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노(李國老) 대한검도회 부회장. © 한국무예신문 | |
“국내 검도단체들이 저마다 ‘전통무예’한다고 ‘무예도보통지’를 흉내 내고 있는데 검법은 모두 제각각입디다. 왜 그런지 아세요?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예요.”
이국노(李國老) 대한검도회 부회장이 한국무예계를 향해 ‘숨기고픈’ 치부를 건드리며 일갈했다.
“같은 책을 보고 하는 ‘조선세법’이 검도단체마다 다르다면 문제 있는 거지요. 제대로 하고 당당해야할 무예인으로서 (정확하지 않아)부끄러운 일입니다.”
전통무예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많은 무예단체들이 ‘전통’ 운운하며 ‘무예도보통지’의 검법을 계승했다거나 복원한 것이 자신들의 무예라고 하고 있다. 문제는 단체마다 하는 ‘조선세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 이국노 부회장은 그것의 해결방안으로 ‘전통무예 표준화 사업’을 제시했다.
전통무예 표준화 사업이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무한한 무예사적인 가치를 지닌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올바로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서는 각 무예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해 토론을 통한 의견수렴 및 일치를 이루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예도보통지의 ‘도보(圖譜)’에 가장 근접한 ‘표준검법’을 정하자는 일로써, 이국노 부회장이 최초로 구상해낸 것이다.
“정조대왕이 당시 최고 석학인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고수인 ‘백동수’, 뛰어난 실력을 갖춘 화공(畵工)들과 함께 무예동작 하나하나를 설명과 함께 그림으로 그려가며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림과 설명을 보고 누구나 쉽게, 그리고 제대로 따라하라고 만들었을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예도보통지’를 논할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자료 충분, 전통무예 표준화 사업 서둘러야전통무예 표준화 사업에 대해, 기자가 국내 몇몇 검도단체에 의견을 들어보니 대체적으로 “취지는 찬동, 실행은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 명분은 있어 찬성은 하되, 실천에 옮기기에는 생각이 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의견에는 ‘만약 표준화사업을 하는 경우 자신들의 단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단체들의 정체성과 미래 방향성이 다른데 똑같이 통일할 필요 없다’ ‘애초 무예도보통지 검법의 그림이 실제동작과 맞지 않은 게 많으므로 그대로 따라할 필요 없다’ ‘일본검도를 하는 대한검도회 사람이 그런 제안을 하는 자체가 문제다’ 등이 있었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이국노 부회장은 “무예를 한다면 무릇 당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후학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국내 대표적인 검도단체라고 해봐야 5~6곳이다. 그 단체 대표들과 학계 전문가, 언론인들이 참여해 토론 등의 학술세미나를 가지고 하면 쉽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한다”면서 무예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요구했다.
이국노 부회장이 말하는 5~6곳의 검도단체는 ‘십팔기보존회’ ‘24반무예’ ‘해동검도협회(2)’ ‘대한검도회’ ‘대한본국검협회’ 등을 염두한 것으로 보인다.
▲ 무예서적을 뒤적이는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이국노 대한검도회 부회장 겸 한국예도문화체육재단 이사장은 병서(兵書)만 400여 권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무예에 대한 열정이 높고 조예 또한 깊다. © 한국무예신문 | |
무비지 2질을 비롯해 병서(兵書)만 400여 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국노 부회장은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본국검에서 ‘진전격적세(進前擊賊勢)’ ‘향전살적세(向前殺賊勢)’가 본문에 나오는데 동작을 연결시킨 ‘본국검총보(本國劒總譜)’에는 ‘진전살적(進前殺賊)’ ‘향전살적(向前殺賊)’이라고 나온다”면서 “의미는 비슷하나 표현은 왜 다르게 했는지 등을 본국검(조선세법)을 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통해 알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동작만 흉내 냈지 그 자세한 깊이를 모르니 철학도 없고 검법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핀잔이자 일침인 것.
검도생활 50년 동안 수많은 검도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봤다고 하는 이국노 부회장은 “십팔기보존회 신성대 회장과 대한검도회 이종림 부회장이 무예식견이 상당히 높았다”고 평가하면서도 “나름 ‘고수끼리’의 대화를 서로가 피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피하는 이유에 대해 이국노 부회장은 “나 자신 병서 400여 권을 욀 정도로 읽었다. 그렇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모르는 질문이 나올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면서도 “반대로 답변을 못하면 오히려 질문자가 불편해 할 것을 고려해 그러지 않는가 싶다”고도 말했다.
평소 무예인의 품격(品格)을 강조하는 이국노 부회장은 “무예계는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잘못된 건 쿨하게 인정하는 문화가 부족해 아쉽다”면서 “당당하고 품격 있는 무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과 실력 등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장학사업 등 무예인 지원 위해 한국예도문화장학체육재단 설립지난해 4월 무예인의 예(禮)와 도(道)를 키우며 일본검법보다 우수한 조선세법 등 전통무예의 표준화 사업, 무예인 장학사업, 원로무예인 포상 지원 사업 등을 목적으로 한국예도문화체육장학재단을 설립한 이국노 부회장은 “칼을 쓰는 무예(武藝)의 ‘예(藝)’는 ‘道’를 닦는 것이고 그것은 스승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돈벌이 말고 제대로 ‘무예’를 한 스승이 무예계에 몇이나 될까?”하고 물으면서 “배움과 가르침이 없으면 ‘道’가 아니다. 그 ‘道’ 앞엔 반드시 ‘예(禮)’가 붙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국노 부회장의 무예인으로서의 철학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는 10월 21일 이국노 부회장은 ‘8(八)단’ 승단시험을 치른다.
지난 4월, 대한검도회 八단 승단시험에 4번째 도전해 낙방의 쓴맛을 본 이국노 부회장은 소탈한 웃음을 보이면서 “몇 번 떨어지는 사이 ‘는’ 게 느껴지는데 그게 ‘내공’이 아닌가 싶다”면서도 “이번에는 꼭 붙어 주위 분들에게 생색을 좀 내고 싶다”고 소박한 희망을 밝혔다.
대한검도회는 7단에서 10년이 지나야 8단으로의 승단자격이 주어진다. 승단자격이 주어진다 해도 합격은 승단응시자 100명 중 1명가량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렵다.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같다.
이국노 부회장은 5번째 도전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4전5기’를 달성할 수 있을는지 벌써부터 기대가 앞선다. 더불어 무예계에 제안하는 '전통무예 표준화 사업'도 좋은 결실 맺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