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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명의 자기 표절, 그리고 태권도학
<태권도의 발전방향과 태권도학> 2
 
이창후 박사(서울대 철학과) 기사입력  2012/05/0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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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후 박사(서울대 철학과)
지난번에 예고한 대로 태권도학계에 만연되어 있는 ‘표절’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가장 먼저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할 연구자는 가장 많은 저술을 낸 이경명의 경우이다. 이경명에 대해서 필자가 이 칼럼에서 지적할 모든 내용들은 시중에 출판된 그의 저서들, 그리고 여러 도서관에 꽂혀있는 그의 저서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서점에서 태권도 관련 서적 부분을 찾아가면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저자가 바로 이경명이다. 어떻게 이경명은 다른 저자들과 달리 이렇게 많은 저서들을 써낼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의 저서를 읽어봄으로써 쉽게 찾을 수 있다. 『태권도의 바른 이해』, 『태권도 품새론』, 『태권도 무예요해』와 같은 매우 다른 제목의 저서들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모두 대동소이한 것이다. 결국 거의 같은 내용을 여러 책에서 반복적으로 베껴씀으로써 이경명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저서들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 중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것을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경명이 2002년에 출판한 『태권도의 바른이해』(상아기획)와 2005년에 출판한 『태권도 품새론』(상아기획)을 보면 앞의 책 290-292쪽과 뒤의 책 14-15쪽의 내용이 동일하다. 두 책의 내용에 사소한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3쪽에 걸친 내용이 사소한 몇 줄의 차이 외에는 동일하다는 점은 표절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이경명이 2002년에 출판한 『태권도학』(세계태권도연맹)과 2005년에 출판한 『태권도 품새론』(세계태권도연맹)도 마찬가지이다. 앞의 책 172-192쪽의 내용과 뒤의 책 11-32쪽의 내용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자기표절된 내용의 책이 ‘세계태권도연맹’에서 발간되었다는 것도 놀랄만한 일이다. 태권도의 공신력을 태권도연맹이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경명의 책과 이경명이 다른 사람들과 공저한 책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2005년에 출간된 『태권도 품새론』(상아기획)의 132-133쪽과, 2009년에 이경명․이송학․서민학 3명이 공저한 『태권도 품새학』(세계태권도연맹)의 166-168쪽에는 거의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태극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한다. …<중략>…신경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등의 내용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2005년에 이경명 1인의 저서가 2009년 그를 포함한 3인의 저서로 둔갑하면서 원래 원고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짜깁기 된 형태이다. 실제로 두 책의 내용이 서로 같다는 것은 2005년 책의 37-39쪽이 2009년 책의 52-53쪽과 동일하며, 2005년 책의 42-43쪽과 2009년 책의 56쪽이 동일하다는 것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이경명 자신의 책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공저에서 반복적으로 자기표절되는 사례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2002년의 『태권도의 바른 이해』와 2004년에 출판된 이경명과 김철오의 『태권도 무예요해』에서도 반복된다. 2002년 책의 14-16쪽과 2004년 책의 38-39쪽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으로 대표적인 한 가지 경우만을 종합해 보면, 『태권도 품새론』(2005, 상아기획)과 이경명․이송학․서민학이 공저한 『태권도 품새학』(2008, 세계태권도연맹)은 대략적으로 전체 내용의 80-90%정도는 서로 유사해 보인다. 실제로 제목도 비슷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의 책에서 그 원고를 조금 수정하거나 혹은 내용을 일부 빼거나 조금 보태어서 새로운 저서로 둔갑시키면서 거기에 다른 저자들의 이름을 올려서 새 책을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이경명의 저서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반복적으로 시도되고 있다.(칼럼이라서 지루한 증거들을 모두 제시하지 않을 뿐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표절문제가 곧잘 불거지는 예체능계 어디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이경명이 자신의 저서를 반복적으로 자기표절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사태는, 학술저서임을 표방하는 원고 내용에서 인용한 내용이 그 저서의 참고문헌 목록에서 나타나지 않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서 『태권도 품새론』(2005, 상아기획)에서는 “Reid, 1916 - 157쪽, J. M. Smith - 158쪽, Felshin, 1975 - 158쪽” 등의 인용 출처들이 나타나지만 책 뒤쪽의 참고문헌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사실상, 학술적인 형식만 갖추었을 뿐 책의 내용이 전혀 학술적인 수준의 질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문제점을 찾아낸 사람은 필자와 같은 태권도학 연구자가 아니다. 태권도에 관심 있는 일반 대학생 혹은 도장에서 태권도를 수련하는 수련생들이다. 이들이 태권도에 보다 관심이 생겨서 책을 사 읽다보니 여기저기서 같은 내용만을 반복하고 있음을 지적하였고 필자가 그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내용에 분노해서 어떤 연구자는 태권도학에 만연한 표절을 모두 지적하는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보았다. 필자의 칼럼 역시 그 연구자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문은 각 연구자들에 의해 곧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심각한 표절문제는, 일반인들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을 모두 죽여버린다. 태권도 연구자들이 모두 이와 같은 수준의 주장을 하며 태권도학이 이와 같은 잘못된 난장판이라는 오해를 준다. 그리하여 태권도 자체가 가치 없는 스포츠에 불과하다는 오해를 주고, 궁극적으로 태권도를 망친다. 여기에 세계태권도연맹과 같은 기관도 한 명의 방조자로서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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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5/04 [07:06]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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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사범 2012/05/22 [13:36] 수정 | 삭제
  • 모든책의 저술함에 있어, 자기의연구,실적을 표현하는 퍼센테이자가 3-4 %로 알고 있다.완전히 다른 내용이 있을수 없다는 것이 이창후군이 알고있을, 식견있는 사람인줄 알았는 데,.기본도 없는 아이가 조금 배웠다고,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버릇없는,잘못된 망아지 같은 말보다, 뭔가 나름대로 연구하고, 태권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평아닌, 연구다운 연구를 하길 바란다.
  • 태호 2012/05/18 [14:00] 수정 | 삭제
  • "윗글 웃기네"라는 닉명으로 글쓴분 말좀 제대로하세요.버벅거리지말고.
    당신이 성공하고 출세하면 당신 혼자 잘나 된겁니까!부모도 스승도 친구도없이 혼자잘나 된겁니까! 당신의 윗글웃기네 종친이나 출신학교나 친구들이 겉이든 속으로든 축하하고 기뻐할겁니다.못난행동을 하면 안타깝고 격려하며 잘되기를 바라는게 고향이고 모교고 친구인데 당신같은 개념으로는 잘하든 못하든 역사와 공동체의식이 전혀 무지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지요 .즉 개인이기주의와 자기합리화로 끈기와 인내는 없고 순발력에만 의존하는 약삭빠른사람들의 전형이지요.잘먹고 잘살순 있어도 죽을때 본인 자신에게 크게 후회하며 이승을 떠나갈겁니다.진정으로 당신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줄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가 살펴보세요. 함부로 매도하지말고...
  • 무스ㅡㄴ? 2012/05/14 [18:04] 수정 | 삭제
  • 용기라니 가당찮다. 그것은 예의가 없고 거저 제 잘난체하는 병일 뿐이다.
    그 병적 증세를 용기로 착각할 수 있으나 이창후의 이번 글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이경명 선생이 무슨 논문을 표절을 했다는 것인가?
    이경명 선생이 논문을 어디다 제출한 적도 없지 않나.

    이전에도 이창후는 이경명선생을 비판했다가 지적을 받고 개별적으로 사과를 한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예의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논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창후의 글뽄새를 봐라.
    이런 걸 후학의 용기라고 하는 건 또하나의 잘못이다.
  • 용기 2012/05/11 [11:46] 수정 | 삭제
  • 이창후선생의 용기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경명원로는 이를 부정하지 말고 태권도후학들의 용기로 받아야 한다. 우리 태권도는 용기가 부족하다. 표절논쟁이 있을때 감싸기 바빴다. 혹시 태권도가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거다. 그렇지만 태권도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태권도는 비판론적 관점의 이야기들을 부정하는 풍토다.이런 이유로 태권도는 지금 갈팡질팡 진흙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권도학자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연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논의와 논쟁이 뒤따랐어야 했다. 원로가 후학들에게 한방먹은게 아니다. 후학들의 용기있는 자세가 이경명 원로를 더욱 빛나게 할거라 믿는다. 한 젊은 태권도학자가 용기있는 글을 쓴데에 대해 지나칠정도로 부정적 시각으로 비난한다면 태권도발전은 없다. 비난과 비판은 다르다는 것을 태권도계가 알아야 한다.
  • 참내 2012/05/10 [11:42] 수정 | 삭제
  • 이창후는 태권도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조건 선배들을 폄훼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창후도 곧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런 돌놈같은 후배가 또 나타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이런 글 싣는 창후 왈 "아무도 보지 않는 인터넷 전문매체"도 자성하라.
  • 너도 2012/05/09 [17:15] 수정 | 삭제
  • 이경명의 추종세력이 아니라 잘난체 이창후의 비판세력이라고 해야 맞다.
  • 나도 2012/05/08 [17:30] 수정 | 삭제
  • 이경명 추종세력이 이렇게 견고하군요. 태권도철학 웃기는 소리입니다 태권도철학을 말할수 있는 사람은 태권도창시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용한것도 아니고 대충 종교철학에서 좋은글 모두따다가 붙인것이 태권도철학이라고 둘러대니 개똥 철학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리고 태권도철학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요, 이경명씨가 쓴글을 보면 무술철학이지 태권도 철학이라고 단정할수가 없습니다 모든무술의 공통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태권도를 말하고 싶다면 주군주의를 표방하는 일본식 도자를 빼야하는것 아닙니다 태권도인으로서의 양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 비공감 2012/05/08 [05:01] 수정 | 삭제
  • 이경명선생이 스스로 자신을 학자라고 칭하였거나, 학위논문이나 연구용역 논문을 표절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창후나 공감이라는 사람들은 대상선택에서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다.
  • 공감 2012/05/07 [19:35] 수정 | 삭제
  • 이경명씨에 대해 나또한 좋게보지 않는다 우선 학자라는사람이 연구중심이 아닌 모방학을 한다고 생각한다 태권도학을 자기마음대로 정의하기도 하고 태권도역사도 자기마음대로 기원화한다. 태권도학을 정리하려면 기원을 명확히해야한다 태권도기원을 바르게 하려면 태권도창시자가 누구인지 학자로서의 양심으로 명확히 해야한다. 그러나 이경명씨는 그렇게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학자라고 할수가 없도 그냥 작가 또는 평론가 수준이라고 해ㅑ 옳다고 봅다 이같은 평가는 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배들에 의하여 이러한 평가가 내려질지에 대하여 그는 생각이나 했을까?
  • ㅎㅎ 2012/05/07 [18:54] 수정 | 삭제
  • 왜 글내용하고 출신학교하고 상관이 없을까.
    있다마다.
    서울대스럽다는 말이 뭘 뜻하는 걸까?
    제 혼자 잘난 줄 안다는 의미가 아닌가.
    글 내용이 바로 서울대스럽기때문이고, 바로 글 주인이 서울대 나온 서울대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글 내용이 인격적으로 결함에서 출발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 윗글웃기네 2012/05/07 [12:44] 수정 | 삭제
  • 글내용하고 서울대하고 무슨상관있나? 참나....
  • 태호 2012/05/06 [03:06] 수정 | 삭제
  • 그리고 어떤 원한관계인지는 몰라도 존칭좀 하세요.이경명이 뭡니까 이경명이.그분의 가족이나 자식들이보면 세상 살맛 나겠습니까.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서울대가 얼마나 대단허길래 아버지뻘되는 분에게 그런 무식한소릴 합니까.서울대가 뭐이 그리 대단하다고..에이..서울대같으니라구..
  • 태호 2012/05/06 [02:57] 수정 | 삭제
  • 서울대 선생님들은 다 이런사람들로 구성되었을까. 과연 한국최고의 대학인지 의심스럽구만요. 선생님 정신차리세요.개인의 이익을 위해 태권도를 위해 헌신하신 존경스런 선배님들 욕하지마세요.당신의 주장이라면 지나간 역사의 주인공들은 모조리 다죽어야하고 벌을 받아야하는데 당신의 조상님도 다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세요. 과오없는 발전은 없답니다.당신도 후세의 후배들에게 무조건 비판당할것은 자명합니다.왜 시대에따라 살아가는 방법은 다르기에 판단은 후세에서 하는거지요.못살아도 못나도 아버지탓만 한다면됩니까.아버지를 바꿀겁니까.과연 당신은 얼마만큼 완벽하게 잘하고있는지 잘못함도없고 숨겨논게 없는지 가슴에 손을얹고 생각해보세요.그리고 반성하세요.
  • 우하하 2012/05/05 [07:27] 수정 | 삭제
  • 위에 이창후의 글에 대해 참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하는 글을 보고 입안이 매우 쓰다.
    참용기가 교만과 자기기만과 자기 욕구충족을 위한 비열함을 가장하였을 때는 둘을 구분되기가 어려우니 설핏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용기란 자기 것을 버릴 수 있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창후가 자기 희생을 각오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후의 이런 행동은 용기를 가장한 비겁한 뒷통수치기에 다름없다.

    막가파가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것을 용기라고 할 수 없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고양이를 무는 것이 용기인가?
    부자에게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기대를 갖지 않는 사람은 부자의 잘못에 삿대질을 할 순 있지만 부자에게 물건을 팔아서 먹고 사는 영세업자라면 부당한 부자의 행패에 저항하기가 어렵다.

    창후는 지금 막가파나 궁지에 몰린 쥐, 부자에게 무엇을 얻을 기반이 없는 거렁뱅이의 입장이다.

    그런 사람이 어른한테, 국기원한테, 태권도에 손가락질하고 대들고 욕하고 따진다고 그게 용기일까?

    그가 국기원에 비상근 연구원으로 있을 땐 찍소리도 안나왔다.
    그 말단 자리도 혹시나 전임연구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기대가 날아가고 나서 원한에 사무친 앙심으로 이런 글을 써자고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스스로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깔보고, 혹평한 이런 인터넷 매체에 칼럼 난을 얻어서 남을 까는 짓을 해대는 자기모순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용기가 아니라 비열하고 야비하며, 예의를 상실한, 염치없는 행동이다.
  • 우하하 2012/05/05 [06:41] 수정 | 삭제
  • 창후는 식자무식이라는 말을 새겨 들어야 할 사람이다.
    지금 문대성이가 저지른 과오는 학위논문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행본 책, 에세이와 유사한 내용의 저서에 남의 것을 베낀 게 아니라 제 것을 일부 옮겨서 책을 만들었다고 해서 많은 저서가 내용 상
    대동소이하다고 하면서 문제시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내가 10권 이상 이경명의 책을 읽어봤다. 보니까 일부 동일한 문장이나 내용이 중복되는 게 보였다.
    이런 주장이 그 사람의 일관된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다른 새로운 사실과 유익한 내용, 남이 생각 못했던 독창적인 견해가 많았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나는 이경명의 저서들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책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난 이런 저서야말로 태권도에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류대 박사라고 으시대지만, 이창후는 말도 안되는 궤변 투성이,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은 말장난 같은 수사 외에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준 것이지 알 수가 없다.
    거저 남을 깔보는듯한 교만한 태도와 기존연구자, 그것도 어르신이나 선배, 스승을 까는 것으로 자기 과시를 하는 궁뎅이에 뿔 난 못된 송아지라는 이미지만 주고 있다.
    위에 누군가가 지적했지만 창후 역시 자기가 쓴 책이나 여기저기 기고한 글에 보면 항상 똑 같은 소릴 하고 있다.
    연구자가 같은 소릴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본다.
    이게 논리의 일관성이다.
    그럼으로 동일 연구자가 자기 것을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연구논문, 특히 학술논문이거나 학위논문이라면 제것이거나 남의 것이거나 이미 발표된 연구성과라면 그 출전을 밝히고 그에 대한 논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단행본 저서라면 성격이 다르다.
    읽는 독자가 동일한 내용을 이책, 저책을 통해 중복해서 읽으면서 저자의 인식에 더 쉽게 접근할 수도 있다.

    저자나 출판사가 전략적으로 그런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해도 그걸 꼬투리로 비판할 필요는 없다.
    아니 비판이야 자유지만 책을 읽고 저자의 중복된 주장에 공감하는 독자로서는 다른 내용을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학위논문은 학위를 받기 위한 필수적 학력의 테스트 과정이고, 학위라는 반대급부가 따른다.
    따라서 학위 논문은 형식과 내용이 모두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고 잘못에 대한 응분의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이경명의 책들은 그런 학위논문이 아니지 않는가?
    그걸 학위 논문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창후의 식자우환격인 의식이 더 문제다.
    태권도 학게, 아니 전 학계에 만연해 있는 논문표절에 대한 비판을 한다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저서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주제를 일탈한 것이다.
    나사를 너무 세게 조으면 나선이 망가져서 못쓰게 된다.

    혼자 똑독한 척, 잘난 척 아무리 해봐도 나이가 좀 더 들어 보면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다.
  • CKA66 2012/05/04 [19:56] 수정 | 삭제
  • akwdkdy.rmfotj xornjseh. akwdkdy맞아요. 태권도책은 그게 그거요. 그래서 망치네요.
  • 표절인식 2012/05/04 [18:11] 수정 | 삭제
  • 참 용기에 지지밧수 보내드립니다. 표절을 잘해야 졸업하고 인정받는사회가 된것에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너도나도가짜이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는것이지요. 참고문헌이 많을수록 지식인대우받고 교수들도 참고문헌없으면 있다고 가장표기하라고 하는세상이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인용문구 없으면 연구는 한것이냐 되 묻고 자기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며 잘못된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새로 연구해 오라고 하고 그럴듯하게 표본조사 했다고 하라고 하고 설문이 필요없는 연구에도 설문하라고 하고 진짜 연구하고 싶어도 연구할수 없는 관행 참 개판입니다
  • 허허 2012/05/04 [11:50] 수정 | 삭제
  • 이창후의 책들도 몇 권되고 그 중에 표절이 꽤 있던데.....
  • Zen Rock 2012/05/04 [07:51] 수정 | 삭제
  • 문제는 심각하게 점점 눈덩어리 처럼 커질것처럼 보입니다. 이박사가 중지하지 안는한, 태권도란 단어도 안쓰고 그테두리에서 멀리하지 안을수잇는 입장을, 이창후박사는 젊은 세대인지라 끝까지 밝히려는 의도인듯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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