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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서호십경(西湖十景)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9/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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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청의 강희제는 6차례 남방을 순시했다. 그 가운데 5차례 항주에 들러 곳곳에 각종 흔적을 남긴 것이 지금까지 유적으로 남아 있다. 서호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서호십경도 그가 지은 것이다. 명청 양대에 10경의 의미를 새기는 일이 많았고 각각의 특색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도 유행했다.

강희는 항주에서 어제, 어시, 어비정을 남겼다. 이후 서호십경은 황제의 흠정(欽定)이 되어 본격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서호십경은 소제춘만(蘇堤春晩), 유랑문앵(柳浪聞鶯), 화항관어(花港觀魚), 쌍봉삽운(雙峰揷雲), 삼담인월(三潭印月), 곡원풍하(曲院風荷), 평호추월(平湖秋月), 남병만종(南屛晩鐘), 뇌봉석조(雷峰夕照), 단교잔설(斷橋殘雪)이다. 명왕조의 기반이었던 강남은 민족의식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으므로 강희제는 6차례의 순행을 통해 강남의 반청의식을 잠재우려고 했다.

제2차에서 5차까지의 8년 사이 집중적인 강남 순행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강남에 대한 치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할 정치적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했다는 의미이다. 그의 남순은 동화록(東華錄)에 기록돼 있다. 그는 황하와 회하 유역에 대한 개발공사 상황을 관찰하고, 도착하는 곳마다 민정을 자세히 시찰한 후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관대함을 보여주었다. 또 현지의 풍속을 살펴서 적합한 시책을 정함으로써 문화적으로 통치한다는 유화정책을 보여주었다.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강남의 토호들을 약화시키는 것이 반청세력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가노제도를 중지시켰다. 대단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인들을 통치하는 핵심 수단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강희제는 왜 서호의 곳곳에 시나 휘호를 남겼을까?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즐거운 마음을 남기고 싶기도 했지만, 만주족 황제로서 한족문화에 대한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문화적으로 열등한 만주족에게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수치심으로 생각했다. 강희제는 휘호를 남기면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장해선록(庄諧選錄)에 따르면 강희제는 영은사(靈隱寺) 스님으로부터 편액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서 어필을 휘둘렀지만, 靈이라는 글자의 윗부분인 雨를 너무 크게 써서 아랫부분을 쓸 수가 없었다. 주저하던 그는 곁에 있던 고사기(高士奇)에게 어떻게 할까 눈짓으로 물었다. 고

사기는 손바닥에 운림(雲林)이라는 글자를 쓰고 일부러 손바닥을 비벼 먹물을 번지게 만든 다음 강희에게 보여주었다. 강희는 재빨리 雲林이라고 썼다. 아랫부분의 巫를 林으로 잘못 본 것이다. 지금 영은사 천왕전에 걸린 편액이 그것이다. 영은사의 다른 이름인 운림사의 유래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가 글씨를 잘못 썼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유난히 오랫동안 만주족의 지배에 반감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의 무지함을 비웃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임이 분명하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이 이야기를 들으며 빙그레 웃는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자아낼 수 있도록 일부러 배려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강희는 청의 위력을 과시하고 남방의 저항력을 약화시켜 통치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서호를 순행하면서 육로에는 붉은 카펫을 깔았고, 수로를 이용할 때는 온통 금장식을 한 용주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지방관들은 비용을 마련하느라 백성들을 졸라맸고 용주에 감긴 오색 비단을 추렴당한 강남의 백성들은 얼마나 원한이 사무쳤을까? 길을 만드느라고 집을 헐고 집집마다 뒤져 보물을 빼앗아 갔으며 백성들의 등짝은 부역으로 성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통치자의 욕망도 백성들의 고통도 후세 사람들에게는 모두 부질없는 듯 서호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화려한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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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20 [11:25]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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