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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3국 중 진짜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은?
한·중·일 예(禮) 특징과 태권도 예의
 
김용철 박사 기사입력  2014/07/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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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철 박사     © 한국무예신문
진정한 태권도 예의란 일상생활 속에서의 실천이다.

우리는 “동방의 예의 나라”라며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민족이다. 물론 이 말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 본다.
 
사실 “예의의 나라”라는 말은 극동 삼국인 한국, 중국, 일본 모두가 자랑스럽게 자국민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삼국 모두에게 예의는 대단히 중요한 문화의 일부분이라 서로가 진정한 “예의의 나라”라며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리의 바람이 다르고, 천리의 풍속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와는 천리도 훨씬 더 떨어진 중국과 일본의 풍속이 서로 같을 리가 없다. 허니 삼국이 예를 행하는 절차와 형식이 크게 다르며 예를 통한 백성의 교화 방법 또한 상이하므로 각자 특색 있는 예의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런 연유로 해서 한국 예의 특징은 생활 속의 실천을 강조한 도덕수양적인 예의로 발전해 왔고, 중국의 예는 예의 경전을 고증하여 그 뜻과 의의를 밝히는 이론적인 예의를 중시해 왔으며, 일본의 예는 의식을 중시한 형식적인 예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예의 특징은 겉과 속이 온전히 합치된 실천에 있다
 
예를 가리켜 “천리의 절문 이요, 인사(人事)의 의칙”이라 한 것은 禮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도리와 이치를 인간 세상에서 그대로 실천 할 수 있도록 행위의 법칙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즉, 우주의 도리와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유학의 이론을 현실에서 실천하도록 의칙(儀則)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예이며, 이러한 의칙을 예제(禮制)와 예론(禮論)으로 체계 있게 정립해 놓은 학문이 예학인 것이다. 이처럼 유학의 학문을 통해서 도리를 깨우쳤다면 반드시 그 깨달음을 현실세상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기에 그 행위의 세세한 부분을 유학적인 사고(思考)를 근거로 해서 예학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예의 실천에는 반드시 유학적인 정신과 사상에 합치해야 하는 만큼 예를 실천하는 내면에는 유학의 합당한 도리인 “효”, “인애”, “의리”, “성(誠)”, “경(敬)”, “제(悌)”, “자(慈), “신”, “직” 등의 정신과 사상이 포함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 예서(禮書)의 중심에는 조선조 김굉필 선생이 강조했던, ⟪소학⟫과 송 때의 주희가 집필한⟪주자가례⟫그리고 주자가례가 미완성된 예서라 해서 이를 완성했던 김장생의 ⟪가례집람(家禮輯覽)⟫과 일상 의례(儀禮)의 문제점을 다룬 ⟪의례문해(疑禮問解)⟫등이 모두 일상생활의 실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자들이다. 이러한 책자가 조선에서 글을 읽는 양반이나 평민들에게 두루 읽혔다는 것은 조선은 일상생활에서 예의 실천을 대단히 중시했던 왕조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중국 예의 특징
 
중국은 명나라 말기에 사회는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특히나 글을 좀 안다는 이들은 책을 멀리하고 왕양명이 말한 것처럼 “배우지 않았어도 알 수 있고(良知), 배우지 않았어도 행동할 수 있다.(良能)”는 말을 신봉하여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대신 불가 수행법의 일종인 돈오(頓悟)식의 깨달음을 얻으려 이리저리 유랑하며 귀동냥하는 이들이 많았다.
 
해서 명말청초 때의 적잖은 지식인들은 명나라의 패망 원인으로 허망을 쫓는 학풍의 형태를  비난하며 실질적인 실천유학으로써의 예학을 통해 학문의 진리를 얻고자 연구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외에도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문란한 풍속을 바로 잡음과 동시에 한족 문화의 징수인 예학을 정리해 한족과 만주족과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청나라 고종 때는 “삼례관”이라는 전문적으로 예학의 경전을 연구하는 기구가 세워져 19년간에 걸쳐 예학의 경전인 ⟪삼례(三禮): 주례, 의례, 예기⟫를 철저히 고증하고 교정하여 ⟪삼례의소(三禮義疏)⟫를 완성하게 된다.
 
이 三禮(삼례)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경(禮經)에 담긴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해 예제(禮制)가 만들어진 그 의의와 의미를 명확하게 알려 한 것이었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예 실천을 도모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이때는 이미 서양 사상이 물밀 듯이 유입되고 있었기에 우리와 같이 전 백성을 상대로 한 예의 실천은 요원한 것이었다.
 
일본 예의 특징
 
사실 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일본을 가리켜 동양 삼국 중 가장 예의 실천이 생활화 된 나라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의 예는 예가 아니라 잘 정형화된 의식일 뿐이다.
 
예의 근본은 인애하는 마음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화합과 공존에 있다. 진정으로 예를 알고 실천하려 한다면 상대방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통해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수세기를 지나 오늘날까지 일본이 벌이는 작태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분명 의식만이 발달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웃과의 평화로운 공존과 화합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양아치나 깡패들처럼 말이다.

태권도 예의
 
태권도 예의의 근본은 우리 예의 특징인 겉과 속이 합치된 온전한 예를 일상생활 중에 실천하는데 두고 있다. 
 
태권도는 살상과 폭력성을 띈 운동이기에 도덕적인 수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태권도의 수련을 통해 얻게 되는 신체의 자신감은 자칫 행동이 우직하고 포악스러운 형태로 들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해서 태권도를 포함한 기타 격기 운동을 수련한 사람 중에는 유난히 행동이 오만방자하고 포악스러운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만하고 야만스러워지니 늘 남을 무시하게 되고 모든 대인 관계와 일처리에 독단과 아집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해서 태권도를 수련하는 태권도 인들은 늘 자신의 일탈적인 행동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수련 중에 행하는 사소한 예의라도 섣불리 지나치지 말고 성실히 이행하여 도덕적인 수양의 예가 늘 몸에 배어 겉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일상생활 중에 자연스레 태권도 예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으며, 우리의 전통 예의 문화를 널리 보급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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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7/03 [12:20]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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