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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법(劍法)의 구성 원리와 서법(書法)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1/10/1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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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무릇 예(藝)란 반드시 법식(法式)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는 그 모든 예능 중에서 무예 동작만큼 엄밀하고 과학적인 것은 없다. 가령 예로부터 전해져 오던 춤이 있다고 하자. 그 춤을 추는 이들에게 왜 손을 그렇게 휘젓고 어깨를 들썩이느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겠나. 그냥 보기 좋고 흥이 나니까 그렇게 추는 거지"라고밖에 더하겠는가.
 
그렇지만 무예(武藝)에서는 어림없는 말이다. 그랬다가는 한번 싸우는 데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칼끝의 방향이 터럭만큼만 달라져도 그에 합당한 이유를 대어야 한다. 눈알 한번 돌리고 숨 한번 쉬는 것조차도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머리카락만큼의 차이에 하나뿐인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무예 동작을 글에 비유해서 설명하여 보자.
 
우선 보형(步型)은 글자로 치면 모음(母音)에 해당된다. 그러면 팔은 자음(子音)이 된다. 검을 들었어도 마찬가지이다. 팔의 길이가 그 만큼 길어진 것뿐이므로. 이 둘이 합쳐져 글자 한 자가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한 세(勢)가 이루어진 셈이다. 다시 이 글자가 두세 개 연결되면 하나의 단어(單語)가 되는데, 그것이 일 초식(招式)이다. 공수(攻守)의 의미가 내포된 이 기본 동작을 단수(單手) 혹은 단권(單拳)이라 하여 반복 연결해서 끊임없이 수련하는데, 여기까지가 기본 동작이다. 다음은 이 초식을 5-6개 연결시키면 드디어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지고, 다시 서너 개의 문장으로 하나의 시(詩), 즉 투로(套路), 이를테면 총보(總譜)가 완성되어 독자적인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기본 문장인 투로까지가 얼마나 탄탄하게 잘 짜여져 있나 하는 것이 곧 그 무예의 수준이 된다. 대개 각 무예 문파들에는 이런 기본 투로가 각 종목마다 한두 개씩이 있다. 그리고 세명(勢名)은 반드시 그 무예를 익힌 자기네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가결(歌訣)들로 표현해 놓고, 실제 동작은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보여줄 때에는 응용 동작 몇 수만 보여준다. 그만큼 기본 동작은 중요한 것이고, 그 기본 동작을 구체적으로 단련하는 법은 대개 글로 남기지 않을 뿐더러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중에 선조가 직접 명나라 장수 이여송에게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였을 때 거절당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이야 시중에 음식 요리법을 알려 주는 책자가 널려 있지만 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뉘 집 장(醬)맛이 좋아 이웃집에서 그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래도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대신 장은 얼마든지 가져다 먹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일국의 왕이 그렇게 사정하는데도 《기효신서》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대신 조선의 날랜 병사들을 뽑아 명군에게서 무예 실기를 배워 가게는 하였다. 물론 나중에 역관을 시켜 몰래 그 책을 구해 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그만큼 기본은 중요한 것이다.
 
글자처럼 그 기본 공식을 알면 그것으로 얼마든지 나름대로(때로는 더 나은)의 문장(투로)을 만들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모원의가 《무비지》를 편찬할 때, 천하에 널려 있는 검법 기예들을 마다하고 오직 '조선세법 24세'만을 실어 놓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 검법의 24세가 모든 검법의 기본, 즉 글자로 치면 자모(子母)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어의 알파벳, 한자의 기본 부수, 한글의 자음과 모음 같은 것이다. 그만큼 기본을 중요시한다는 말이다.
 
무예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먼저 이 기본 법식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기본을 알면 수천 수만의 변화와 응용이 가능하지만, 기본도 모른 채 먼저 응용 동작을 익힌 사람은 나중에 그 기본 동작이 잘 익혀지지가 않는다. 당연히 다른 응용 동작 또한 불가능해진다. 오직 처음에 익힌 응용 동작 한 가지만 죽도록 익힐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세명(勢名)에는 용(龍)․봉(鳳)․호(虎)․표(豹)․수(獸)․원(猿)․사(蛇) 등 짐승의 글자가 들어 있는 것이 많다. 상당 수준의 무학을 갖춘 이라면, 그 세명만 들어도 상대의 어디를 어떤 식으로 베거나 치고 나가는 동작임을 짐작할 줄 안다. 모두 그 짐승의 특이점을 살려 비유해 놓은 까닭이다. 물론 제대로 된 문중에서 정확한 의미를 숙지하지 못하고, 막연한 상상력만으로 그 짐승들의 동작을 흉내내다가는 우스운 꼴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익힌 것을 실전에서는 응용 동작으로 변화시켜 사용하게 되는데, 한 초식씩 서로 주고받으며 겨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에는 투로의 순서와 관계없이 그때그때 필요한 초식을 반사적으로 구사할 수 있도록 숙련되어야 한다.
 
현대에 와서는 각 문파의 이렇듯 귀한 초식과 투로가 세상에 공개되어 책방에 널려 있다. 덕분에 각 도장마다 이러한 투로를 십여 개씩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단지 온갖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종의 욕심에 다름 아니다. 옛날의 아무리 오래된 문파라 해도 대개 권법이면 단수 몇 개, 혹은 투로 한두 개가 고작이었다. 그 한두 개를 무한히 반복해서 단련하였다. 그야말로 눈감고도 반사적으로 초식들이 튀어나올 때까지 평생을. 그래야 자기 무예가 되는 것이다.
 
간혹 시중에서 이런저런 무예들을 두루 배워 모두 합치면 십몇 단이 된다느니 하며 자랑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저 수집 취미일 뿐이지 무예 수련의 올바른 길은 아니다. 전투에 임하는 병사가 온갖 무기란 무기를 다 짊어지고 나가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래서 옛말에 "잘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정통하지 못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과단성이 없다"고 했다.
 
▲ 무예도보통지내용중 교전     © 한국무예신문

식(式)은 형(形)이며, 법(法)은 용(用)이다.

형식면에서 온전한 문장 하나를 얻었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것 또한 더욱 수준 높은 이론이 필요하다. 중국의 어떤 문파의 검법(劍法)도 《무비지》에 나온 '조선세법(朝鮮勢法)'의 24세(勢)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개 10여 개의 세(勢)들로 자신들의 검법 투로를 짜고 있으며, 같은 세(勢)라 하더라도 각 문중마다 나름대로 운용을 달리하며 세명(勢名)도 따로 짓는다.
 
그렇지만 어떤 명칭으로 불리든간에 그 기본 요체는 대동소이하다. '조선세법' 24세 중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이 '거정세(擧鼎勢)'이다. 이 세를 '평대세(平擡勢)'와 '군란세(裙鄂勢)'로 연결해서 행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세 가지 세로써 한 초식을 만들어 연습하라는 것이다. '거정세'란 글자 그대로 솥을 들어올리는 격(格)으로 검을 들어올려 상대의 무기를 막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검을 수평으로 앞을 향해 위로 들어올려 막는 동작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각 문파나 개인의 무학(武學)의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무비지》나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그림처럼 오직 기본대로만 수련하는 사람은 평생 하수(下手)를 면치 못하고, 그 기본과 정신을 제대로 알고 쓰임새에 맞게 여러 가지로 변화해서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은 고수(高手)가 되는 것이다.
 
거정(擧鼎)을 하되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곧바로 올리는 기본적인 거정이 있고, 분충거정(奔衝擧鼎)이 있다. 좌거정(左擧鼎)이 있고, 우거정(右擧鼎)이 있다. 그리고 편섬거정(偏閃擧鼎)이 있다. 실전에서는 어느 것을 사용할 것인가? 이 이외에 다른 변화는 없을까? 물론 무수히 많다. 또 거정(擧鼎)만 단독으로 연습할 때와 평대(平擡)-군란(裙鄂)으로 이어서 할 때는 어떻게 칼의 길을 잡아야 하는가? 만약 순서가 바뀌어 평대-군란-거정으로, 또는 군란-평대-거정으로 운용할 때에 거정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세(勢)들과 연결할 때는?
 
같은 동작을 검(劍)이 아닌 도(刀)로 운용할 때에는 어떻게 길을 잡아야 하는가? 칼이 길 때와 짧을 때, 무거울 때와 가벼울 때는? 장소가 넓을 때와 좁을 때는? 또 만약의 경우 칼이 없을 때, 즉 권법으로는 운용할 수 없을까? 칼 대신 봉(棒)으로는? 당연히 이 모든 물음에 막힘없이 답하고 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각 세(勢)의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기까지 와서야 비로소 거정-평대-군란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문장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세(勢)는 동사형(動詞形)이다. '들다'라는 기본형 어간을 '밀어들다''비켜들다''받쳐들다'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앞뒤 단어에 따라 '들고''드니''들며''들어서' 등으로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종결동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연결동사가 되기도 한다. 거정-평대-군란을 책대로 기본 동작을 풀자면 '들어올려 앞을 막고 평대로 목을 베고 물러나며 군란으로 허리를 친다'가 된다. 이 문장을 그 뜻과 순서에 변함없이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다. 그건 그 사람의 문장 실력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문법도 모르는 실력(武學)으로 함부로 휘두르면 미군기지 주변에서 배운 양공주 영어처럼 되어 망치기 십상이다. '앞을 향해 비스듬히 베어 올려 위를 막으면서 살(殺)하고, 이어서 어깨선을 따라 상대의 목을 당겨 베고, 다시 한 발 물러나면서 검을 바깥으로 넓게 휘돌려쳐 상대의 허리를 자른다.' 동작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해도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글로써 이 이상으로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때 제대로 배운 고수라면 능히 발이든 손이든 앞뒤좌우 구분없이 자유자재로 이 동작을 구사할 것이다.
 
이렇게 그 원리를 완전하게 깨우치고 몸에 배도록 단련한 다음, 실전으로 운용할 적에는 한 초식(抄式)을 한 동작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초보자는 대개 한 초식을 원칙대로 '하나' '둘' '셋'의 세 동작으로 연습하지만, 고수가 되려면 이것을 한 동작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법(身法)과 운용법을 모르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후 실기와 이론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 나가 음양(陰陽) ․ 표리(表裏) ․ 허실(虛實) ․ 종횡(縱橫) ․ 입원(立圓) ․ 내외(內外) ․ 기락(起落) ․ 장단(長短) ․ 강유(剛柔) ․ 난나(鴉拿) ․ 쾌만(快慢) ․ 소말(消抹)…… 등의 이치를 깨우쳐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내공(內功)의 수련을 병행해 나간다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무비지》에 실린 '조선세법' 24세는 고대 조선의 검법(劍法)이다. 모원의가 이것을 조선에서 구하여 실었을 당시만 해도 이미 검(劍)을 사용하는 예가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중기 무렵부터 검(劍)이 도(刀)에 밀려나기 시작했었다. 따라서 이 검법은 최소한 고려 초기 혹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학자들도 이 검보(劍譜)가 이 땅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모원의의 《무비지》를 통해서야 전해지게 된 것을 두고두고 애석해하였다.
 
그리하여 이를 기본으로 새로이 《본국검》을 만들었는데, 그 연기(緣起)를 신라의 황창랑(黃倡郞)으로 잡고 있다. 이후 이 24세 검법은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의 모든 검법의 모태가 된다. 왜냐하면 천하의 어떤 고수가 어떤 세법을 창안해서 구사한다 해도 결국 이 24세를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세법' 24세는 검으로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기본동작(勢)을 완벽하게 정리해 놓은 것으로 가히 검경(劍經)이라 일컬을 수 있다.
 
검이나 붓이나 영자팔법(永字八法)

대개 검(劍)의 수련은 서예(書藝)와 닮은 점이 많다. 칼이나 붓이나 그 사용법의 기본은 영자팔법(永字八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항상 기본을 중시하는 이유도 서로 같다. '조선세법'에서는 격(擊)․자(刺)․격(格)․세(洗)의 기본 세법(勢法)을 가장 중요시하며, 먼저 수만 번을 익혀야 한다. 서예를 배우면서 맨 먼저 한 일(一)자를 1만 번 그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와 같다. 물론 1만 번 그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지만. 이런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착실히 밟아 가면서 글자를 깨우치고, 문장을 능숙히 구사하게 된다.
 
그 과정이 무예 수련과 매한가지이다. 그리하여 처음엔 해서(楷書)를 익히고, 그 다음엔 행서(行書)를, 그리고 초서(草書)를 연습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자유자재로 붓을 놀려도 결코 기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행서나 초서를 배운답시고 갈겨쓰거나 급하게 다음 순서로 넘어가게 되면 글씨를 완전히 망치게 된다. 또한 평생 해서만 익힌 사람은 초서를 결코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검법(劍法)도 마찬가지로 초서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 같은 글자라도 앞뒤의 글자에 따라 변하듯 초식도 천변만화한다. 한 초식 한 초식을 펼칠 때마다 강약(强弱)과 쾌만(快漫)을 조절하여 끊어지듯 이어지며 마디마다 한 송이씩 검화(劍花)가 피어나게 된다. 처음에는 몸이 병장기를 끌고 가지만, 능숙해지면 반대로 병장기가 몸을 이끈다. 그리하여 투로는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 이어진다. 한 초식은 대부분 '하나'의 동작으로 연출되는데, 각 세(勢)들은 모두 빠짐없이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감춰져서 그 경지에 이른 고수가 아니면 결코 알아보질 못한다.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드디어 고수(高手)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또한 왕희지(王羲之)체니, 조맹부(趙盟坦)체니 추사(秋史)체니 하듯이 자신만의 아름다운 멋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로소 무(武)의 학(學)과 예(藝)를 논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검법이 서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가 있다는 점이다. 천변만화하는 초식의 변화에 반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중국 당대(唐代) 초서의 비조인 장욱(張旭)의 글씨는 광초(狂草)로 불리운다. 그는 술에 취한 뒤 고함을 지르며 미친듯이 붓을 휘두르고, 심하면 머릿결에 먹물을 적셔서 춤을 추듯 초서를 휘갈겼는데 이를 발서(髮書)라 불리었다. 그가 하남성에 있을 적에 관기(官妓) 공손대낭(公孫大娘)이 추는 절묘한 검무(劍舞)를 보고 초서의 정신을 얻었다고 하는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장욱의 광초는 이백의 시(詩), 배민(裵旻)의 검무와 더불어 당대 삼절(三絶)로 불리었다.
 
이런 과정을 익혀 나가려면 반드시 훌륭한 스승을 만나 지속적인 지도를 받아야 한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듯이, 혼자서는 열 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가장 기초적인 보형(步型)의 원리 하나 제대로 깨닫기 힘들다. 시중에는 간혹 독학으로 십팔기를 터득했다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아 이차방정식도 모르는 사람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풀어낸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예는 체득(體得)의 학문이어서, 앞에서 열거한 온갖 원리 중 한 가지를 이해하고 증명하는 데에만도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기본을 착실히 소화한 후에 다음 술기를 익혀야지, 급한 마음에 대충 익히고 넘어가면 망치게 된다. 한 일(一)자 서너 번 그어 보고 곧바로 행서나 초서로 들어가는 꼴이다.
 
근본이 부실하면 천박해지는 것은 물론 아무리 해도 저잣거리 막싸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한번 기본이 잘못되어 굳어 버리면 다시 고치기가 너무 힘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항상 '배우기는 쉬워도, 고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이후 다른 훌륭한 기예를 보고서 익히고 싶어도 거의 절대적으로 몸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조차 편견이 생겨 바른 것을 보고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시중에서 다른 무예를 익혔다는 이들이 십팔기를 배우려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십팔기를 먼저 익힌 이들은 여타 어떤 무예의 어떤 동작도 그대로 흉내내며 곧바로 자기 식으로 소화해 낼 수가 있다. 그런데 저들은 십팔기의 주먹 찌르는 것 하나 흉내내기가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본인으로서는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 이해조차 못하지만. 기본이란 그처럼 무서운 것이다.
 
아무튼 대충 기술해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의 무예인이 만들어지는데, 근본 있는 문중에서 이같이 제대로 배우면 누구라 해도 10년차가 20년차를 이기지 못하고, 20년차가 30년차를, 30년차가 40년차를 절대 능가할 수 없다. 당연히 똑같은 동작도 10년이 다르고, 20년이 다르고, 30년이 다르다. 그건 무예계의 만고의 진리이다. 제대로 기본 법식을 알고 수련하면 하루의 연습량에도 차이가 있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져 젊은이들에게 밀린다고 하는 것은 잘못 배운 것이다. 그런 것들을 두고 무예라 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체육(때로는 노동)일 뿐이다. 무예란 일반 체육처럼 근력(筋力)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徑力)으로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正) 기(技)와 술(術)을 배우고(學) 끊임없이(恒) 익혀서(習) 실천해야(行) 한다. 머리로만 익힌(외운) 것은 잊혀지고,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다. 하지만 몸으로 익힌 것은 절대 잊거나 버리지 못한다. 무언(武諺)에 이르기를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익히는 것만 못하고, 백 가지 익히는 것이 하나의 전일함만 못하다(百看不如一練, 百練不如一專)'고 하였으며, 또한 '천 초를 펼칠 수 있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한 초가 숙련되었음을 두려워하라(不酷千招會, 就酷一招熟)'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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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0/11 [03:13]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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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교 2013/08/26 [20:57] 수정 | 삭제
  • 참고로 한국무예신문 컬럼의 허인욱교수님의 글을 잘 읽어보시고,무예도보통지
    예도에 있는 총도와 총보가 왜 있는지 부터 아시면 선생의 의견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허인욱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입니다.저의 의견에 잘못이 있다면 의견을 올려주시고 겸허하게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광교 2013/08/26 [20:44] 수정 | 삭제
  • 조선세법을 이야기 할려면 무예제보번역속집을 구해서 공부하시고 광해군 때의 역사공부를 하시면 답이 저절로 나올것입니다.우리것이 아니고 왜검 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잘못 전달되면 누워서 침 ?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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