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전동차 안에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 캠페인’이란 글귀 아래 #70798150을 누르면 2000원이 후원된다고 한다. 허름해 보이는 초로의 유공자 후손의 지친 듯 피곤한 모습 사진을 배경에 깔았다. 전형적인 동정심 유발 코스프레처럼 보인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이면 매스컴 여기저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사가 독립투사들 후손들의 가난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수없이 보았던 터라 새삼 관심을 끌 소제도 아니건만 그래도 해마다 빠지지 않고 또 나온다. 그리고 시민들도 ‘그래 독립운동에 재산 다 바치고 자식들 돌보지 못했으니 가난할 수밖에….’라며 그들의 가난함을 당연시 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왜? 언제까지? 독립투사들의 후손은 가난해야 하는가? 그들은 부자로 살면 안 되는가? 부자로 살 순 없는가? 모든 아니 대부분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가난한가? 그 가난이 반드시 훌륭한 조상을 둔 때문인가? 독립운동에 재산 다 바친 유공자들의 후손 중엔 잘 사는 사람이 없는가? 독립운동에 재산 바치지 않았더라면 그 후손들이 현재 모두 잘 살고 있을까? 당시 독립유공자들과 그들 후손들만 가난했던가? 그보다 더 가난한 보통사람들도 수없이 많지 않았던가? 독립운동하지 않은 부자들의 후손들은 지금 모두 부자로 잘 살고 있는가? 매국노와 친일파 후손들이라고 다 부자로 살던가? 그 후손들만큼 못 배운 사람들 중에서 재벌도 나오지 않았던가?
아무려나 독립운동을 해서 가난하고 박해를 받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 남들보다 여러 면에서 불리하고 뒤떨어져 가난의 한 요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한단 말인가? 후손들이 가난하면 할수록 조상의 공적이 더욱 빛난다던가? 그리고 그 가난을 굳이 독립운동을 한 조상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되레 독립운동 했던 조상의 투쟁정신을 이어받아 악조건을 극복하고 더 굳세게 일해서 조국 번영에 이바지하고 잘 살아야 하지 않은가? 그런 게 진정한 독립정신이 아니겠는가?
▲ 포스터를 이렇게 너절하고 구차스럽게 만들었어야 했을까? [서울 지하철 전동차 안 광고판] ©한국무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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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 그 후손들의 잘 살고 못 살고를 인과관계로 묶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그들이 가난하게 사는 건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자자손손 가난을 지원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이미 보훈처에서는 독립운동 유공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갖가지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 제도를 더 강화시키든지, 그도 아니면 청년실업수당 챙겨 줄 생각만 하지 말고 가난한 유공자 후손들에게도 지원하는 것이 어떨지? 최저임금은 아무리 올려도 최저임금일 뿐이듯 어떤 지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최소한일 뿐이다. 나머지는 본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양심에서 우러나 남을 도우더라도 제발 생색내지 말고 구차스럽지 않은 모양새로 그분들의 자존감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품격 떨어지는 지원 캠페인
아무려나 지하철 광고판에 인물사진을 등장시켜 시민들의 동정심을 유도해가면서까지 모금을 해야 했을까? 그런 운동을 꾸미고서 가난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도운 공적만으로도 독립운동을 한 양 뿌듯한가? 더 없이 애국적인 일을 해서 스스로 기특한가? 이런 치적 쌓기 캠페인으로 다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너도나도 독립투쟁에 나설 것이라 믿는가? 그리고 그들도 다시 자자손손 가난을 물려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리라 생각하는가? 혹여 저런 광고가 독립투사들을 욕보이고, 독립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이런 얘기만 나오면 항상 내세우는 주장이 있다. 후손들이 가난하게 사는 걸 보고 어느 누가 다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서 투쟁을 하겠는가라는 논리다. 일견 타당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차원 낮은 억지다. 그건 독립투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누가 강요해서 독립투쟁 했던가? 그따위 시시한 일이 걱정되면 독립투쟁 안 하면 그만이다. 아무려나 그분들이 가난을 부끄러워했더라면 독립운동하지 않았을까? 이런 광고가 ‘독립운동을 하면 후손들이 자자손손 이렇게 가난을 면치 못 한다’는 사실 아닌 사실을 선전해대고 있다고는 생각 못해봤는가? 왜 독립투쟁과 그 후손들의 가난을 필연으로 묶어 시민들을 겁준단 말인가?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의병활동이나 독립투쟁 하다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간 조상을 둔 후손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투쟁하다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후손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스러져간 수많은 무명용사들.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은 대부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비록 가난해도 그런 동정이나 지원을 받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유공자 후손들도 적지 않다. 독립투쟁에 대한 태도적 가치와 자선의 태도와 품격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일이다. 역사란 거칠다. 전혀 다정다감하게 인간적이질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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