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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창해유주(滄海遺珠)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1/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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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적인걸은 산서성 태원시인 병주 태원 출신으로 자가 회영(懷英)이다. 어렸을 때 집안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현리가 와서 조사하는데도 적인걸은 눈길도 주지 않고 책을 읽었다.

현리가 꾸짖자 적인걸은 책속에서 성현과 대화하고 있는데 너와 같은 속리에게 시간을 내주겠느냐고 말했다. 화가 난 관리가 적인걸을 무고했다. 마침 하남도출척사로 왔던 공부상서 염립본(閻立本)은 적인걸의 재능과 인품을 보고 공자께서는 허물을 살펴야 어진 것을 안다(觀過知仁)고 했는데 너야말로 진짜 창해유주라고 말했다.
 
묻혀있는 인재를 가리키는 창해유주의 전고이다. 나중에 적인걸을 재상으로 임명한 무측천이 물었다.

“그대가 여남에 있을 때 헐뜯는 사람이 많았다. 누구인지 아는가?”

“폐하께서 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고치겠습니다.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다행입니다. 신을 헐뜯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친구로 생각하겠습니다.”

감복한 무측천은 적인걸이 죽을 때까지 깊이 신임했다. 적인걸이 71세로 죽자 3일 동안 조회를 철폐하고 계속 통곡하며 이제 세상이 텅 빈 것 같다고 슬퍼했다. 적인걸은 중국사에서 유일한 여성황제 무측천이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였다.

병주법조로 있을 때, 먼 곳으로 떠나게 된 동료가 병든 모친 때문에 걱정했다. 적인걸이 병주자사 인인기(藺仁基)에게 대신 가겠다고 자청했다. 감동한 인인기는 북두 이남에서 현명한 사람은 적인걸뿐(斗南一人)이라고 말했다. ‘두남일인’은 천하에 없는 인재라는 뜻이다.

좌위대장군 권선재(權善才), 우감문중낭장 범회의(范懷義)가 실수로 태종의 소릉에서 잣나무를 잘랐다. 화가 난 고종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자 적인걸은 나무 한 그루를 잘랐다고 대신 둘을 죽이느냐고 직간했다.

고종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면했다. 누사덕(婁師德)이 적인걸을 재상으로 추천했다. 그러나 재상이 된 적인걸은 누사덕을 외직으로 쫓아냈다. 무측천이 적인걸에게 물었다.

“누사덕은 사람을 잘 알아보는가?”

“그가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무측천은 적인걸을 추천한 누사덕의 글을 보여주면서 누사덕이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적인걸은 부끄러워서 자기가 누사덕보다 못하다고 인정했다. 무측천이 재상을 추천하라고 명하자 적인걸이 말했다. 

“문장과 풍류를 갖춘 인재는 이교(李嶠)와 소미도(蘇味道)이지만 남다른 기재를 찾으시면 장간지(張柬之)뿐입니다. 나이가 많지만 재상의 재목입니다.” 

무측천은 장간지를 낙주사마로 발탁했다. 나중에 다시 무측천이 적인걸에게 인재를 추천하라고 명하자 적인걸은 또 장간지를 추천했다. 무측천이 이미 승진시켰다고 말하자 적인걸은 재상으로 추천했지 사마로 추천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무측천은 결국 장간지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좌천된 적인걸이 변주를 지나다가 병에 걸려 치유하고 떠나려고 했다. 현령 곽헌가(霍獻可)는 칙령을 내세워 당장 떠나라고 했다. 나중에 어사가 된 곽헌가는 끈질기게 적인걸을 탄핵했다.

재상으로 복직한 적인걸은 오히려 그를 어사중승으로 추천했다. 적인걸을 사랑한 무측천은 직접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적인걸이 은퇴를 요청했지만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적인걸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자 나는 그대가 무릎을 꿇을 때마다 온몸에 아픔을 느낀다고 말렸다.

무측천은 잔혹하고 음란한 여황제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정치적 업적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어떤 명군보다 못지않았다. 무엇이 그녀의 동기를 유발했을까? 문득 적인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남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여심이었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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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23 [09:26]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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