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할 때 지향하여야 할 또 하나의 가치는 독자성이다. 독자성이란 다른 것과 구별되어 그 자체로 특유한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무예로서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타 무예와는 구별되는 독자성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의 태권도나 일본의 유도는 뚜렷한 이론적·기술적 차별성과 독립성으로 올림픽 종목의 무도 스포츠로서의 독자성을 굳히게 되었다. 태껸 또한 최근에 들어서 한국의 전통무예로서의 가치를 앞세우고 실기적인 면에서도 발차기 위주인 다른 종목인 태권도와 차별화를 가져오고 있고 해동검도 또한 일본의 색깔이 짙은 기존의 검도수련방식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검술로써 무예로서의 독자성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유술과 미국의 레슬링의 기법을 혼합하여 그라운드 파이팅에서 실전적인 우수성을 지닌 차별화된 기술로써 현대의 명실상부한 하나의 무예로 탄생한 브라질유술은 가장 최근에 기술적인 독자성을 가지는 데 성공한 무예이다.
한국의 합기도가 일본의 아이기도와는 기술적으로나 사상이나 이론에 대한 차별화된 특성들을 밝혀 나가는 것이 독자성의 가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본 칼럼에서는 이론적인 부분의 언급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두 가지의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일본은 평화와 조화를 추구하는 아이기도의 무도철학을 전쟁의 침략적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 역사적 사실은 아이기도의 잘 정립된 무예 철학이 어두운 역사적인 사건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단기적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 둘째는 아직 기술적인 발전에 비해 체계적이고 독자적으로 잘 정립된 합기도 무술철학이나 사상 정립의 요원성 때문이다.
한국내에서도 해방 이후에 근대 무예의 이론적인 배경이 거의 부재했기에 초기의 합기도 지도자들은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일본 아이기도 문헌의 무단 도용, 무의미한 무도성 강조 등의 엉성한 합기도의 전통 고착화만 양산했다. 뒤늦게나마 이를 반성하고 한국의 합기도 이론 작업이 시작되고 진행 중이지만 아직 정립되기에는 요원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합기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이론적인 차별화에 의한 독자적인 가치 지향을 다루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논리적인 설득력이 없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뚜렷한 차별화를 가져온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독자적 가치지향적인 측면을 본 칼럼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전쟁의 기술을 목적으로 한 무기중심인 고대무예에서는 여러 무기를 다루면서 타격기나 유술은 무기술에 대해 보조적인 기술로 사용된 종합무예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어떠한 특정한 기술을 체계화시키는 보다는 실전적 기술 수련은 다양성보다는 치명적인 기법인 몇몇 살수(殺手)와 여럿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체력을 덜 소모하는 기술들의 연마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총과 화기의 사용을 거쳐 전쟁의 횟수도 줄어들고 특히 장기간 전쟁이 없는 평화 시대를 맞이하여 무기 위주의 전장무예는 맨몸을 쓰는 근대무예로 진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살상을 위한 실전무예의 필요성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근대무예들은 수련의 주목적이 개인의 심신 강화를 위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도장이라는 수련장소가 활성화되고 각각의 실기들이 이론화되는 체계성을 갖추어 가면서 다른 무예들과의 차별성을 가진 술기들을 형성되고 체계를 갖추기 위한 기술의 독자성의 가치와 비중이 커져갔다.
모든 무예는 공통된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타격기 위주의 태권도, 가라테, 무에타이, 쿵푸 등에는 주먹지르기나 손날치기 또는 앞차기와 앞돌려차기와 같은 공통된 권법들과 발차기 기술들이 있다. 유도, 씨름, 레슬링과 같은 무예는 밀어치기나 던지기와 같은 기본적인 공통 기술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합기도를 일본 유술에서 비롯된 아이기도의 기예에서 비롯된 일본무예라고 주장하는 근거중의 하나가 손목술기와 전환법, 그리고 기를 이용한 호흡법 등의 공통된 기술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다른 무예에서는 찾아 볼 수 있는 독특성을 가지는 기술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손목술기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1. 합기도의 아이기도의 공통된 손목술기 고대에 전쟁에서 생사를 위해 써진 무예들은 맨몸보다 다양한 무기술부터 시작되었고 총이나 화기류의 등장으로 무기에 관한 실용도가 줄어들고 무예 또한 전쟁용 보다는 맨몸을 이용한 개인의 호신을 위한 용도로 변해가면서 무기술의 원리와 활용이 몸을 이용한 맨몸 무예의 기술로 접목되어 오는 것이 무술사이다.
양진방 교수는 맨몸으로 하는 무예를 짧은 역사성으로 인해 근대무예로 규정하면서 무기의 사용기술들이 인간의 신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가라테, 유도, 합기도, 태권도와 같은 근대 무예에 인간의 몸의 움직임에 대한 많은 신체학적인 이론화 과정이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기도와 아이기도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손목에 관한 기술에 대한 이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진다. 합기도와 아이기도의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대동류합기유술은 검술의 대가였던 다케타 소우가꾸가 고대의 대동류유술에서 응용하여 만들어 낸 근대무예이다.
생사를 다투는 실전에서는 검을 쥐고 있는 상대방이 공격해오는 검이나 창을 맨손으로 방어할 때 손목을 제압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칼을 든 손목이 잡혔을 때 이를 방어하는 기술은 당연히 검술에 관련된 무예 수련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손목의 힘은 검술의 공격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검을 뽑거나 베는 검술에서 손목의 힘과 활용은 승패를 가름하는 기본적이고 필수인 것이기에 검술에서 응용되어져 나온 아이기도나 합기도의 손목기술의 중요성과 독특성은 당연한 것이다. 손목술에 대한 정확한 기술적 이해와 꾸준한 수련을 통한 손목의 전달력과 투철력, 신장력의 기본수련은 합기도나 아이기도의 올바른 수련을 위해 필수적이다.
칼로 베거나 찌르는 기술은 손목의 엄청난 힘을 요구하고 여러 가지 검술의 기법들 또한 손목의 힘의 조절에 달려 있다는 것은 검술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손목의 힘은 단지 검술의 공방에서 더 발전되어 손을 쓰는 모든 무예의 기술에 방어뿐만 아니라 손으로 타격을 할 때의 강도나 상대방을 잡을 경우에 악력(움켜잡는 힘)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요시마루 게이세츠의 저서 ‘아이기도의 과학’에서는 대동류합기유술의 이러한 손목에 관한 중요성을 손목의 투철력과 전달력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골프의 그립이나 야구의 배트의 스윙의 원리와 비교하면서 강한 힘을 통한 장거리의 타격력은 전신의 힘을 한 곳에 집중하는 능력으로서 손을 쓸 때 손목이 얼마나 잘 힘의 손으로 전달하고 힘을 표출시키는 투철시키는 기능에 달려 있다고 했다. 또한 철봉이나 안마 선수들의 체조경기 모습도 이러한 손목의 뛰어난 전달력과 투철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합기도나 아이기도에서 손목기술은 기본적인 수련 과정인데 손목을 잡혔을 때 빼는 연습에는 손목을 빼는 방향이나 위치에 따라, 위로, 중간으로 밑으로, 돌면서 빼기 등의 수련과 또한 바깥손목, 엇손목, 양손목을 잡혔을 때 상대방의 손목이나 관절을 꺾거나 내치는 기술들에서도 유사하다.
그런데 합기도가 아이기도보다 손목 관련 기술에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기도는 손목기술로써 주로 상대방이 가격을 하거나 손목 및 멱살을 잡혔을 때 손목관절이나 팔 관절을 제압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합기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어깨나, 머리, 허리, 앞뒤에서 잡혔을 때 손목의 관절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치기나 꺾기, 던지기 등을 혼합한 기술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손목을 잡혔을 때 아이기도는 상대방의 힘을 활용한 전환(회전)으로 상대방의 중심을 흐트러뜨리며 팔 관절을 제압하는 것이 주를 이루지만, 합기도는 더 나아가서 상대방의 중심을 흐트러뜨리고 나서 손이나 발로써 가격을 하거나 꺾고 나서 던지기나 밀치는 연결동작이 가능하다.
합기도와 아이기도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고대 검술에서 응용되어 나온 손목관련에 관한 기술에 대한 이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진다. 맨손무술로 근대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검술 공방에서 비롯된 손목을 잡혔을 때의 방어 및 공격에 대한 기술들이 응용되어 전래되었다. 이러한 손목술기는 타격기 위주의 무예들인 태권도, 가라테, 킥복싱뿐만 아니라 유술적인 무예들인 유도, 레슬링, 또는 씨름 등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기술로써 체계화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