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 무예인(무술인, 무도인)이라 하는 사람들도 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허니 자신이 수련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학계에서도 이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고대 병장무예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하다보니 이런 개념에서부터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엄격한 의미에서의 무예는 ‘자위적 본능의 방어 기술이 축적되고, 병기의 발전과 더불어 전문적으로 공수(攻守)와 살상(殺傷)을 담당하는 무사(武士)가 등장하면서 구체화되었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무예란 ‘무기를 사용하는 기예’이다. 그러니까 전통무예란 창, 칼 등 전통적인 무기를 다루는 기예를 말한다. 당연히 현대무예란 현대적인 무기를 사용하여 적을 살상하는 기술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무예란 자신의 방어와 적의 살상을 목적으로 병기를 가지고 법(法) ․ 기(技) ․ 술(術)에 따라 체계적으로 끊임없이 능숙해지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기예질의(技藝質疑)〉편에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하는 것은 궁시(弓矢) 한 가지 기예만 있고, 칼과 창은 헛되이 기기(器機)만 있으며 익히고 쓰는 법(法)이 없다”라고 통탄하였다. 다시 말해 무기도 있고 병사도 있지만 이를 다루는 기예, 즉 무예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로써 우리는 무예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일반 사람이 낫이나 곡괭이를 들고 적과 싸웠다고 해서 그가 무예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역시 저잣거리의 깡패가 아무리 주먹 싸움을 잘한다 해도 그를 무예인이라 불러주지 않는다. 그냥 싸움꾼일 뿐이다. 그 싸움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혼내 주기 위한 것이지 살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비록 병사라 하더라도 그 기예를 익히지 않고 전투에서 병장기를 휘두른다면 그 역시 무예인이라 칭하기가 곤란하다. 즉, 무기를 다루는 기예를 몸에 익히지 않았다면 그를 무예인이라 일컬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비록 작대기라 하더라도 그것을 무예인이 휘두를 때에는 무예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이름을 지닌 무예문명화된 인간의 모든 움직임, 즉 무예든 춤이든 운동이든 그것이 나름대로의 법(法)과 식(式)에 따라 능숙하게 숙달되어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표출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기예로서 고유한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정조대왕은 앞서 사도세자가 완성한 열여덟 가지의 병장무예 종목에 비로소 ‘십팔기’란 이름을 붙이고, 이를 후세에까지 교본으로 남기게 하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에까지 전하는 《무예도보통지》이다. 이 ‘십팔기’는 고대 전통 무예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총망라한 종합무예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이것 이외에 다른 어떤 무예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조선의 멸망과 함께 그 빈자리에 일본의 스포츠화 된 무도인 검도(劍道)와 유도(柔道)가 강제로 이식되었으며, 해방 전후에 일본 시중에는 호신술인 가라테(空手道)와 합기도(合氣道)가 들어와 오늘날까지 전통무예인 양 행세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인간의 원시적인 몸짓, 혹은 무예의 한 가지에서 분화되어 나온 호신술을 무예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산을 국산이라고 우기는 일은 최초로 무예계에서 시작되었다 하겠다.
해방이 되고도 아직도 일본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처럼, 식민 지배로 인해 이 땅에 이식된 일본무예(호신술)가 아직도 상당부분 전통무예를 대신하고 있다. 다만 그 중 가라테는 해방 후 곧바로 ‘태권도’로 개명하여 한국무예(호신 스포츠)를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1970년초에 불어닥친 중국무협 열풍과 함께 ‘쿵푸’가 몇몇 화교 무술인들에 의해 퍼져 나갔다. 이어서 1990년대 한중 수교와 함께 경기화 된 체육무예 ‘우슈(武術)’가 수입되었다.
무학(武學)은 과학하는 학문그리고 1983년 ‘택견’을 무예 종목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는데, 여기에는 큰 오해와 실수가 있었다. 택견은 무예가 아니고 놀이다. 씨름과 더불어 놀이(戱)에 불과한 ‘택견’을 전통무예로 지정해 놓은 것도 이처럼 무예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는 상태에서 저질러진 어처구니없는 실수라 할 수 있다. 태권도 족보만들기의 일환으로 반강제적으로 추진된 이 일은 전통무예의 개념 정립에 치명적인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 문제는 무학(武學)이 발전하면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외에 자칭 전통무예임을 내세우는 무예인들이 70년대 들어서서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조상대대로 비전되어 오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실 모두가 신상품으로 만든 것들이다. 역사적이고 문헌적인 근거가 전혀 없으며, 대개는 합기도와 검도, 중국무술로 짜깁기 해 만든 것들이다. 일본무도 혹은 중국무술을 조금씩 익힌 자들(제대로 익힌 자들은 절대 그런 짓 안한다)이 자신의 생업을 위해 신라 ․ 백제 ․ 고구려의 그 무엇을 들먹이거나 불가(佛家) 혹은 선가(仙家)를 팔아서 창안(?)한 것들이다.
이와 같은 근대 무예사의 혼동으로 인해 태권도와 택견이 한국 무예를 대표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학계는 물론 국민 모두가 이 두 가지 종목 이외에는 전통무예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끔 되었다. 그것도 근 1백 년 동안이나. 그렇다면 이 땅을 오직 맨주먹 맨발으로 수천 년을 지켜왔다는 말이 아닌가. 나라가 있으면 군대가 있고, 그 군대에는 당연히 수많은 무기와 그것들을 다루는 기예가 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통무예에 대한 오해, 혹은 무지80년대 십팔기의 등장에 의해 전통무예에 대해 날로 관심이 커지고,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각광을 받게 되자 너도나도 전통무예를 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나 한편으로 이러한 무예의 개념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도 전통무예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지만, 모두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두서없이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체육학계 위주로 되다 보니 무예 주변의 놀이 혹은 스포츠, 그리고 이와 유사한 온갖 것들을 모아 전통무예란 이름으로 뭉뚱그리려는 경향이 있어 더욱 혼란스럽다.
오히려 학계라면 이를 더욱 명확하게 구분지어야 할 텐데 말이다. 연구하는 본인들 자신이 대개 그 종목의 전공자들이거나 이러저러한 이해관계에 있다 보니, 이 방면의 논문이나 책자들은 그저 자기 미화와 견강부회가 지나치다 못해 사학계나 민속학계에서 보면 웃지도 못할 만큼 황당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무예인 자신들이 하루빨리 무협지, 무협영화, 무협만화적 망상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이런 조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한국 무예사에 관심을 보이는 단계. 결국 《무예도보통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만, 아직 자기 나라 무예의 명칭조차도 제대로 모르고서 헤매고 있다. 먼저 ‘십팔기’가 있어 이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그 교본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는데, 《무예도보통지》가 있어서 ‘십팔기’가 나온 줄 알고 그 책만 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난데없이 ‘24기’가 무예 명칭인 줄 알고 너도나도 ‘24기’‘24반’을 들먹이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덕분에 무예의 개념조차 모르는 학자들도 덩달아 첫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시중에서야 광역의 의미로 자신들의 호신술이나 스포츠를 무예라고 주장, 혹은 착각할 수 있지만, 학문의 세계에선 어림없는 이야기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인심이 후해서야 되겠는가. 무예와 놀이(호신술, 체육, 스포츠)는 처음부터 그 목적에서부터 완전히 달라진다. 당연히 그 정신도 다르다. 역사적 사실과 개념 정리부터 분명히 하고서야 그 정신을 바로 세울 수 있음은 불문가지. 이현령비현령, 아전인수격으로 역사를 끌어다 붙이는 등, 불분명한 경계와 개념에서 올바른 무예정신이 정립될 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