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 용어를 계속 사용해야하는가, 아니면 개명해야하는가?
합기도가 일본무도(日本武道)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의 확립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합기도’라는 무예(武藝)의 명칭이 일본의 ‘아이기도’와 한자어 '合氣道'가 동일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글로 ‘합기도’와 ‘아이기도’라고 엄연히 다른 글자와 발음을 가지고 있고 영어로도 ‘Hapkido’와 ‘Aikido’로 달리 표현되는 합기도. 하지만 글자마다 뜻을 가진 표의문자(表意文字) 한자어의 같은 이름의 사용은, 유감스럽게도 한자어 문화권에 있는 일본 또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동일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연유로, ‘합기도’ 한자어 무명(武名)이 일본으로부터 그 이름을 빌려와서 사용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은, 합기도가 아이기도의 잔류(殘留)라는 결정적인 근거(根據)라면서, 아이기도를 수련하는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과 심지어 다른 무예인들과 무예학자들까지도 합기도는 아이기도와 동일한 이름이기에 한국 무예(韓國武藝)로서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합기도’라는 무명을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에 맞게 개명(改名)해야 한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반면, 이미 국내외적으로 엄연히 독자적인 한국 무예로서 발전해 오고 있는 ‘합기도’는 일본의 아이기도와는 다른 발음을 가지고 있고, 국제어인 영어의 철자(綴字)도 ‘Aikido’와 ‘Hapkido’로 각각 달리 사용되는 데다, 특히 전 세계의 합기도인들과 일본의 아이기도인들도 합기도(Hapkido)는 아이기도(Aikido)와 엄연히 다른 무예임을 천명(闡明)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기도’ 무명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개명반대론자들의 입장이다.
이러한 양자의 대립(對立)은 합기도 명칭에 대한 과다한 집착(執着)과 강박관념 속에서 끊임없는 논쟁의 연장선 속에 있다.
개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합기도의 무명에 관해서 개명론자와 개명불필론자의 주장들을 나누어서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본 칼럼에서는 개명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주장하면서 왜 합기도가 개명할 필요가 없는가에 대해서 진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합기도 이름에 대한 논란은 계속 개명의 이유를 일본무도로부터 독립하여 마치 무예의 자주성(自主性)을 가지는 것과 같은 주장들이 난무(亂舞)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아이기도인들은 합기도란 무명을 한국합기도인들이 도둑질해 갔다고 하면서 마치 합기도가 아이기도의 아류(亞流)인 것처럼 포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이 인터넷 등에 돌아다니고 있음을 목격한 바로써 그러한 주장들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대응하는 것이 합기도를 한 필자로서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합기도를 개명하지 않으면 일본무도의 색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과 심지어 합기도를 아이기도의 아류 무예로 여기는 개명론자들의 아래와 같은 질문성 주장들과 합기도인들의 주체적인 주장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져보는 방식으로 개명의 불필요성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아 래》 『
가. 아이기도인들과 타무예인들의 질문
질문 1) 합기(合氣) 어원이 근본적으로 일본의 용어인데 한국에서 아이기도와 한자어 동명인 합기도를 사용하면서 한국 무예임을 고집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질문 2) ‘합기도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차용해 온 것이 아니라 도용한 것 아닙니까?’라는 아이기도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주장 3) ‘합기도’ 이름부터 고쳐놓고 독자적인 한국 무예인 합기도의 술기체계와 수련 철학사상의 정립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라는 모순적인 논리에 대하여 나. 합기도인들의 주장
주장 1) 대한아이기도회가 갑자기 ‘아이기도’를 ‘합기도’로 개명을 주장하는 배경에 대한 의혹과 의문점들
주장 3) 이미 세계화되고 국제화된 '합기도' 무명을 개명하였을 때 감당해야 하는 엄청난 경제적, 사회문화적 손실과 비용들
주장 2) 한국합기도와 일본합기도가 아닌 합기도(Hapkido)와 아이기도(Aikido)라고 명명(命名)하는 것이 합기도의 근대무예사 정립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들』
[
가. 아이기도인들의 질문]
[질문] 1) ‘합기(合氣)’ 어원이 근본적으로 일본의 용어인데 한국에서 아이기도와 한자어 동명인 합기도를 사용하면서 한국 무예임을 고집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합기(合氣)’ 어원은 일본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무예사 자료에 의하면 합기(合氣)라는 용어는 일본의 에도시대에서 메이지 다이쇼시대의 검술서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 후에 대동류유술에 합기(合氣)라는 명칭을 첨가(添加)한 것은 1922년경에 다케다 소우가쿠가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수여한 목록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근대에 '합기(合氣)'라는 용어의 사용은 다케다 소우가쿠가 1922년 아야베의 오모토교단에 있던 모리헤이를 방문하였던 일화(逸話)에서 나타났다고 하였다.
오모코교단의 교주 데구치오니시부로가 '합기'라는 용어를 붙여 이름에 붙이라 권하면서 다케다는 그때부터 대동류합기유술이라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이후 자신이 창시(創始)한 무도의 이름을 ‘합기무술’ 또는 ‘합기무도’로 명명하였다. 1942년 그의 무도가 일본정부 산하인 대일본무덕회에 소속되면서 ‘합기도(合氣道)’란 무명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어원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한국에서는 합기의 어원을 삼일신고(三一神誥)라는 고서(古書)에서 찾고 있다. 삼일신고의 진리훈편(眞理訓篇)의 기화(氣化),지명(知命-기의 힘을 모아 수련을 통한 자신의 존재를 자각), 합혜(合慧-지명을 통한 지혜의 깨달음을 얻음)라는 구절에서 합기의 용어의 유래를 대부분의 합기도 교본이나 연구서들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합기의 어원을 한국전통적인 맥락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이는 억지주장식의 무리한 의도이다.
[대답] (1) 왜 ‘합기’라는 이름에 그렇게 과도하게 집착하는가? 이름을 가지고 국가적인 정체성을 따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가령 호주에서나 캐나다에서는 영국에서 사용하는 동일한 지명(地名)들을 사용하고 있다. 옛날에는 멕시코 영토(領土)였던 미국서부지역에서도 많은 멕시코언어들로 사용되는 지명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명 때문에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전혀 없다. 일본에서조차도 일부 지역이름이 한국의 고대어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그 지방이 한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물며 무예 관련 이름들을 가지고 외래어냐, 아니냐 하는 여부를 가지고 무예의 국가 정체성을 유별스럽게 집착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한국과 일본의 민감한 역사적인 국제 관계의 특수성에서 연유(緣由)된다고 할 수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무예사 연구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무예관련 고대어 명칭의 기원적인 의미를 한국의 고대용어에서 찾아내고 탐구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이를테면, 가라데에서 ‘가라’하는 의미는 한국 고대국가의 가야(伽倻)에서 연유되었다라고 하고, ‘대동류유술(大東流柔術)’에서 ‘대동(大東)’은 한국을 의미한다는 주장 등이 그 예다.
이름이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일본과 한국은 한자어를 사용하는 관계 때문에 동일한 한자어라도 발음은 다르다. 가령 여자이름이 ‘화자(花子)’는 일본에서는 ‘하나코’이고, ‘건강(健康)’이란 이름은 ‘겐꼬우’라고 발음한다. ‘일본인(日本人) ‘하나코’와 ‘겐꼬우’가 한국인(韓國人)의 ‘화자’와 ‘건강’이 한자(漢字)가 같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다고 완전한 한국 사람이 되는가?’와 같은 질문과 같은 이치이다.
‘합기’ 어원이 일본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주요한가? 한자어가 동일한 한국의 ‘화자’와 ‘건강’이 일본의 ‘하나코’와 ‘겐꼬우’와는 완전히 다른 성인으로 성장했듯이, ‘합기도’와 ‘아이기도’는 한국과 일본에서 고유의 신체문화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진화, 발전되어 온 무예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원래 고대의 동양에서는 무예(武藝) 국적을 따지지 않는 보편적인 문화적 도구로서의 인식이 강했다. 가령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도 중국의 무술과 일본의 검법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훌륭한 수송기술이 있으면 어느 나라에서 누가 개발한 것을 따질 필요 없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수송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에서 비롯된 무예이건 한국인이 행하면서 더 발전시키고 변용시킨다면 그 또한 한국의 무예가 될 수 있다는 무예의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최근의 결정적인 사례가 브라질 주짓수이다. 미국의 레슬링과 일본의 유술을 혼합(混合)해서 탄생된 현대의 새로운 무술인 브라질 주짓수를 가지고 왜 주짓수라는 일본이름을 그대로 쓰느냐며 일본무도라고 국가적 정체성의 논란 없이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브라질의 무예로 거듭났듯이, ‘외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도 그 무술이 한국인들이 행하면서 더 발전시키고 변용시킨다면 그 무술의 이름 또한 한국적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주장도 설득력(說得力)이 있다.
사실, 일부이기는 하나 그동안 일본의 아이기도와 차별화하려는 합기도의 한국적인 개명을 위한 시도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예를 들어 합기도인들이 단체를 만들면서 ‘화랑도’, ‘국술’, ‘궁중무술’, ‘회전무술’, ‘특공무술’, ‘한기도’, ‘한무도’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합기도의 무명(武名)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무예대학인 용인대학교가 ‘용무도’라는 새로운 무명으로 합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근대적 형태의 무예를 정립시키려는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개명을 위한 여러 노력들은 합기도 대신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통일적인 용어의 정립과 제도화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합기도라는 이름이 비록 태권도(跆拳道)가 한국전통어인 태껸에서 비롯된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 만든 용어이기에 언어문화 전통적 맥락에서는 취약점이 있다. 그러나 이름이 일본 무도의 색채를 띤다는 끊임없는 논란 속에서도 합기도란 이름이 계속 유지, 사용되어진 이유는, 한국의 고유 무예 특성으로서 한국인의 정서(情緖)에 맞는 대중적인 신체문화로 발전되고 진화해 온 명백한 사실을 우리는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한 무술의 정체성이란 그 무술의 기원, 창시자, 이름, 기술체계, 수련체계 등의 관련된 가치들을 정립하여 고유성과 독자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합기도 무예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합기도라는 이름은 단지 합기도 무예의 형성이나 역사에 한 부분에 불과하다.
‘합기’ 용어의 사용이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료(史料)를 가지고서, 그리고 아이기도의 한자어가 합기도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합기도가 일본무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합기도’란 이름이 만들어질 때 연루된 개인들이 합기도라는 무술 총체의 역사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합기도라는 이름만을 바꾼다고 해서 새로운 한국적인 무명이, 합기도의 속성들, 즉 기술체계, 수련방식, 수련이념 등이 한국적으로 바뀌어 지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필자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두가 ‘NO’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기도를 한국무예(韓國武藝)로 발전시키려면 이름부터 바꾸라’는 주장들이 아이기도인들 뿐만 아니라 타 무예인들로부터 계속되고 있는 것은 심히 그 저의(底意)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합기의 어원을 삼일신고(三一神誥)라는 한국의 고서(古書)에서 찾아서 합기도의 수련사상에 접목하기 위한 탐구적(探究的)인 노력이 왜 무리한 시도인가? 하고 되묻고 싶다. 오히려 대동류유술에서 진화되고 발전하면서 한국화 된 합기도의 수련이념의 정립을 위해 합기 용어에 한국적인 어원의 의미를 찾아내서 담으려는 시도를 권장하는 것이 옳다 할 것이다.
무예(武藝)를 국가간의 경쟁력을 위한 요소로 파악한다면, 진정한 실력을 키우는 것은 단순히 무예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무예가 지닌 역사적 전통과 국수적인 민족주의에 잡히기보다는 기술의 실효성 문제나 사상적 의미, 수련자에 대한 가치증대에 고민하며 정립하고 창출해야 한다. 또한 기술과 사상 그리고 학문적인 역량(力量)을 강화(强化)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태권도(跆拳道)가 한국의 대표적인 무예로 성장한 원동력(原動力)이, 태권도(그렇게 한국적인 이름은 아니다)라는 이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경기력 향상, 그리고 뛰어난 태권도 외교력, 훌륭한 지도자 양성, 그리고 높아진 태권도의 학문적 위상 등에 있음을 명심(銘心)해야 한다.
다음은 ‘합기도’라는 명칭이 일본에서 차용(借用)해 온 것이 아니라 도용(盜用, 훔쳐서 사용)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아이기도인들의 주장이 그릇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