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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A 심판 처우·운영 실태 기획 4부] 자부심으로 버텨왔다

그 한계에 온 사람들
이탈 위험군 77.8% · 적극 지속 의향 22.2% · 가장 큰 감정 1위 자부심 42.6% · 2위 책임감 33.3%

편집부 | 기사입력 2026/05/20 [21:03]

[KTA 심판 처우·운영 실태 기획 4부] 자부심으로 버텨왔다

그 한계에 온 사람들
이탈 위험군 77.8% · 적극 지속 의향 22.2% · 가장 큰 감정 1위 자부심 42.6% · 2위 책임감 33.3%

편집부 | 입력 : 2026/05/20 [21:03]

▲ 태권도 조직 내 처우·절차·문화 문제로 자부심과 책임감이 무너지고, 구성원 이탈 위험이 커지는 구조를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 한국무예신문

 

심판석에 앉는 순간

 

경기 시작 직전, 심판이 경기장에 들어서고 선수들은 대기석에 서 있는다. 관중은 경기를 기다린다. 그 순간 심판석에 앉은 사람은 이 경기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 무게를 처음 느꼈을 때, 많은 심판들이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자부심이다. 태권도를 수년간 수련하고, 자격을 취득하고, 보수 교육을 거치며 쌓은 경험 끝에 주어진 자리. 경기를 구성하는 핵심 주체로서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

 

설문에서 심판으로서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을 묻는 질문에 42.6%가 자부심을 첫손에 꼽았다. 2위는 책임감(33.3%)이었다. 두 감정을 합하면 75.9%가 자부심이나 책임감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정으로 꼽은 것이다.

 

그리고 77.8%가 이탈 위험군이다.

 

이 두 사실이 같은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22.2%

 

적극적으로 심판을 계속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22.2%(12명)였다.

 

54명 중 12명이다. 이 숫자를 다르게 읽으면, 현직 심판 네 명 중 한 명도 안 되는 수만이 지금 구조 안에서 주저 없이 계속하고 싶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세 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다.

 

조건부 지속을 택한 응답자는 35.2%(19명)다. 이들은 떠나지 않았지만, 조건을 달았다. 무언가가 바뀌면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를 이미 계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민 중이라는 응답은 27.8%(15명)다.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매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는 위촉 결과를 받아든 직후에, 이 질문이 반복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중단 의향이 있거나 이미 중단한 응답자는 14.8%(8명)다. 설문에 응답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는 의미다. 이미 완전히 떠난 사람들은 이 설문에 없다.

 

조건부 지속, 고민 중, 중단 의향 또는 이미 중단. 이 세 범주를 합산하면 77.8%다. 이탈 위험군이라는 말은, 이들 중 상당수가 조건이 바뀌지 않을 경우 심판 활동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역설 —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자부심과 이탈 위기가 같은 사람에게 공존한다는 사실은, 이 문제의 성격을 규정한다.

 

자부심이 없는 사람이 떠난다면, 그것은 심판 조직과의 불일치다. 처음부터 이 일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 떠나고 있다면, 그것은 조직이 그 자부심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일의 의미를 느끼고, 이 자리의 무게를 아는 사람들이 구조의 한계 앞에서 지치고 있다는 것이다.

 

1부에서 확인한 처우의 3중 결핍이 있다. 일비 12만 원, 집합일 미인정, 초과 수당 기준 부재, 실비에 못 미치는 교통비. 2부에서 확인한 절차의 공백이 있다. 불명확한 오심 기준, 형식적 소명, 불이익의 실재. 3부에서 확인한 조직 문화의 압박이 있다. 관계 압박, 친분 배정, 고립과 배제, 83.3%의 침묵.

 

이것들이 동시에 작동하는 조직 안에서, 자부심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다.

 

"처음엔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몸과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지점이 생겼습니다."

 

자유응답에 담긴 이 진술이 77.8%의 내면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떠나려는 이유가 자부심의 부재가 아니라는 것. 자부심은 있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조건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

 

 

이탈이 경기에 미치는 것

 

심판이 떠나면 경기에 어떤 일이 생기는가.

 

표면적으로는 공석이 채워진다. 새로운 심판이 자격을 취득하고 그 자리를 채운다. 숫자는 유지된다. 그러나 숫자 안에서 무엇이 빠지는지가 문제다.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심판이 이번 설문 응답자의 44.4%다. 경력 5년 이상이 79.6%다. 이 수준의 경험은 단기간에 대체되지 않는다. 복잡한 상황에서의 판단력, 규정의 세부 적용 능력, 선수의 동작을 읽는 감각. 이것들은 교육과 시험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 경험으로 쌓인다.

 

베테랑 심판이 떠난 자리를 경력이 짧은 심판이 채울 때, 경기 판정의 품질은 평균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대회에서 그 차이는 선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1부에서 확인한 수치를 다시 가져온다. 장시간 활동이 판정 집중도에 영향을 준다는 응답이 98.1%였다. 여기에 이탈로 인한 인력 부족이 더해지면, 남은 심판들이 더 오래, 더 많은 경기를 담당하게 된다. 집중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이 더 심화되는 것이다.

 

태권도의 공정성은 판정의 질에서 온다. 판정의 질은 심판의 역량과 컨디션에서 온다. 역량 있는 심판이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활동할 때, 그 공정성이 유지된다. 이탈 위기는 그러므로 심판 조직의 문제이기 이전에, 태권도 경기 자체의 문제다.

 

 

무엇이 남아있게 하는가

 

그렇다면 22.2%는 왜 남아있는가. 조건부 지속을 선택한 35.2%는 무엇을 조건으로 걸었는가.

 

자유응답에 담긴 진술들은 대체로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이 일 자체에 대한 애착, 선수들에 대한 책임감,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 온 동료들과의 유대. 이것들이 흔들리는 구조 안에서도 태권도 경기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이 남아있게 하는 이유로 언급된다.

 

"선수들을 보면 못 떠나겠습니다. 이 어린 선수들이 준비해 온 게 있으니까요."

 

"같이 10년을 한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버티는 것 같기도 해요."

 

구조가 무너지는 속도보다 이 유대와 사명감이 조금 더 오래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구조가 작동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남아있는 이유가 사명감과 유대라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 사명감과 유대가 소진될 때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이 한 문장이 조건부 지속과 고민 중 응답자들의 현재 위치다.

 

 

자부심은 무한하지 않다

 

이번 설문의 결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쓸 수 있다.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자부심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구조 앞에 서 있다.

 

자부심은 자원이다. 소진된다. 적절한 보상, 공정한 절차, 건강한 조직 문화가 그 자부심을 재충전하는 조건이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태가 반복되면, 자부심은 소진되고 이탈이 시작된다. 77.8%가 이탈 위험군이라는 것은, 그 소진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신호다.

 

태권도 거버넌스가 이 신호를 어떻게 읽느냐가, 앞으로의 분기점이다. 심판 처우를 개선하고, 징계 절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조직 문화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 이것은 심판들을 위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태권도 경기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자부심으로 버텨온 사람들이 한계에 왔다. 다음은 구조의 차례다.

 

 

KTA에 묻는다

 

본지 공식 질의서는 심판 활동 지속 환경과 관련해 다음을 질의했다. ▲현재 심판 이탈 현황 및 협회 차원의 실태 파악 여부 ▲심판 활동 지속을 위한 제도적 지원 계획 ▲신규 심판 육성 현황 및 경력 심판 이탈 보전 방안 ▲심판 처우 개선 로드맵의 존재 여부.

 

대한태권도협회는 기한 내 어떠한 답변도 제출하지 않았다. 답변 거부 의사 표명도 없었다. 본지는 이 사실을 기록한다.

 

협회가 이탈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지조차 지금은 확인되지 않는다. 파악하고 있다면 어떤 대책이 있는지, 파악하지 않고 있다면 왜 파악하지 않는지. 둘 다 답이다.

 

다음 회차 — 5부 예고

 

5부는 현장 심층 증언 특집이다. 연락 동의 심판 24명 중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1부부터 4부의 수치 뒤에 있는 구체적 사건과 경험을 르포 형식으로 기록한다. KTA의 공식 답변이 도착했다면 그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이 부에 통합된다.

 

1부부터 4부까지 수치가 말했다. 5부는 최종회로 사람이 말한다. 제목은 '이름 없이, 처음으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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