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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임기소고(臨沂小考)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1/15 [06:43]
▲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산동반도 동남쪽에 있는 린위(臨沂)는 인구가 약 2천만이나 되는 큰 고장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한다. 약 40만년 전부터 사람들은 이곳에서 제법 발달된 삶을 꾸렸다.
 
순자, 담자(郯子), 제갈량, 왕희지, 안진경, 유협(劉勰) 등 명사들도 이곳이 배출했다. 또 유소기, 서향전, 나영환, 진의 등 중공군의 전투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험준한 산과 수려한 전원풍경은 순박한 민속과 함께 독특한 관광자원이다.
 
은작산 한묘죽간박물관은 가장 많은 죽간을 비치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다. 1700여년 전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오랜 수수께끼가 풀렸다. 손자병법은 233매 18편, 손빈병법은 222매 16편이다.
 
서성(書聖) 왕희지고택은 세연지가 20호에 있다. 왕희지는 아들 헌지와 함께 중국서예사에서 ‘이왕’이라고 부른다. 서진이 망하자 307년에 가족과 함께 절강성 소흥시으로 이사했다. 그가 살던 집은 절로 변해 흥망을 거듭했다. 1130년, 지금의 이름인 보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0년에 왕희지의 집터에 왕희지고거를 중건했다. 대문과 마주보는 곳에는 세연지(洗硯池)가 있다. 왕희지가 어렸을 때 벼루를 씻었던 곳이라고 한다. 세연지 북쪽에는 쇄서대(曬書臺)가 있다. 왕가에서 책을 말리던 곳이다. 그 북쪽에는 현재에 지은 낭야서원(琅邪書院)이 있는데 왕희지의 글씨와 역대 서예가들의 진적이 있다.
 
평읍현과 몽음현의 경계선에 있는 몽산(蒙山)은 2천년 동안 문인과 제왕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당현종, 송신종, 송희종, 청의 강희제와 건륭제가 제사를 올렸다. 공자도 자주 몽산을 찾았다. 맹자는 공자가 몽산에 올라가 작은 노나라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손빈, 방연, 장의의 스승으로 알려진 귀곡자도 이 산에 은거했다. 이백과 두보는 함께 이 산에 올라 시를 지었다. 소동파도 이 산에 올라 ‘발해가 뽕나무밭이 되더라도 놀라지 마라(不惊渤海桑田變), 구몽산은 여전히 봄날에 젖는다(來看龜蒙漏澤春)’는 유명한 시를 지었다.
 
제갈량의 고향은 기남현 전부향의 양도고성에 있다. 삼국시대의 정치가이자 군사전문가였던 그는 AD 181년에 태어났다. 양도고성의 동쪽은 기하가 흐르고, 그 서쪽 절벽에서 돌로 쌓은 견고한 고대 성벽이 출토됐다.
 
고성의 북쪽으로 흐르는 동기하의 강가에는 약 1500m 정도가 되는 고성의 자취가 남아있지만 지금은 분별을 하기가 어렵다. 1992년, 제갈량의 고향에 그의 기념관을 지었다. 대전의 정중앙에 제갈량의 조상이 있고, 그 둘레로 그의 찬란한 일생을 그린 14폭의 벽화부조가 있다.
 
기남현성 서쪽 산자락에 와룡공원이 있다. 당연히 유명한 그의 전후출사표를 새긴 2개의 비석도 있다. 부근에는 한나라 시대의 석묘가 있다.
 
전쟁, 제사, 출행, 잔치, 무용, 역사고사, 신화인물, 기이한 짐승과 새 등을 소재로 삼아 정교하고 유연한 실선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양한시대의 회화예술 가운데 진귀한 보물로 당시의 경제 및 사회상과 계급적인 모순, 전장제도, 풍속, 건축, 회화, 종교철학과 사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린위를 돌아본 느낌은 깊은 비경을 본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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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5 [06:43]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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