발전시켜온 일선 지도자들의 고유 술기를 통째로 배제하고, 특정 기술 형태만을 정답으로 규격화하는 방향성은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더 나아가 21세기 대회장 한복판에 특정 인물의 거대한 현수막을 내걸고 의식을 치르는 광경은—우리가 스스로 뼈아프게 물어야 한다—과연 무예 정신인가, 맹목적 권위주의인가.
그 성벽 안에서 행정이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는 동안, 성 밖의 현장은 무너지고 있다. 내가 몸담은 고양시만 봐도 그렇다. 불과 몇 해 사이 10여 개이던 합기도장 가운데 5곳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이 숫자 하나가, 어떤 행정 보고서보다 더 정직하게 오늘의 합기도 현실을 말해준다. 평생을 합기도에 바친 관장들에게 지금의 제도적 환경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렇다면 총협회에 맞서는 연합 단체들은 진정한 대안인가. 냉정하게 말해야 한다. 합기도인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들의 첨예한 대립은 대중과 수련생에게 또 다른 '기득권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 1946년 해방의 열기 속에 태동하여 80년의 역사를 쌓아온 합기도가, 왜 매번 이 소모적인 대립의 늪에서 허우적대야 하는가.
해답은 어느 한 진영의 승리가 아니다. 수많은 관(館)과 일선 도장들을 아우르는 진정한 대통합뿐이다.
나는 고양시 체육 행정의 최일선에서 갈등과 낡은 관행이 체육계를 얼마나 썩게 하는지 온몸으로 겪었다. 그 경험이 나로 하여금 오직 상생과 통합의 길만을 걷게 한다.
제도권 행정의 진짜 존재 이유는 '규제'가 아니라 '상생'이다. 서로를 향한 소모적 비난을 멈추고, 텅 빈 매트 앞에서 시름하는 일선 지도자들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대통합을 이뤄낼 때, 비로소 합기도는 초·중·고 학교 운동부 창단, 대학 학과 신설, 그리고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이라는 미래로 도약할 수 있다.
나와 같은 검무관 후예인 총협회 집행부에 간절히 청한다. 열린 마음으로 현장의 쓴소리를 수용하고, 합기도 80년 갈등의 고리를 끊는 데 앞장서 달라. 한국무예신문의 정론 직필이 합기도계의 건전한 자정을 이끌고, 전국의 뜻 있는 합기도인들이 대통합의 주춧돌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촉구한다. <저작권자 ⓒ 한국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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