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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내우외환(內憂外患)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08/2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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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AD 779년, 당의 덕종(德宗) 이괄(李适)이 즉위했을 때는 심각한 내우외환의 와중이었다. 덕종은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다.
 
우선 재상 양염(楊炎)의 건의에 따라 양세법(兩稅法)을 시행하여 재정수지를 크게 개선했다. 이어서 번진에 대한 강경조치가 시행됐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발전돼 덕종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서툰 용인술과 형세에 대한 오판 탓이었다. 개인적 은원관계를 중시하는 양염이 대정을 독단하자 당쟁이 격화됐다. 양염의 최대 실책은 출중한 경제전문가 유안(劉晏)을 살해한 것이다. 심각한 재정난도 유안이 나서면 해결됐고, 물러나면 다시 어려워졌다.
 
양염은 이 뛰어난 경세가를 시기하여 반란죄를 씌워 죽이고 말았다. 조야에 틈이 생기고, 안팎으로 불만이 쌓였다. 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가 번진의 수장으로 유안의 무죄를 주장했다. 다급해진 양염은 번진을 달래기 위해 유안의 일을 덕종의 책임으로 미루었다. 덕종과 양염의 사이도 벌어졌다.
 
덕종은 노기(盧杞)를 재상으로 삼고, 양염을 좌천시켰다가 살해했다. 노기는 양염보다 더 저급한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덕종에게 실망했다. 번진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지만 덕종의 생각은 자숙을 바라는 정도였다. 임시방편적인 관용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군사력을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번진은 대개 4가지 유형이었다. 첫째, 하북과 산동의 번진은 ‘안사의 난’에 가담했다가 항복한 용장들로 사실상 독립된 정치세력이었다. 이들은 독자적 제도를 마련했다.
 
둘째, 중원의 번진은 안사의 난을 평정한 후 중앙에서 임명한 경우였다. 이들은 반란자를 제압하고 각지의 재화와 세금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당 왕조는 이들의 세력에 의존했다.
 
셋째, 관내와 서북의 번진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다가 내지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개입했다. 조정은 강한 전투력을 지닌 이들을 쉽게 다루지 못했다.
 
넷째는 동남의 번진으로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담당했으며 조정에 대해서는 순종적이었다. 번진은 세력의 크기를 막론하고 모두 조정의 힘과 이웃 번진의 힘을 가늠하면서 상황을 관망하는 잠재적 외환요인이었다.
 
즉위 초, 덕종은 최우보(崔佑甫)를 재상으로 등용해 실질을 숭상하고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사람들은 태종시대 ‘정관(貞觀)의 치’와 버금간다고 칭송했다. 반란의 가담자들까지도 후회할 정도였지만 유안과 양염을 죽인 후 내우외환이 재발됐다.
 
성덕(成德)절도사 이보신(李寶臣)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이유악(李惟岳)이 승계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덕종은 거절했다. 그러자 세습특권을 유지하려던 절도사들이 연합해 항거하기 시작했다.
 
반란은 평정됐지만 이어서 번진끼리의 내전이 격화됐다. 덕종은 관내의 번진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AD 783년 10월, 경원(涇原)절도사 요령언(姚令言)이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장안에 도착했으나 조정은 아무런 대접도 하지 않았다. 분노한 군사들은 장안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덕종이 금군에게 방어령을 내렸지만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낭패를 한 그는 지금의 섬서성 건현(乾縣)인 봉천(奉天)으로 도망쳤다. 경원군은 주비(朱沘)를 군주로 삼았다. 주비는 장안에서 칭제하고 국호를 태(泰)로 정했다가 나중에 한(漢)으로 고쳤다.
 
1년 후 덕종은 이성(李晟)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장안을 수복하고 주비를 죽였다. 그러나 다른 번진과는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 왕조의 운명은 더욱 험악해졌다. 즉위 초에 품었던 덕종의 개혁의지는 일순간 실현되는 듯 했지만 오히려 병화를 재촉하는 결과를 낳으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내우외환을 해결하기는커녕 격화시킨 원인은 결국 부적절한 인사문제와 상황에 대한 오판 때문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등장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10년도 내우외환으로 끝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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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23 [23:3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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