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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몰랐던 고구려 기마문화 진실(眞實)
우리 민족의 위대한 기마술 우수성 담긴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고성규(대한청년기마대장) 기사입력  2013/10/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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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이미지. 우리 민족의 위대한 기마문화의 우수성이 담긴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고구려의 기마 사냥에 쓰였던 활의 크기가 80cm정도이고, 말의 크기는 몽고마, 만주마, 러시아 연해주마 등 대략 130~150cm정도미만의 작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 위력은 세계 최고 전마(戰馬)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다. 이미 13세기 징기스칸이 작은 말을 타고 세계 최고의 정복원정에서 전마(戰馬)로서의 그 위력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족(漢族)은 우리 민족을 활을 잘 쏘는 동이족(東夷族: 동쪽의 오랑캐) 라고 불렀다.
 
고구려는 4~6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마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 기마문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세계 최고의 마필 조교술(말 훈련)과 사냥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증거로 고구려무용총 수렵도를 보면 그 시대의 기마술이 정확히 설명되고 있다. 그중 말을 타고 호랑이를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말이 호랑이에게 접근 한다는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어떻게?
 
말 이란 동물은 자기 그림자를 보고도 놀라며, 평소 생활권 밖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습성도 있다. 육식 동물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신체의 여러 부분이 진화한 동물이 말(馬)인데 그 말을 조교하여 말이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육식동물 호랑이에게 접근 시킬 수 있었던 기마마술은 오직 고구려만 가능 했다는 증거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해석하기까지는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무용총 수렵도를 보면 사냥개를 이용하여 호랑이를 유인한 부분과 호랑이가 두려워 할 수 있는,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가공된 소리의 효과로 명적을 사용한 부분 등은 고대 사학자나, 말 전문 트레이너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추상적인 그림은 중국 쪽에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호랑이 사냥 방법까지 정확하게 그려진 그림은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가 유일하다. 그 사실을 알기 위한 시간적 투자와 목숨을 걸 수 있는 용기와 살림을 거덜내거나 궁핍한 가정경제로 인하여 사람대접을 포기 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왜냐하면 말 수십 마리를 직접 관리하려면 그 경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 자료이미지. 마구의 명칭.(일본 규슈 조선통신사자료관 자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전통 말 문화에 관심이 아직 없는지라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 사실을 실험하려면 직접 그 지역(동북아시아)의 말을 키우며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말의 근성부터 알 수가 없고, 공격성과 거친 환경의 적응력, 그리고 공격적인 성깔을 어떻게 알겠는가! 한반도에 서식하던 말과는 차이가 있다.
 
제주조랑말은 고려시대에 원나라(몽골)로부터 제주에서 말 목장을 했던 당시 몽골에서 우수했던 戰馬(전마) 몽골말(조로머른, 측대보말)과 당시의 한반도에 있던 과하마와 교배가 이루어져 조랑말의 원류를 이루었다.
 
그 당시의 한반도 말은 산악형인 과하마라고 할 수 있다.
 
목이 두껍고 하체는 짧아 체격이 작고 단단한 말이었다. 내구성이 뛰어나 오르막과 좁은 산의 비탈길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또한 고집이 세고 복종훈련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산 짐승이나 날 짐승을 두려워하지 않는 훈련을 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필요한데 그 첫 번째로 소리반응을 낮추기 위해 방울을 사용했고, 두 번째는 시야를 흩트려 놓기 위하여 오색천을 눈 주위에 감았으며, 세 번째로 촉감을 둔화시키기 위하여 말 엉덩이 주변에 행엽(杏葉, 말띠드리개)을 달아서 말이 움직이면 계속 부딪치게 하였다.
 
이런 도구들은 일본에 까지 전해져 사용됐다. 일본의 자료에도 나와 있다.(자료참고) 그동안 수천년 내려오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그 옛날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부상을 입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말한테 처음 시도하는 훈련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부상이 뒤따를 수 있다.
 
말의 입장에서 보면 한 번도 보지 못한 도구들 때문에 두려워서 도망가려고 펄펄 뛸 것이고, 그 말을 진정시키려면 마부는 신체적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그래서 말을 다룬다는 것은 학문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철저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노하우 없이 말한테 접근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 임진각에서 개최된 기마예술제에서 필자인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의 마상요도 시연장면.     © 한국무예신문

필자 역시 뼈아픈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골절 사고만 4번이다. 그것은 현 시점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역사의 단절로 자료가 현재 없다보니 아무도 해보지 않은 훈련을 직접 실험하다 생긴 일이다. 지금도 일부사람들은 필자더러 미쳤다고도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이 말이 작고 보잘 것 없다 하여 우리 스스로가 업신여긴다는 사실이다. 왜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일제 강점기 이후에 더욱 두드러지는 일이 아니가 한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작고 단단한 만주마를 사용하면서 의전과 점령국의 심리적 공포를 주기위해 호주에서 큰말을 들여와 순사들이 칼까지 차고 말을 타고 다녔다. 이것은 조선 사람들에게 열등의식 또는 무력감을 심어주기 위한 일종의 심리전으로도 한 몫을 했다고도 본다.
 
그 당시 일본 순사들이 타고 있던 대형 말과 우리의 조랑말을 옆에 놓고 본다면 초라하게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 작고 볼 품 없는 말이 어떤 기능의 우수함과 역사적 배경의 근거를 모르는 채 그저 작고 초라해 보인다는 우리들 속에 감추고 있는 지상외모주의가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 스스로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아주 작고 초라하고 못생긴 말이 자기보다 두세 배나 되는 대형 말을 꼼짝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지금도 사극이나 영화에 보면 자막하나 없이 서양말이 우리의 것으로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 지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이 독도를, 중국이 동북공정을 등 우리 민족을 우롱한다며 역사를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식의 분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왜 우린 스스로의 잘못을 보지 못할까. 남 탓만 한다. 그러니 일본과 중국이 우리를 더욱 함부로 하려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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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0/22 [16:1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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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용국 2013/10/24 [08:28] 수정 | 삭제
  • 마지막에 여운이 남는 글 인상깊게 보고 갑니다.
  • 김인완 2013/10/22 [22:16] 수정 | 삭제
  •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곤 하죠,

    일편으로 이말이 적합할 때 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리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우리것이라고 확실히 증명 시키며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지니치게 한국적인 것을 내세우면 세계적인것과는 정반대로 보여질 수 도 있는 역효과 일으킬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광고를 요즘 왕왕 보게 되는데 이 테레비 광고를 보면서 아 우리 대한민국이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자부심이 드는가 하면 또한편으로는 일선에 일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외국인들의 습성과 취향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일례로 그 광고에 한국의 음식들이 소개 하면서 K-Foods 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는데 김치는 그렇다고 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 하는사람들의 비율이 극과극으로 다르게 나타 납니다,

    왜냐 하면 김치의 특성상 어느 누구에게도 중간쯤으로 쳐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가 좋아하는 "김"은 서양인들이 제일 싫어 하는 반찬 재료 중에 하나 입니다,

    김밥이나 왜놈들 스시로 쓰였을때는 생각없이 잘 먹지만 따로 구분하여 반찬으로 먹을 때는 "그걸 왜 먹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할 만큼 싫어 합니다. 중략.

    우리가 우리의 역사적인 것을 세계인들에게 알릴때는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두고 연구한 후 접근해야 할 것이고 또한 외진 곳에서 열심히 연구하시며 우리 것의 보존을 위해 일 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돕고 협조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 되야 한다고 믿습니다.
  • 문상필 2013/10/22 [22:15] 수정 | 삭제
  • 고대국가의 지배층에게 무덤은 주검을 묻는 것 이상의 의미 즉 일종의 지하왕국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죽음의 세계란 양(陽)의 세계에서 음(陰)의 세계로 이동하는 일종의 삶의 방식이 수평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살아생전 함께 했던 사람들이나 집안의 분위기나 환경, 사건 등을 그림이나 이미지로 만들어서 함께 묻었던 것이다.

    고분벽화에 묘사된 내용은 무덤 주인공의 평상시의 생활상과 그의 삶에서 특별했던 사건들이었다.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에서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이런 표현이 행해진 것이다.

    이처럼 삼국시대의 미술은 감상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죽음에 봉사하는 미술 즉 죽은 자를 위한 예술이었다.
    한반도 고대인들이 지닌 영혼불멸사상[물신숭배·영혼신앙·만유정령설. animism]이 무속신앙과 결합하면서 고분벽화나 토우 등의 독특한 예술적 자취를 남긴 것이다. -출처 한국예술사. 권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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