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종교마다 금하고 권하는 계율이 있어 당연히 수행자에게도 해당되는데 그 중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공통된 금기가 바로 섹스다. 왜냐하면 신(神)이 질투하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도 때도 안가리고 매일같이 즐기는 인간들의 섹스이기 때문이다. 하여 몰래 숨어서 즐기다보니 인간은 섹스행위가 남들에게 들킬까봐 부끄러워하는 유일한 동물이 된 것이다.
인간이 신(神)이 되거나 신처럼 신령스런 능력을 지니려면 인간답지 않게 살아야 할 확연히 구별되는 무엇이 필요했다. 인간이 누리는 것 다 누리면서 신으로(신처럼) 떠받들어달라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겠다. 그러니까 세속(世俗)과 구별되는 뚜렷한 경계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금욕(禁慾)이라는 계율이다. 여기까지가 사회 통념이다.
그런데 수행자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수행에서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앞에 나열한 ‘마음’과 관련된 감정적 욕구들이며 그 중에서도 성욕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수행이 잘 되어 집중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 통제받지 않은 욕구와 그 욕구에 얽혀 저장된 기억의 이미지가 툭 튀어 나올 때가 많다. 가령 컴퓨터를 만지는데 갑자기 화면 전체에 야한 동영상이 증강현실로 확하고 뜨는 것과 같은 일(환각)이 벌어진다.
현실(또는 꿈)에서야 그런 일이 생겨도 잠깐 당황하다가 얼른 지우고 넘겨버리면 그만이지만 삼매 또는 무기혼침(無記昏沈) 상태, 그러니까 대뇌의 다른 의식(판단, 절제)기능을 하는 부분이 수면 내지는 반(半)수면 상태라 미처 통제할 틈도 없이 그 충격이 두뇌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미치고 만다. 다시 말해 백(魄)이 놀란 것이다. 너무 강렬해서 그 순간 이제까지 쌓아온(닦아온) 공든탑(삼매상태)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컴퓨터로 치민 엔터키 하나 잘못 눌렀다가 수십 년 간 작업해온 것이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거나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꼴이다. 심한 경우에는 미쳐버린다.
비단 성욕뿐만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분노, 증오 등 다른 감정도 마찬가지다. 잉크병 엎지르듯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다. 악귀가 그렇게 씌고 나면 원상복귀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치료를 하려면 미치기 직전의 상태로 돌려놓고 살살 달래서 가라앉혀야 하는데, 이미 미친 상태에선 어떤 힘으로도 환자를 다시 그 삼매 상태로 들어가게 도울 수가 없다. 최면도 웬만한 상태의 환자에게나 쓸 수 있지 완전히 돌아버린 상태에선 별무소용이다.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감방과 같은 지하 독방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미 섹스의 쾌감을 경험한 사람은 수행할 수 없다는 말인가? 아무려나 그럴 리야 없겠다. 하여 평소 계율을 잘 지키고 제감(制感) 훈련을 통해 통제하는 습관을 들여놓으라는 말이다. 그게 잘 된 수행자라면 응념(凝念)‧정려(靜慮)‧삼매(三昧)에서 그런 돌발적인 환각(사고)이 생기지도 않겠지만, 설사 그런 현상을 접하더라도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혀 지워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차라리 보다 적극적으로 성(性)을 극복해보자고 만든 것이 탄트라 요가다.
수행은 판도라의 상자를 닫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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