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   이경명   김정록   김혁출   고성규   김용철   이호철   이지성   이송학   이창후   고영정   기고   역사산책   무협소설   무예이야기   축사
편집 2024.05.14 [10:05]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섹션이미지
신성대
이경명
김정록
김혁출
고성규
김용철
이호철
이지성
이송학
이창후
고영정
기고
역사산책
무협소설
무예이야기
축사
공지사항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개인보호정책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칼럼 > 이경명회고록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네이버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⑤ 한 솥 밥 우정 서윤남 사범
 
편집부 기사입력  2011/12/10 [00:44]
광고
1967년 서윤남과 나는 독일 뮌헨 비드마이어 무도학교(일명 오도관)를 운영하는 C. 비드마이어로부터 초청장을 받게 되었다. 대한태권도협회 추천을 거쳐 여권이 나왔으나 나는 서 사범보다는 1개월정도 늦게 가게 됐다.
 
 내가 뮌헨에 도착 후 거처는 비드마이어가 제공한 도장 건물에 있는 방에서 서윤남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그는 나보다 먼저 1개월 앞서 도착, 지도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한 방에서 동고동락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숙(同宿)생활이란 편리보다는 서로에게 불편한 점이 많았을 것으로 이해된다. 서 사범은 무척 부지런하고 잠이 적은 편이다. 그에 비해 나는 잠이 엄청 많은 편이고 매사를 서둘지 않는 편이다.

 잠이 적고 부지런하다보니 서 사범은 일찍이 일어나 새벽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직도 나는 잠의 세계에 빠져있으니 그로서는 깨울 수도 없고 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거기다가 식사도 손수 만들어 먹어야 하니 식성 등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침밥을 지어놓고 나를 깨울 때가 많았다. 그는 인내심이 강했다. 난들 미안하지 않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와 나는 비드마이어 무도학교에서 계약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 도독(途獨)하게 된 동기가 친구인 권재화 사범의 도움이고 보니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에는 친구로서 마땅히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정이고 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와 같은 경우가 닥친 것이다.
 
권 사범은 부지런하기는 이미 소문나 있었고 한시도 한자리에 차분히 머물지 못하고 누구엔가 전화를 걸어 다음 약속을 하며 분주한 생활을 하는 성미라는 것을 내가 한국에서 겪어서 잘 알고 있었다.
 
권 사범은 67년 4월에 비드마이어의 초청으로 뮌헨에 진출했다. 1년 반 정도 비드마이어 무도학교에서 지도하다 해약하고 자기로부터 태권도를 배운 레오 영감과 함께 같은 지역에 '권재화 태권도 도장‘을 차리게 됐다. 물론 도장의 주인은 레오 영감이다. 레오는 뮌헨 중앙역 앞 주점가(街)에서 바(Bar)를 운영하고 있었다. 권재화의 생각은 우리가 독일을 떠나주면 자기의 도장이 잘 될 것이라는 욕심이 발동했던 것 같았다. 이 문제로 해서 그는 먼저 나에게 협조해줄 것을 제의했고 나는 순순히 받아들여 귀국한 것이다.
 
▲ 자료사진. 좌로부터 필자 이경명, 솜머 박사 그리고 서윤남     ©한국무예신문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다음 차례로 서윤남에게도 똑같은 협조를 요청했다. 서 사범도 나와 같이 독일을 떠나는 모험을 강행했던 것이다. 서윤남으로서는 기맥힐 일이었다. 해외취업이라는 꿈도 사라지고 도대체 귀국이라는 말이 자존심을 송두리째 뺐어가는 행위였다.

 서 사범은 숙고 끝에 제자인 닥터 솜머에게 사정을 말하고 어디 태권도를 지도할 수 있을까 협의했었다. 솜머 박사는 우리보다 연상이었고 치과 군의관으로서 육군대령이었다. 그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 동상으로 상처를 입은 발이 호전되고 하니 열심히 운동을 하였다. 담당 의사도 좋은 운동이니 태권도를 계속하라고 권장했다. 물론 그의 부인도 열심히 운동했다.

 솜머 박사는 서윤남 사범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자기가 바로 군대에 지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나 비드마이어와 권재화 간의 법정분쟁이 예상됨으로 일단 귀국하고 다시 뮌헨으로 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었다. 그 제의에 서 사범은 동의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 7개월 만에 다시 뮌헨으로 기게 돼 그 후 지금까지 뮌헨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태권도가 천직으로 그의 삶의 전부다.

 나는 진정한 우정이란 어려울 때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타산적이지 않고 도움을 주는 것이 법도라는 것이 철학적 신념이었다. 나는 물론 서 사범도 우정의 믿음을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제 내 나이가 그렇고 태권도로 일관되게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자전적 회고록을 집필하고자 하니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기가 그리 만만찮다. 서 사범에게 메일로 당시의 생활상을 부탁하곤 한다. 그는 더 열성적으로 어떤 때는 전화로 알려주는 정성을 내게 쏟는다. 한 솥 밥을 먹으면서 고생을 같이 나눴던 당시가 이제는 까마득한 옛일이지만 진정 해외 태권도가 어떻게 사범들에 의해 오늘의 위상을 굳건히 다져지게 되었는가는 사범들의 생생한 기록에 의해 역사로 되살아나야 하는 것이다.

서 사범과 나는 언젠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들의 고생이 결코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 연구를 해야 하고, 그 결과물을 몇 권의 책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했었다. 서 사범은 그간 5권의 건강서를 펴냈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양생법과 동양사상의 상관성 등 건강에 관련된 내용을 담았다.
 
그의 첫 번 째 책 ‘대나무를 굽히다「Den Bambus biegen」’는 독일의 권위 있는 일간지인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발행하는 ‘쥐트도이체 차이퉁 마가진’에 1997년부터 98년도까지 2년간 건강과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23회 연재했던 내용을 담았으며, 독일 최대 출판그룹인 베르텔스만에서 제목을 바꾸어 펴낸 후 8천권을 자사에서 매입, 회사 고객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준 일화를 지닌 인기 도서였다. 5권의 저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 순서는 이러하다. ‘대나무를 굽히다’ ‘웃으면서 산에 오르다’ ‘웃음은 심장을 열게 한다’ ‘백년의 삶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 사범의 인생기쁨' 등.
 
원서(독어판)의 제목은 이러하다.「Den Bambus biegen」(1999),  「Lachend den Berg besteigen」(2004), 「Ein Laecheln oeffnet das Herz」(2006), 「Hundert Jahre? Kein Problem!」(2008), 「Meister Seos Buch der Lebensfreude」(2011)  등.

서윤남의 식을 줄 모르는 태권도에 대한 열정이 경험과 지혜로 버무려 꽃피운 소중한 결과물에 나는 우리들의 지난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네이버
기사입력: 2011/12/10 [00:4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⑩ 한류의 원조 태권도 편집부 2012/01/15/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⑨아테네 세계대회에서의 오욕 편집부 2012/01/08/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⑧ 이금홍 사람을 내려 보내다 편집부 2012/01/02/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⑦ 공산국가 폴란드에 태권도를 편집부 2011/12/23/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⑥ 오스트리아 태권도 뿌리 편집부 2011/12/17/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⑤ 한 솥 밥 우정 서윤남 사범 편집부 2011/12/10/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④ 친구를 위해 돌연 귀국 편집부 2011/11/30/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③ 독일 체류 중 기억에 남는 태권도 시범 편집부 2011/11/21/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② 서독 뮌헨 진출 편집부 2011/11/14/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나의 삶을 바꾸다』① 동아대 일본원정 편집부 2011/11/07/
[이경명회고록] 태권도 산증인 이경명 회고록 연재 서민성 기자 2011/11/0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최근 인기기사
광고
광고
광고
  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개인보호정책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