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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포슬장소(抱膝長嘯)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10/10 [14:50]
▲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제갈량이 유비를 따라나서기 전까지 생활했던 융중(隆中)에는 그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가운데는 ‘양보암(梁父岩)’이라는 바위가 있다. 제갈량이 양보음을 불렀다는 곳이다.

양보음은 당대에 간행된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실려 있다.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이 복숭아 두 개로 세 명의 장사를 죽였다는 고사가 소재이다.
 
제갈량이 반드시 이 바위에 앉아서만 노래를 불렀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려에서나, 일을 할 때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나, 양양에서 융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나 기분이 내킬 때마다 불렀을 것이다. 고향이나 가족이 그립거나,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할 때도 불렀을 것이다.

과거 우리의 젊은이들도 ‘아침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즐겨 불렀다. 사서에는 제갈량에게 ‘무릎을 끌어안고 길게 울부짖는’ 또 다른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서서 등의 친구들과 공부를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항상 무릎을 끌어안고 길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현재 융중에는 ‘포슬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제갈량이 ‘포슬장소’ 하던 곳이다. 그러나 양보암이나 포슬정이나 후세에 만든 것이다.
 
소(嘯)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를 가리키지만, 사람이 내는 소리를 가리킬 때는 입을 오므리고 길고 맑은 소리를 내는 것을 가리킨다. 휘파람과 같은 소리를 가리킨다고 생각을 하면 된다.
 
옛사람들은 기쁠 때 길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서일(栖逸)에는 완적(阮籍)이 소리를 지르면 수백보 떨어진 곳에서도 들렸다고 했다. 소리가 높고 길지 않으면 그렇게 먼 거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장소’는 당시 지식인들의 멋으로 내면의 심각한 걱정거리나 북받치는 감정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길게 소리를 내기 위해 상당한 연습이 필요했을 것이다. 완적의 장소는 사마씨의 발호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으므로, 장소라는 형식을 빌려서 자신의 울분으로 토로했던 것이다.
 
제갈량보다 조금 후배인 좌사(左思)는 영사(咏史)에서 ‘장소가 청풍에 실려 가니, 뜻은 동오에 없는 듯(長嘯激淸風, 志若无東吳)’이라고 하여 울적한 마음을 노래했다. 좌사와 동시대인 육기(陸機)는 맹호행(猛虎行)에서 ‘조용한 말은 깊은 골짜기로 깔리고, 장소는 높은 산으로 치솟는다(靜言幽谷底, 長嘯高山岑)’고 하여, 공업을 이루지 못한 고민을 장소로 토로했다.

송의 악비(岳飛)는 만강홍(滿江紅)에서 ‘하늘을 보며 장소를 하나니, 장부의 마음이 격렬해지는구나(仰天長嘯, 壯懷激烈)!’라고 하여, 자신의 비운을 한탄했다.

제갈량의 장소에는 어떤 감정이 실려 있었을까? 속단할 수 없지만, 위략(魏略)에 실린 내용으로 예측할 수 있다.
 
어느 날 제갈량이 ‘포슬장소’ 한 후 친구 서서(徐庶), 석광원(石廣元), 맹공위(孟公威)에게 ‘그대들이 출사하면 자사나 군수는 되겠지?’라고 말했다. 세 사람이 까닭을 물었지만 제갈량은 빙그레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경우에 무성(無聲)은 유성(有聲)보다 낫고, 웃으며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수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낫다. 제갈량이 양보음을 부르고 포슬장소를 한 이유는 마음속에 있는 큰 뜻을 ‘장소’에 붙여서 나타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후대에 어떤 사람은 포슬정이라는 시를 남겼다.

상견당년양보음(想見當年梁父吟), 소풍낙엽하공림(疏風落葉下空林).
불인선주노삼고(不因先主勞三顧), 영역융중포슬심(寧易隆中抱膝心).


당시에 양보음을 들을까하고 왔더니,
바람 불어 낙엽만 빈숲으로 떨어지네.
선제가 세 번이나 찾지 않았더라면,
어찌 융중에서 무릎 안고 장소를 했던 마음이 바뀌었겠는가?


풍성한 가을인데도 세상은 불안하다. 언덕에 올라가 크게 소리쳐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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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0 [14:50]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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