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결과] 태권도 심판 설문에 54명 익명 응답…96.3% "현행 일비 부족"한국무예신문, 대한태권도협회 심판 처우·운영 실태 기획 연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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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태권도협회 심판 처우·운영 실태 설문 응답 결과 일부 수치화 이미지. © 한국무예신문 |
설문의 설계와 취지
본지는 2026년 4월 30일부터 5월 8일까지 대한태권도협회 산하 심판 활동 경험자를 대상으로 '심판 처우·운영 실태에 관한 익명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은 완전 익명으로 설계됐다. 응답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수집하지 않았으며, 연락처 수집은 응답자의 자발적 동의에 한해서만 이루어졌다.
설문 설계의 핵심 원칙은 두 가지였다. 첫째, 현재 또는 최근까지 실제로 심판 활동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둘째, 특정 결론을 유도하는 질문을 배제하고, 응답자가 실제 경험한 사실을 수치와 서술 양방향으로 답할 수 있도록 한다. 설문은 처우·보상, 운영 환경, 오심 기준·징계 절차, 조직 문화, 활동 지속 의향 등 5개 영역 38개 문항으로 구성됐으며, 일부 문항에는 자유응답란을 마련해 수치로 담기 어려운 현장의 목소리를 별도로 수집했다.
취지는 단순하다. 심판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심판 스스로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 그 기록을 공론장에 올려 변화의 근거로 삼는 것.
본지는 설문 응답 결과가 나옴에 따라 이번 기사 게재와 동시에 공식 질의서를 협회에 발송했으며, 협회의 서면 답변을 후속 보도에 반영할 예정이다.
응답자 구성 — 현장 경험 기반의 신뢰도
총 54명이 응답했다. 현재 활동 중인 현직 심판이 96.3%(52명)이며, 경력 5년 이상이 79.6%(43명), 최근 3년 이내 KTA 관련 대회에 실제 참여한 경험자가 98.1%(53명)다. 심판 경력 10년 이상 베테랑만 44.4%(24명)에 달한다.
종목별로는 품새 심판이 83.3%(45명)로 압도적 다수를 이루었고, 겨루기(7.4%), 복수 활동(5.6%), 격파(3.7%)가 뒤를 이었다. 현재 KTA에 등록된 심판은 품새 약 140명, 겨루기 약 120명, 격파 약 130명으로 세 종목이 거의 균등하게 분포돼 있다. 그에 비해 이번 표본은 품새 심판의 참여 비율이 현저히 높다. 이 점은 방법론적 한계로 명기해 둔다.
다만 표본 구성의 편중이 결과의 방향성을 왜곡하지는 않는다. 수적으로 소수인 겨루기·격파 응답자들 역시 처우·보상, 징계 절차, 조직 문화 관련 핵심 문항에서 품새 심판과 동일한 방향의 응답을 보였다. 종목이 달라도 구조적 문제의 경험은 다르지 않았다. 품새 심판이 더 많이 응답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장에서 처우 문제를 가장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는 집단이 누구인지를 역으로 가리킨다.
54명이라는 숫자가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무작위 표본이 아니다. 현재 또는 최근까지 실제로 경기장 판정석을 지킨 현장 전문가들이다. 경력을 합산하면 수백 년의 심판 경험이 이 설문에 응축돼 있다. 그들의 응답은 통계이기 이전에 증언이다. 그리고 그 증언이 익명을 조건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 조직 안에서 이름을 걸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두려운 일임을 이미 보여준다.
결과 요약 — 전방위 구조 부실의 실태
하루 10시간 가까이 경기장을 지킨 심판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받아 쥐는 돈은 얼마인가. KTA 내부 규정상 심판 일비는 1일 12만 원이다. 교통비 정액 10만 원을 포함해도, 대회 전날 집합일은 별도 수당이 없다. 초과 운영에 대한 기준도 없다. 설문에 응한 심판 96.3%가 이 금액이 업무 강도와 책임에 비해 부족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문제는 처우에만 있지 않다. 설문 결과는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된 이상 징후가 아님을 보여줬다. 처우·보상, 운영 환경, 징계 절차, 조직 문화 —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수준의 구조적 문제가 기록됐다.
가장 선명한 수치는 운영 환경에서 나왔다. 장시간 활동이 판정 집중도에 영향을 준다는 응답이 98.1%였다. 사실상 전원이 동의한 것이다. 이것은 심판 개인의 체력이나 집중력 문제가 아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쉬지 않고 판정석을 지키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응답자의 63.0%가 실제로 하루 8시간 이상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식사·휴식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81.5%, 심판복 지연·미지급 경험은 83.3%에 달했다.
처우·보상 영역에서는 세 개의 공백이 겹쳐 있다. 대회 전날 집합일 업무 시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87.0%, 초과 운영에 대한 보상 기준이 없거나 불명확하다는 응답이 92.6%, 교통비 10만 원이 실제 이동 비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9.6%였다. 일비 부족, 집합일 미인정, 초과 수당 기준 부재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에서 심판은 일한 시간의 상당 부분을 사실상 무보수로 감당하고 있다.
오심 기준과 징계 절차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져 있다는 증언이 집중됐다. 단순 오심 2회만으로 현장 조치가 내려지는 기준이 과도하다는 응답이 79.6%, 종목별 기준 분리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94.4%, 오심 구분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응답이 66.7%였다. 소명 기회가 형식적이거나 보장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83.3%에 달했고, 불이익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전언한 응답자도 81.5%였다.
조직 문화 영역의 수치는 더 불편하다. 의견 표명이 어렵다는 응답 83.3%, 관계 압박을 경험한 적 있다는 응답 75.9%, 친분이 배정·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 64.8%, 고립·배제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응답 75.9%. 이 수치들이 같은 조직 안에서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문제의 성격이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 문화임을 가리킨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이탈로 향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심판을 계속하고 싶다는 응답은 22.2%에 불과했다. 조건부 지속(35.2%), 고민 중(27.8%), 중단 의향 또는 이미 중단(14.8%)을 합산하면 77.8%가 이탈 위험군이다. 그러나 심판으로서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을 묻는 질문에서 1위는 자부심(42.6%), 2위는 책임감(33.3%)이었다. 자부심으로 버텨온 사람들이 구조의 한계 앞에서 이탈을 고민하고 있다. 이 역설이 현재 태권도 심판 조직의 실상이다.
![]() ▲ 심판 활동 경력을 묻는 설문의 질문 3 결과 원형 그래프. 총 54명이 응답했으며, 10년 이상 경력이 44.4%로 가장 많고, 5년 이상 10년 미만이 35.2%, 3년 이상 5년 미만이 14.8%를 차지했다. 1년 이상 3년 미만은 소수이며, 1년 미만 응답은 표시되지 않았다. © 한국무예신문 |
공식 질의서 동시 발송 — 보도와 책임의 병행
본지는 이번 기사 게재와 동시에 협회에 공식 질의서를 발송했다. 설문 결과에서 확인된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협회의 공식 입장과 관련 규정 공개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질의서는 총 7개 항목, 17개 세부 질의로 구성됐다. 심판 일비 산정 기준 및 현실화 계획, 집합일 수당 지급 여부, 초과 운영 수당 규정 공개, 종목별 오심 판단 기준 및 단순 오심 2회 기준의 적정성, 징계·현장 조치 시 소명 기회 보장 실태, 심판복 지급 기준 및 적기 지급 미이행 사례, 심판 배정 기준의 객관성·투명성이 그 내용이다. 각 항목에는 이번 설문에서 확인된 수치가 근거로 명기됐다. 협회가 "모른다" 또는 "처음 듣는다"고 회피할 여지를 처음부터 차단한 구조다.
협회의 답변 기한은 오는 5월 16일(금) 오후 6시다. 기한 내 제출된 답변은 후속 보도에 그대로 반영된다. 무응답 또는 답변 거부 사실 역시 보도 내용에 포함된다. 본지는 협회의 반응 여부를 막론하고 기획 연재를 계속 진행한다.
연재 계획
이번 기획은 총 5부작으로 연재된다. 각 부는 설문 결과의 특정 영역을 심층 분석하되, 수치에 그치지 않고 현장 심판들의 직접 증언과 구조적 맥락을 함께 담는다. 협회의 답변이 도착할 경우 해당 내용은 관련 회차에 병렬 보도 형식으로 반영된다.
월요일(18일)부터 게재되는 1부는 "하루 10시간, 일비는 제자리 — '일한 시간을 인정받지 못한다'"다. 일비 96.3% 부족, 집합일 87% 미인정, 초과수당 92.6% 기준 부재라는 3중 결핍 구조를 분석한다.
2부는 오심 기준과 징계 절차의 실태를 다룬다. 소명권 83.3% 형식적·미보장, 오심 2회 중지 기준 79.6% 과도 인식, 현장에서 실제 진행된 징계 절차에 대한 증언이 중심이 된다. 제목은 "오심 2회에 퇴장, 소명은 형식뿐"이다.
3부는 조직 문화의 민낯을 기록한다. 관계 압박, 친분 배정, 고립과 배제. 익명 설문이 아니었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말들을 담는다. 제목은 "끼리끼리, 줄 세우기, 고립과 배제 — 심판 조직의 내부 풍경"이다.
4부는 이탈 위기를 주제로 한다. 77.8%가 이탈 위험군으로 분류된 현실, 그럼에도 자부심을 첫손에 꼽는 심판들의 역설, 이 구조가 태권도 경기의 공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제목은 "자부심으로 버텨왔다 — 그 한계에 온 사람들"이다.
5부는 현장 심층 증언 특집이다. 연락 동의 심판 24명 중 심층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설문 수치 뒤에 있는 구체적 사건과 경험을 르포 형식으로 기록한다. KTA의 답변이 도착했다면 그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이 부에 통합된다.
본지의 입장
이 기획은 대한태권도협회 또는 특정 개인을 겨냥한 공격이 아니다. 한국 태권도가 스스로를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현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54명의 심판이 익명을 조건으로 이 설문에 응했다. 익명이 필요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조직 안에서 이름을 걸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두려운 일임을 방증한다. 한국무예신문은 그 두려움을 데이터로 전환해 공론장에 올리는 것이 탐사 저널리즘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창간 15년, 본지는 무예와 체육 거버넌스의 구조적 문제를 기록해왔다. 이번 기획도 그 연장선에 있다. 침묵이 지속되는 한, 취재도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