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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배운 합기도, 진짜 맞습니까?

박세림 이학박사 | 기사입력 2026/05/06 [19:17]

당신이 배운 합기도, 진짜 맞습니까?

박세림 이학박사 | 입력 : 2026/05/06 [19:17]

▲ 박세림 이학박사  © 한국무예신문

무예의 분파는 어찌 보면 필연적일 수도 있다. 같은 기술을 교수하였는데도 학습자의 신체 조건은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 신체에 맞춰 기술을 구사하다 보면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동작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엉뚱한 기술을 창작해 이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한다면 대중은 쉽게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최용술의 초기 제자들을 양성하던 시절은 이른바 ‘법보다 주먹이 앞서던’ 시대였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일상이었던 그 시기에 무예는 단순한 수련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당연히 당시의 기술은 단단한 신체를 바탕으로 한 빠르고 강력한 제압술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는 고스란히 초기 제자들에게 전수되었다.

당시 수련생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여성 관원들조차 팔뚝 단련에 매진하여 건장한 남성 못지않게 강인한 신체를 보유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초기 합기도는 철저한 신체 단련을 전제로 한 '강력한 유술기(柔術技)'를 통해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는 실전 무예였다.

그러나 오늘날 합기도를 대표한다 주장 하는 곳과 제도권 소속의 합기도는 어떠한가. 무예의 본질이 변질되어 전통을 훼손하고, 오직 자신의 권위와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전성을 잃어버린 무예는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무예가 그 뿌리를 잃고 형식적인 유희에 그치게 된다면, 대중의 눈 밖으로 밀려나 결국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정통 합기도의 강인함을 다시금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무도(武道)로서의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 ​사진1. 故김윤상 관장의 시범(출처 : 다음 카페 무동)     ©한국무예신문

 

현재 합기도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최근 대중 매체와 영상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일부 시범 영상들은 수련생과 학부모들에게 커다란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내가 수련했던 합기도, 그리고 내 아이가 배우고 있는 합기도는 결코 이런 허구적인 모습이 아니었다"라는 성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비과학적 보여주기식' 시범이 도장 운영과 직결될 때 발생한다. 만약 자극적이고 과장된 시범이 관원 모집과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현재의 합기도 지도자들은 해당 사범을 옹호하고 보호하려 들 것이다. 당장의 생계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전통이나 무도의 진정성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영상 속의 과장된 행위들이 영업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면, 그들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를 정당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무예의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합기도가 쌓아온 수십 년의 신뢰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을 핑계로 한 방관이 아니다. 무엇이 진정한 합기도이며, 후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무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도자들의 뼈아픈 자성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 사진2. 대힌민국합기도총협회 사무처장 최용운의 시범(출처 : 협회 유튜브)  © 한국무예신문


현재 용술관은 이러한 논쟁을 피하려는 듯 ‘덕암류 합기유술’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현대화된 합기도와 구분하기 위해 ‘덕암류’라는 명칭을 쓴다고 주장하지만, 최용술 생전에 그를 ‘덕암 선생’이라 부른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제자들은 주로 ‘영감’이나 ‘최 도주’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따라서 생전에는 쓰지도 않던 호(號)를 내세우거나 생가를 ‘종가(宗家)’라고 부르는 행위는, 무도의 본질보다는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합기도인들은 이러한 얄팍한 수에 혼동하거나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듯 교묘한 수법으로 본질을 가리고 상황을 넘기려는 자들이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탄생한 지 채 백 년도 되지 않은 합기도의 역사에서, 최근 벌어진 가짜 '기(氣) 시범'은 무예의 근본적인 신뢰에 커다란 금을 그었다.

 

​비상식적인 기 시범을 자행했던 자와 이를 흉내 내는 자로 인해, 합기도를 보급하고자 했던 최용술의 숭고한 노력까지 함께 폄훼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가짜가 본질을 가리는 작금의 행태는 진정한 무도 정신의 회복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 외부 칼럼(기고)은 본 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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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맨 2026/05/11 [06:10] 수정 | 삭제
  • 쉬샤오둥 출격!!
  • 이근복 2026/05/07 [01:13] 수정 | 삭제
  • 검증할 수 없는 기술을 마치 신비하거나 절대적인 것처럼 우상화하는 행위는, 결국 합기도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첫 번째로 현장에서 지도하는 지도자들이 떠안게 되고, 두 번째로는 아무런 판단 기준 없이 수련하는 수련생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무예는 신비가 아니라 검증과 체계, 그리고 책임 위에서 이어져야 하는 분야입니다. 과연 이런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이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신비화하는 순간, 무예는 무너지고 그 책임은 결국 현장에 전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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