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A 심판 처우·운영 실태 기획 5부·최종회] 이름 없이, 처음으로현장 심판들의 직접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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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A 심판 처우·운영 실태를 주제로, 익명 설문 결과와 심판들의 증언, 대한태권도협회 질의서 경과를 인포그래픽 형식으로 정리한 이미지. © 한국무예신문 |
1부부터 4부까지, 수치가 말했다
처우의 3중 결핍이 있었다. 일비 96.3% 부족, 집합일 87.0% 미인정, 초과 수당 92.6% 기준 부재. 절차의 공백이 있었다. 소명권 83.3% 형식적·미보장, 오심 2회 기준 79.6% 과도 인식, 불이익 81.5% 경험·목격·전언. 조직 문화의 압박이 있었다. 의견 표명 어려움 83.3%, 관계 압박 75.9%, 친분 위촉 64.8%, 고립·배제 75.9%. 그리고 이탈 위험군 77.8%.
이것들은 54명이 익명 설문에 남긴 수치다. 그 수치 뒤에 사람이 있다.
본지는 설문 참여자 중 연락처를 자발적으로 남긴 24명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했다. 이 중 심층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증언을 이 지면에 기록한다. 모든 응답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참여했다. 종목·경력 연수·성별은 신원 특정이 불가능한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표기한다. 증언의 내용은 인터뷰 원문에 기반하며 편집은 의미 변형 없이 분량에 한해서만 이루어졌다.
첫 번째 목소리 — "일한 날이 없는 날로 처리됐습니다"
품새 심판, 경력 9년.
"지방 대회는 전날 이동해야 합니다. 오전에 출발해서 오후 늦은 시간에 도착하면 곧바로 집합이에요. 집합해서 교육받고, 인원 파악, 전달사항과 숙소배정 확인, 그리고 내일 일정 숙지하고. 두 시간 넘게 걸립니다. 그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없어요. 수당도, 공식 기록도. 없는 시간입니다.
저는 직장인입니다. 전날 이동하려면 연차를 씁니다. 그 연차가 어디서 나오는지 아무도 묻지 않아요. 연차가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요? 조정하거나 무급이죠. 그 비용은 제가 냅니다.
처음에는 당연한 줄 알았어요.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런데 몇 년 하다 보니 이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연하게 만들어진 것이지, 원래 당연한 건 아니에요."
두 번째 목소리 — "10시간 하고 나면 판정이 달라집니다. 그걸 우리가 제일 잘 알아요"
겨루기 심판, 경력 12년.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에 끝난 대회가 있었습니다. 중간에 점심 30분. 그게 전부예요.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집중력이 달라져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옆에 있는 심판들 다 그렇습니다. 눈이 피로해지고, 판단이 늦어지고,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아요. 그 상태에서 판정을 계속합니다.
선수들은 모릅니다. 자기 경기가 오전 경기인지 오후 경기인지에 따라, 그날 심판 컨디션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그게 공정한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불편합니다."
세 번째 목소리 — "뭘 틀렸는지 모른 채 교체됐습니다"
품새 심판, 경력 7년.
"소청으로 인용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어느 판정인지 몰랐어요. 물어봤더니 '확인해 보겠다'고 했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확인 결과를 들은 적이 없어요.
그 다음에 또 오심으로 판정되었을 때 교체됐습니다. 이유 설명은 없었어요. 소명할 기회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절차가 있다'고 했는데, 그 절차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제가 잘못 판정한 건지, 판단 차이가 있었던 건지, 지금도 모릅니다. 모르니까 개선을 할 수가 없어요. 같은 상황이 오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도 있습니다."
네 번째 목소리 — "이의를 제기한 뒤 달라진 것들"
품새 심판, 경력 14년.
"한 번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운영 방식에 대한 것이었어요. 공식 채널은 없었고, 담당자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그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어요. '검토해 보겠다'고 했고요.
그 다음 대회부터 위촉이 달라졌습니다. 코트가 바뀌고, 경기 비중이 줄었어요.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몇 번이 더 그랬습니다. 우연이 반복되면 패턴이 되잖아요.
그 뒤로 저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을 안 하면 적어도 지금 수준은 유지됩니다. 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됐으니까요. 그게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렇게 합니다."
다섯 번째 목소리 — "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다릅니다"
품새 심판, 경력 6년.
"위촉을 보면 보여요. 비슷한 경력인데 어떤 사람은 큰 대회에 계속 나오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비중이 작은 대회만 맡아요. 처음엔 실력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래 보다 보면 기준이 실력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와 가까운지, 어느 라인인지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확인할 방법은 없어요. 위촉 기준이 공개되지 않으니까.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저도 모릅니다. 그냥 보이는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게 보이기 시작하면 이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집니다."
여섯 번째 목소리 — "자부심은 아직 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듭니다"
복수 활동 심판(품새·겨루기), 경력 11년.
"심판석에 앉을 때마다 느끼는 게 있어요. 이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 선수들이 믿고 있다는 것. 그 무게를 느낄 때마다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면 다른 생각이 옵니다. 3박4일 다녀왔는데 손에 쥔 돈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 연차를 쓰고 교통비를 보태면 실질적으로 마이너스가 나는 날도 있어요.
자부심 때문에 합니다. 그게 솔직한 말이에요. 돈 때문은 아니에요. 그런데 자부심도 계속 이렇게 되면 버텨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한계가 어딘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여기 있지만."
일곱 번째 목소리 — "떠난 사람들의 말을 대신 전합니다"
품새 심판, 경력 16년.
"제 주변에 떠난 사람들이 있어요. 10년 넘게 같이 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왜 떠났는지, 본인들한테 직접 들었습니다.
처우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절차가 납득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조직 분위기에 지쳤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이유만인 사람은 없었어요. 다 쌓인 거예요. 쌓이다가 어느 순간 넘어간 거고요.
그 사람들이 이 설문에 있었으면 다른 수치가 나왔을 거예요. 이미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 54명 안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수치는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떠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어떤 숫자가 나올지, 저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KTA의 답변
한국무예신문은 이번 기획 1부와 함께 2026년 5월 9일 사단법인 대한태권도협회에 공식 질의서를 발송했다. 질의서는 총 7개 항목, 17개 세부 질의로 구성됐으며, 답변 기한은 2026년 5월 16일(금) 오후 6시였다.
기한이 경과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기한 내 어떠한 답변도 제출하지 않았다. 답변 거부 의사 표명도 없었다. 본지는 이 사실을 기록한다.
협회가 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96.3%가 일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83.3%가 소명 기회가 형식적이라고 했다. 77.8%가 이탈 위험군에 속한다. 이 수치들은 협회의 답변과 관계없이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협회의 침묵이 더 길어질수록, 더 빠르게 악화된다.
본지는 이후에도 관련 취재를 계속한다. 협회의 답변이 도착하는 시점에 해당 내용을 별도 보도한다.
시리즈를 마치며 — 한국무예신문의 입장
이 기획은 다섯 회차에 걸쳐 한 가지 질문을 추적했다. 태권도 심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가.
답은 수치로 나왔고, 구조로 드러났으며, 사람의 언어로 확인됐다. 처우가 무너져 있고, 절차에 정당성이 없으며, 조직 문화가 침묵을 강제한다. 그 안에서 자부심으로 버텨온 사람들이 한계 앞에 서 있다.
이것은 대한태권도협회를 향한 공격이 아니다. 태권도가 스스로를 점검하게 하기 위해 현장의 실상을 기록한 것이다. 탐사 저널리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고, 드러난 것을 공론장에 올리고, 공론장이 변화의 압력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
54명이 익명을 조건으로 이 설문에 응했다. 24명이 추가로 연락처를 남겼고, 그 중 일부가 더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이 익명으로 한 말들이 이 다섯 회차의 원천이다.
그 말들이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기록이 먼저다.
한국무예신문은 이번 기획 이후에도 대한태권도협회의 심판 처우 관련 동향을 계속 추적한다.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보도하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묻는다.
침묵이 지속되는 한, 취재도 지속된다.
[편집자 주]
이 기획에 참여해 준 모든 심판에게 감사한다. 익명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현장의 실상을 기록에 남겨준 것은, 개인의 용기이자 이 조직을 아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이 허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 한국무예신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