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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원의 문이자 검증의 심판대…전통무예진흥법, 야성을 잃지 않으려면

편집부 | 기사입력 2026/05/14 [22:59]

[사설] 지원의 문이자 검증의 심판대…전통무예진흥법, 야성을 잃지 않으려면

편집부 | 입력 : 2026/05/14 [22:59]

▲ 발행인 서민성  © 한국무예신문

2026년 5월 12일, 전통무예계가 17년 동안 기다려온 제도 시행의 날이 마침내 왔다. 이날 전부개정된 전통무예진흥법과 사상 최초의 시행규칙이 동시에 발효됐다. 그러나 이날이 전통무예의 새벽인지, 아니면 새로운 종속의 서막인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지원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문 앞에는 심판대도 함께 놓인다. 이 글에서 말하는 야성이란, 어떤 제도적 언어로도 완전히 번역되지 않는 수련 본연의 긴장감—국가가 진흥을 논하는 순간에도 무예가 스스로의 본질을 지키려는 근원적 저항력이다. 법은 무예를 제도화할 수 있어도, 야성마저 행정화할 수는 없다.

 

법령 체계의 완성은 분명 한 걸음 진일보한 성과다. 정부는 5년마다 기본계획을 세우고, 전통무예육성종목을 지정하며, 1급·2급 전문지도자를 공인하게 된다. 영세한 단체에는 국가와 지자체 예산으로 이어지는 합법적 통로가 열리고, 평생 도장을 지켜온 지도자에게는 전문직의 지위가 부여된다. 무예는 오랜 세월 감내해온 제도적 고아의 처지에서 마침내 벗어나는 국면에 들어섰다.

 

그러나 제도가 완성될수록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 이 법은 무예의 공공선을 세우는 주춧돌이 될 수도, 소수 기득권의 전유물로 굳어질 수도 있다. 그 갈림길에서 정부와 무예계는 서로에게 요구할 것과 스스로 감당할 책임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전통무예진흥법의 주무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유산팀이다. 이제 질문은 행정을 향한다. 5년 단위 기본계획은 언제, 어떤 절차로 수립되는가. 육성종목 지정 공고는 언제 나오며, 평가 기준과 검증 방식은 어디까지 밝혀지는가. 지도자 1급·2급 자격 검정과 연수 계획은 언제 고시되는가. 자격 검정과 연수를 맡을 기관은 어떤 원칙으로 선정되는가.

 

법은 시행됐지만 현장은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다. 제도가 원칙에 맞게 출발하려면 주무부처가 먼저 시간표와 기준을 현장에 내놓아야 한다.

 

[정부에 바란다] 행정 편의주의를 경계하고, 공정의 기틀을 세워라

 

첫째, 육성종목 지정을 밀실에서 꺼내라.

 

법 제6조 제1항이 부여하는 전통무예육성종목 지위는 예산과 공신력을 좌우하는 핵심 관문이다. 지정되면 길이 열리고, 탈락하면 지원과 공신력의 통로가 크게 좁아질 수 있다. 시행규칙 제3조 제1항은 지정 신청의 접수개시일 30일 전까지 세부 평가 기준과 검증 방법, 신청 기간과 방법을 문화체육관광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차가 형식적 공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심사위원의 이해충돌 여부, 평가 항목별 배점, 최종 판단의 근거가 검증 가능한 형태로 공개되지 않으면 제도는 출발부터 신뢰를 잃는다. 탈락한 종목도 수긍할 수 있는 심사 과정은 공정성의 출발점이 아니라 행정의 의무다.

 

둘째, 관료주의의 잣대로 무예의 본질을 재단하지 마라.

 

법 제6조 제1항은 전통적·문화적·스포츠적 가치를 육성종목 지정의 세 축으로 명시하고, 시행규칙 제2조 제5호는 그 스포츠적 가치를 "체력 증진, 인성 함양 등"으로 구체화했다. 인성 함양을 명문화한 이 기준은, 올바르게 적용된다면 무예의 정신적 수양과 예법 전수를 충분히 포괄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기준의 문구가 아니라 심사 현장의 적용 방식이다. 경기 실적과 선수 등록 수치만을 잣대로 삼는 순간, 무예는 점수판 위의 규격화된 퍼포먼스로 전락한다. 무예는 본래 호신과 수련, 정신적 수양 속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온 신체문화다. 국가 지원을 앞세워 고유한 수련 체계를 스포츠 규격에 억지로 맞추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법 제7조 제2항 제3호가 규정하는 '국가적 차원의 진흥 필요성이 현저히 낮아졌을 경우'라는 지정 해제 사유가 자의적으로 남용돼 비주류 종목을 행정의 바깥으로 밀어내서도 안 된다. 무예의 날은 규격화의 틀 안에서 쉽게 무뎌진다. 무예의 깊이는 스포츠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다.

 

셋째, 소규모 도장과 비주류 무예를 위한 사다리를 놓아라.

 

정교한 서류와 조직력을 요구하는 새 제도는 구조적으로 대형 단체에 유리하다. 법 제11조 제1항은 자격 검정 및 연수 실시 기관으로 전통무예단체·고등교육법상 학교·국민체육진흥법상 체육단체를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권한이 특정 대형 단체에 집중된다면, 공익적 진흥법은 자격증 사업과 시장 진입장벽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풀뿌리에서 전통을 지켜온 소도장과 비주류 수련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행정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전승의 가치까지 낮게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무예계에 바란다] 목소리의 시대를 끝내고, 데이터와 증명의 시대를 열어라

 

첫째, 정통성 논쟁을 내려놓고 객관적 사료를 쌓아라.

 

'우리가 진짜 전통이다'라는 감정적 선언의 시대는 끝났다. 시행규칙 제2조 제1호는 전승된 사실이 문헌, 기록, 구술 등의 자료를 통해 증명될 것을 지정 기준의 첫 번째로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제2호는 기술체계·무기·복식·수련체계·예법·용어에 우리나라의 전통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정통성을 주장하는 모든 단체가 심사위원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은 결국 이 두 조항을 충족하는 문서와 물증이다. 타 종목을 겨냥한 소모적 정통성 분쟁에 쓰던 에너지는 이제 사료 축적과 학술적 입증으로 돌려야 한다.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료는 스스로 수집하고 정리하며 검증받아야 한다. 심사위원은 열정이 아니라 문서를 본다.

 

둘째, 지원금을 둘러싼 이권 다툼을 경계하고 공적 책임에 걸맞은 윤리를 갖춰라.

 

지자체 운영비와 교육·대회 보조금은 공공 재원이지, 눈먼 돈이 아니다. 감사원이 체육 분야 국고보조금 집행 실태를 반복 감사해온 결과, 일부 경기단체가 보조금을 사업 외 용도로 전용하거나 허위 정산 서류를 작성한 사실이 지속적으로 적발돼 환수 처분과 수사 의뢰로 이어졌다. 이는 체육 분야 공적 재원 관리가 얼마나 쉽게 부패 경로로 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선례다. 전통무예계도 예외가 아니다. 단체는 예산 집행 내역을 낱낱이 내놓아야 한다. 또한 지원의 혜택이 수뇌부가 아니라 현장의 수련생과 지도자에게 돌아가도록 내부 자정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지원받는 순간 무예 단체는 시민의 감시를 받는 공적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사회적 가치로 진흥의 명분을 스스로 증명하라.

 

전통무예는 이제 국민 건강과 미래세대 교육이라는 공익적 사명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 무예계는 학교폭력 예방, 청소년 인성교육, 지역 문화유산 연계 프로그램 등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지 먼저 제시해야 한다. 국가가 왜 지원해야 하는지를 납세자 앞에서 설득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무예인의 책무다.

 

전통무예진흥법의 전면 시행은 무예계 앞에 놓인 거대한 지원의 문인 동시에, 그 자격을 묻는 냉정한 심판대다. 이 판이 소수 기득권의 사유지가 될지, 아니면 전통무예가 공공의 토대 위에서 다음 세대와 이어지는 현장이 될지는 앞으로의 운영에 달려 있다.

 

한국무예신문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유산팀에 묻고, 다시 물을 것이다. 기본계획은 언제 나오는가. 육성종목 지정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가. 지도자 양성 제도와 예산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는가. 지정의 문턱은 누구에게 열리고 누구에게 닫히는가.

 

한국무예신문은 예산의 흐름과 지정 절차의 형평성을 끝까지 추적하고, 현장의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끝까지 대변할 것이다. 새로운 판은 깔렸다. 이제 무예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야성이냐 순응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제도 안에서 야성을 벼리는 것—그것이 이 시대 무예인에게 주어진 가장 어렵고도 본질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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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진오 2026/05/15 [03:36] 수정 | 삭제
  • 한국무예신문의 날카로운 사설, 한국무예에대한 애정이 담겨있네요. 응원합니다.
  • 안동역에서 2026/05/15 [01:31] 수정 | 삭제
  • 맞습니다. 현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 이근복 2026/05/14 [23:22] 수정 | 삭제
  • 현장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은 채 내려지는 결정은 결코 올바를 수 없습니다.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판단은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현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 속에서 쌓아온 목소리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검증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한 채 형식적인 절차와 보여주기식 의견 수렴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합니다. 정책과 행정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그 책임은 현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한 번 듣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묻고, 깊이 있게 듣고, 그 안에 담긴 본질까지 읽어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가입니다. 현장의 신뢰를 잃은 정책은 결국 아무리 포장해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쌓여 올라올 때 완성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 무게를 그대로 정책에 담아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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