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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정신이란 무엇인가?
강국의 조건, 미국의 무혼(武魂)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2/02/20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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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하고, 총으로 일어선 자 총으로 망한다? 천만의 말씀. 힘없는 나라 비겁한 선비가 자기 위안으로 하는 헛소리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지금 저물고 있는 중인가? 언젠가 미국인들이 더 이상 총기를 소지하지 않게 될 때, 문무(文武)의 균형이 깨어질 때, 지금의 영국이나 일본처럼 미국도 쇠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물론 그렇다한들 무(武)를 숭상하지 않는 다른 어떤 나라가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武)를 지녔던 민족, 무(武)를 잃지 않은 나라는 반드시 다시 부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이 그렇듯.
 
총의 나라, 미국의 탄생
 
▲ 자료이미지. 청교도인들과 메이플라워호.(이미지출처:Daum)     © 한국무예신문
교회를 가톨릭의 모든 부패로부터 정화하고자 했던 성공회 교회의 이단자들, 즉 일단의 영국 청교도 무리들은 왕정의 위협을 피해 1620년 9월 16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새로운 예루살렘인 아메리카 신천지를 향해 떠난다. 이들 1백31명은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케이프코트(지금의 매사추세츠 지역)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신천지에 발을 내딛기 전 정치적 단결을 위해 하나의 문서를 만들었다. 바로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이 서약을 통해서 그들은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하고, 이후 만들게 되는 정치적 기구의 법을 준수할 것을 맹세하였다. 미국정신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서부를 개척해 나가면서 프런티어 정신을 만들어 냈다.
 
프런티어(미국 서부의 국경)란 역사적인 개념으로 비약되어 개인주의, 진취적인 기상, 평등, 사회적 혼합, 개척자의 삶을 통한 새로운 인간의 창조와 같은 미국의 정치적 정신적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좀 더 쉽게 말해, 프런티어 정신은 서부 개척 정신이며, 총을 앞세운 정복 정신이자 융합과 팽창의 정신이다. 또한 단순하고도 실용주의적인 보통사람들의 철학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정치인들의 공적, 그리고 사적인 도덕성을 매우 중시한다. 무분별한 사적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신임을 잃은 후보자나 고위공직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1965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반문화와 사회적 반항의 물결에 대항하여, 미국 남부 지역의 여러 목사들은 ‘침묵하는 다수’인 백인 그리스도교도를 우파 공화당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으로 규합하게 된다. 이렇게 생겨난 보수적 종교 세력은 낙태, 공공 도덕, 학교에서의 기도 등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이 도덕성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순례자들로부터 내려오는 청교도적 전통이다.

서부 정신과 아메리칸 드림
 
광활한 서부 개척에 나선 이들은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기 집단이 정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스스로의 판단과 총을 앞세워 서부로, 서부로 험난한 정복의 길을 나섰던 것이다. 서부의 자원은 무궁무진했다. 그렇지만 그 자원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진정한 재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피와 땀이 필요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개인주의적이고 창의적인 미국인의 전형이 만들어졌다.
 
용기와 끈기, 열정과 투지, 적응력과 기술에 대한 믿음, 노동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적 미덕, 자비와 이윤 추구가 그것들이다. 이러한 바탕에는 청교도의 윤리(절약, 검소, 신의, 선택)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프런티어를 발견해 내고, 그것을 정복함으로써 발전해 나가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곧 ‘뉴프런티어 정신’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신대륙에 건너온 이주민들이 정착하여 살아가면서 늘 지니고 있는 적극적인 삶의 원칙이다. 미국은 기아를 피해 온 사람이건 어려운 생존 조건을 벗어나고자 온 사람이건 간에 그곳에 온 모든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약속했고, 지금도 그것을 약속하고 있는 땅이다. 일단 뉴욕 앞바다에 있는 엘리스 섬(이민 사무국이 있다)에 도착하면, 모든 이민자들은 열린사회에서 맨주먹으로 성공하여 중산층에 이른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종교적, 정치적 자유의 약속이기도 하다.
 
미국적 덕목의 완성
 
19세기말에 이르러 이제 더 이상 개척할 서부가 없게 되었을 때, 미국은 산업 국가가 되었다. 석유의 록펠러, 철강의 앤드루 카네기, 철도의 조지 폴먼 등, 이들 사업가들은 무자비하고 거침없이 경쟁 규칙을 어겨 가면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다. 이 부자들은 노동력의 착취와 부패에도 불구하고 거의 조작된 그들의 자서전 등에 의하여 뉴프런티어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들이 만든 신화는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와 미국의 윌리엄 섬너가 다윈의 ‘종의 기원’을 모방해서 만든 ‘사회적 다윈주의’ 이론을 통해 정당화된다. 그것은 한 사회에서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최강자의 법이라는 이론이다. 일종의 자연의 법칙처럼 제시되는 이 이론은 부자들에게 그가 가진 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점점 확대되는 빈곤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성공한 사람은 그럴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강자에 승복하듯 부자를 존경하게 만든 것이다. 더불어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도 강요하고 있다.
 
미국식 모델을 따르는 한국에서의 자본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논리적 근거(혹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때 금융실명제를 통해 부자들의 정당성을 인정해주었지만, 부자들 스스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해서 한국의 부자는 아직도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기업)의 형식만 받아들였지 그 정신(윤리, 철학)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실 오늘날의 기업가 정신은 곧 무(武)의 정신과 상통한다. 무덕(武德)은 더 이상 무인(武人)들만의 도덕규범이 아니라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영광의 시대, 아이콘 ‘람보’
 
▲ 개척시대는 법이 골고루 영향을 미치지 못해 총(힘)이 곧 법이었다.(본문중) 사진은 서부영화의 한 장면.
흔히 서부정신을 카우보이 정신, 혹은 총잡이 정신이라고 한다. 개척시대는 법이 골고루 영향을 미치지 못해 총(힘)이 곧 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총의 정신을 숭상한다. 총기 소지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총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교사와 다른 아이들을 난사하는 끔찍한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총기 소지를 제한하자는 여론이 들끓기도 하지만 그뿐, 결코 총기 소지를 금하지는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도검류, 총기류 단속을 하는 문치(文治)의 나라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래 미국이란 나라가 무법천지인데다 사람들이 난폭해서 자위 수단으로 총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이라거나, 역대 대통령들이 총기제조업자들로부터 후원을 많이 받아서 고의적으로 묵인하고 있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짐작은 미국을 모르고서 하는 소리이다. 미국은 헌법을 함부로 바꾸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인에게서 총을 빼앗는 일은 미국 정신을 빼앗는 일이다. 한민족에게서 활을 뺏고 일본인들에게서 칼을 뺏는 것보다 더 난감한 일이다.
 
총은 곧 서부정신(프런티어 정신)의 상징이자 그들의 길지 않은 역사이며 문화다. 물론 그 뿌리는 신사도, 즉 유럽의 기사도에 있다. 힘과 정의와 개척정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엔 힘이 넘치고, 정의와 모험, 희생이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된 것이다. ‘람보’는 미국으로 건너온 ‘로빈 훗’ ‘달따냥’ ‘쾌걸 조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총 없는 ‘람보’는 ‘람보’가 아니다. 진정한 미국의 힘은 총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미국적 모델 추구와 반미 정서
 
개인이든 국가든 패권을 쥐게 되면 사람들더러 그 자신을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인지상정. 실제로 미국에서는 민주주의가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되고 있으며, 각자의 가슴에 창의력과 역동성, 때로는 숭고하기까지 한 위대함이 발견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을 단순히 천민들의 기분 전환, 카우보이의 원초적인 오락쯤으로 깎아내린다면, 그건 느긋한 심정으로 우리 자신의 탁월성에 대해 안심하기 위함이다. 그런 광휘를 깎아내리고, 투쟁과 폭력과 어리석음의 낙인을 찍어 저들의 문명을 우스꽝스런 무엇으로 만들어 버린다한들 우리로선 덕 볼 게 하나도 없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보편주의는 정복적인 제국주의처럼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정치적, 경제적 규칙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 지금의 미국이 지니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는, 제국주의 체계가 아니라 실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제어되지 않는 성장 시스템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국이,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발전하고 영광을 누리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점점 미국 내부의 성장 때문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과 다문화주의가 그 모태인 외부의 재능, 두뇌, 자본을 끌어들이는 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 세계의 유일한 강대국이다. 다만 오늘의 미국이 힘을 지나치게 숭상하다 보니 예(禮)를 소홀히 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빈축을 사는 일이 잦다.
 
심지어 실컷 도와주고도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오히려 배척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든 가능하다’는 약속을 기초로 한 야심은, 실지로 미국이 더없이 혐오스런 무엇임과 동시에 크나큰 유혹으로 다가오게 한다. 미국은 우리 모두의 신경을 거스르는 동시에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해서 입으로는 반미를 외치면서도 자기 자식들은 어떻게 해서든 미국으로 보내는 게다.
 
아무렴 이성은 우리더러 반미, 반중, 반일이 되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명심하자. 힘을 저지하려면 스스로 힘을 갖추어야 한다. 그 힘이 상대의 힘에서 영감을 받고 공동의 가치에 기반을 둔다면 상대와 균형을 이룰 것이다. 일본과 경쟁하려고 일본을 닮아왔듯 미국과 경쟁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미국을 닮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사를 주도하는 민족은 정해져 있다
 
중국의 무협(武俠), 서양의 기사도(騎士道), 일본의 무사도(武士道), 미국의 서부정신. 진취적 민족성은 오직 무(武)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바른 역사, 바른 정신, 그것이 이 첨단 시대에 무예의 존재 의미일 것이다. 또한 필자가 무예적 글쓰기에 천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날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민족의 누천년 패배주의 굴레를 극복하고 세계로 뻗어나가지 않았던가.
 
피가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피 중에도 더 진하고 더 뜨거운 피가 있다. 아직도 미국이 전 세계의 분쟁마다 개입해 젊은 피를 바치는 것이 반드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가? 때때로 피를 흘리는 것이 국가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 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헌혈이 그렇듯.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이 망하고 없어졌나? 히데요시 때문에 왜(倭)가 망했나? 박정희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했나? 세상에 독재자 아닌 영웅이 있었더냐? 영웅이라 불리든 독재자라 불리든 그들이 그 민족의 혈관에 불어넣은 무혼(武魂), 그건 피라미드나 만리장성보다 더 위대한 무형의 자산이다.
 
“NO!”라고 하고 싶은 한국?
 
▲  손을 맞잡고 웃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과 미국의 오바마지만 그들의 속내는 알 수 없다. 
중국의 신경을 거스를까봐 제주도를 평화의 상징 운운하며 해군기지 건설을 가로막고, 독소조항을 이유로 야당에서는 한미FTA를 파기하겠다고 공약을 했다. 허나 이 또한 어리석은 일. 과연 야당의 주장처럼 그 조항의 피해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때 가서 개정을 하든 파기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쉘위댄스!”에 응했으면 발을 밟기도 하고 밟히기도 할 것은 각오한 일. 그게 무서우면 처음부터 “NO!”하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남들 즐기는 춤이나 구경하는 걸로 만족했어야 했다. 지금의 일본처럼 말이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폐기 운운 하는 것은 국가의 신의와 품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20년 전, 욱일승천하던 일본은 동경을 팔면 미국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는 말까지 해댔었다. 서점에선 지금의 도쿄도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전 소니 회장인 모리타 아키오가 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더 이상 미국이 눈에 뵈지 않았던 게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잃어버린 20년. 현재의 한국이 그때 일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젠 우리도 미국에 대해 “NO!”라고 외쳐보고 싶은 건가? 미국이 아니라도 중국이 바로 옆에 있다? 게다가 머잖아 러시아의 푸틴이 재등장하게 되면 세계의 힘은 삼각체제를 형성할 것이니 누구도 한국을 어쩌지 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차세대 중국의 지도자로 낙점 받은 시진핑이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며 세계 정상의 무대에 데뷔했다. 전 세계가 두 지도자의 만남에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한국만큼은 관심이 높지 않을 것이다. 과연 중국은 미국에 대해 “NO!”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이에 놓인 한국의 선택은? 아서라, 이는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이쪽저쪽 눈치보고 무게 잴 일이 아니란 말이다. 신뢰의 문제이다. 제발이지 이젠 구한말적인 피해망상과 무조건적 적대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변 4강국은 물론 멀리 있는 그 어떤 나라와도 신의와 우호를 다져나가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고수(高手)는 천하의 어떤 고수와도 만합(万合)을 겨룰 수 있어야 하고, 천하의 어떤 하수(下手)를 상대로도 만합을 사양치 않아야 한다. 당당한 나라, 진정한 강국이라면 굳이 “NO!”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NO!”란 한 마디로 콤플렉스, 자격지심, 지난날의 굴욕이 한꺼번에 떨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풀이 한번 해보는 거다. 배 좀 불렀다고 막가자는 게다. 그렇지만 그건 저주의 굿판이다.
 
술이든 독이든 일단 건배를 했으면 마시고 볼 일이다. 그게 예의이고 신의를 지키는 일이다. 그런 게 무덕(武德)이고 무혼(武魂)이다. 구더기 무서우니 장 담그지 말자며 아예 독까지 깨어버리는 나라. 건배한 잔을 마시지도 않고 바닥에 내동댕이쳐 깨트려버리겠다는 나라. 눈에 보이는 것만이 미국의 힘인 줄 알았다간 크나큰 오산이다. 배신 혹은 불신, 그리고 비겁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미국도 언젠가는 저물 것이다. 그런다고 한국의 시대가 온다고 보장받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쩜 그보다 한국이 먼저 시들지도 모를 일이다. “NO!”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당당함만이 진정 NO를 넘어설 수 있다. 지금 미국은 동반자로서의 경쟁자인 중국에게 그걸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건배!”는 “YES!”가 아닌 “OK!”라는 것을.
 
문(文)이 머리면 무(武)는 심장이다. 문(文)이 입이면 무(武)는 발이다. 요즘 한국의 발들은 모두 밖에 나가 열심히 뛰고 있는데, 안에는 한없이 가벼운 입들만 남아 허구한 날 밥상머리에서 손가락 젓가락 숟가락 싸움을 벌이니 나라가 어지러운 게다. 문(文)이 타락하면 무(武)가 녹슨다. 나라는 총칼로 망하지 않는다. 반드시 입으로 망한다. 대한민국은 트위트질로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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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2/20 [01:05]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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