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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騎士道)란 무엇인가?
유럽의 정신, 신사도(紳士道)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2/01/30 [11:32]
▲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11세기경 유럽 귀족들의 부(富)는 토지에 집약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유산배분으로 인해 토지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가문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따라서 귀족 집안에서는 이들 가운데 한 명만 결혼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머지 아들들은 합법적으로는 부인도 없고 재산과 마땅한 거처조차 없이 살아야 했다. 행운이 따른다면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귀족가문의 과부와 혼인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결혼도 하지 못한 수많은 귀족남자들은 평생 동안 무리지어 모험을 찾아다녀야 했는데, ‘모험’이란 말 자체도 이 무렵에 생겨났다고 한다. 당시의 모험이란 군사적, 파괴적 행위를 의미하였으며, 도처에서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였다.
 
물론 이런 분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기사계급과 군인패거리들이었다. 마침내 교회가 기사계급의 폭력행위를 막기 위해 나서게 된다. 병정들을 성골함 주위에 모아 놓고, 주교와 군주들은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 않다면 하느님 앞에서 너희들의 영혼을 걸고 서약하라. 너희들은 서로 죽일 수는 있으나, 교회 주위에서는 싸움을 할 수 없다. 교회는 누구라도 원한다면 피신할 수 있는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수난을 기리는 뜻에서 금요일과 일요일에는 싸울 수 없다. 그리고 여인들, 특히 귀족계급의 여인들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상인, 성직자, 수도승들을 해쳐서도 안 된다.” 이로써 지정된 장소에서 무장한 군인들끼리만 폭력행사가 가능하다고 못 박은 일종의 전쟁규약이 마련된 셈이다.
 
기사(騎士)의 탄생
 
기사(騎士)란 중세 유럽의 상층사회에서 활동하던 기마무사(騎馬武士)를 가리킨다. 따라서 기사정신은 서구 상류사회의 문화정신이다. 귀족가문 출신의 자제가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7,8세가 될 무렵, 출신에 따라 등급이 높은 영주의 집에 들어가 영주나 그 부인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그러다가 12세쯤 되면 견습기사가 되어 주인을 따라 전장에 나가 방패잡이나 종자 역할을 하면서 전문적인 무예와 기사 훈련을 받는다. 21세가 되면 그 능력을 인정받아 기사작위를 받는다. 작위수여식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대축제일 또는 왕실에서 행해질 때에는 굉장한 의식을 치르지만 전쟁터에서는 간단히 행하였다. 이때 수여식을 받는 기사는 스스로 원하는 의식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칼을 평평하게 뉘어 어깨에 가볍게 대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같은 기사제도에서 생겨난 기사문화는 확실히 폐쇄적인 상층사회의 귀족문화였다. 그것의 문화정신 역시 귀족문화정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사제도 가운데 기사와 평민은 왕래할 수 없다는 규정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은 신분을 중히 여기고, 자기 수양에 힘쓰며, 맹세를 지키고, 법규를 존중하는 사회등급의 문화정신이었다. 기사신분을 갖게 되는 것은 무사가 상류 사회에 진입하게 되는 표시였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세습되었다.
 
십자군전쟁과 성묘기사단
 
11-13세기에 가장 왕성했는데, 기사제도가 발전하면서 그리스도교도로서 이상적인 기사상(騎士像)이 널리 퍼졌다. 교회를 존중하고, 영주와 군대의 상관에게 충성하며, 자기 명예를 지키는 이가 기사의 이상형이었다. 이런 이상에 가까운 기사들이 나타난 것은 11세기말부터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의 기사들이 교회를 보호한다는 공동 대의 아래 모였던 십자군전쟁 때였다. 특히 예수의 무덤에서 작위수여식을 치른 기사를 ‘성묘기사’라 불렀다. 십자군전쟁 때 최초의 기사단들, 즉 예루살렘의 구호기사단과 성전(聖殿)기사단이 생겼다. 이후 여러 가지 목적과 형태를 띤 기사단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교회를 존경하고 영주에 충성하며, 용맹함과 명예심 그리고 예의바름을 기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십자군 운동이 시들해지고 백년전쟁을 치르면서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傭兵)들이 늘어나면서 기사들은 차츰 줄어들었다. 14-15세기에 걸쳐 대포의 발달과 중앙집권제가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기사제도가 완전히 무너졌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군사적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기사작위는 국왕이 마음내킬 때 수여하는 명예지위로 전락하였다. 군주의 측근인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이같은 명예 작위를 갖는 것이 유행하였다. 중세말부터는 종교와 관계없는 세속적인 기사작위들도 많이 생겨나 귀족이나 정부 관리, 각종 직업과 예술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게 명예로 수여하게 되었다.
 
서양 기사의 인격정신, 즉 기사정신은 의무를 가장 우위에 두는 가치관념이었다. 기사의 모든 것은 제도를 통해 보장되고 규범화하였다. 그것은 법률과 유사한 형식으로 기사와 각급 봉건통치자와의 관계를 사회화시켰으며, 종교적 신성함을 부여하였다. 기사와 영주의 관계는 ‘채읍선서(采邑宣誓)’나 ‘재산 목록’ 등의 서류를 통해 확정되고, 또 합법화되었다. 이들 문서는 기사와 영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 반드시 다시 교환하였다. 그리고 기사에게는 영주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 있었다. 기사들의 문제는 대개 기사법정을 설치해 즉결 심판하였다.
 
기사는 또 교회에서 보호하는 선교사, 참배자, 과부와 고아를 보호한다는 선서를 하여야 했다. 이리하여 기사는 심리적으로 주종관계를 초월하는 사회적 의무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인격평등의 관념을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가 상징하는 종교정신의 행동준칙이었다. 비록 자신의 주인을 위해 봉사하였지만, 정의를 지키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기사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같은 추상적이며 초월적인 정의, 진리에 대한 충성과 의무감은 후대 유럽정신의 이성주의와 인도주의의 기원이 되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기사 정신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동양의 충(忠)과 확연히 구별된다.
 
기사정신의 유산, 젠틀맨십
 
서유럽의 문명 중 보편적인 문화성격에 가장 깊은 영향을 준 것은 분명 중세 기사정신의 인격 특징들이다. 기사도는 개인의 명예감이 기초가 된 인격 정신인 동시에 기사 준칙을 자각적으로 준수함으로써 자신의 행동방식을 규범화하였다. 그것은 기사에게 직무에 충실하고, 용감하게 전쟁에 참가하며, 허락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약자를 도와줄 것을 요구하였다. 만약 그들의 명예가 모욕이나 의심을 받게 되면 결투의 방식으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였으며, 궁중예절을 앞다투어 배워 고상한 기풍을 소중히 하였다. 또한 귀부인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는 ‘기사도적인 사랑’을 하기도 했다. 기사정신은 상층의 귀족문화정신으로 개인 신분의 우월감이 기초가 되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덕과 인격정신이다. 또한 여기에는 서양 민족의 고대 상무정신의 적극성이 응집되어 있다.
 
기사도 정신, 그리고 신사도. 현대 유럽인들은 이를 통해 개인의 신분과 명예를 중시하여 기품과 예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거지에 대해 신경을 쓰며, 정신적인 이상을 숭상하고, 여자를 존중하는 낭만적인 기질을 동경하도록 했다. 또한 공개경쟁, 공평경쟁이라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형성케 했으며, 약자 돕기를 좋아하고, 이상과 명예를 위해 희생하는 호쾌한 무인(武人)의 기질과 품격을 물려받은 것이다. 오늘날 스포츠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정신인 스포츠맨십 역시 이 기사도 정신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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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1/30 [11:32]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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