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많은 인연을 맺지만 그 가운데 자기를 알아주는 벗을 얻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벗 가운데 으뜸은 음악으로 우정을 나눈 종자기(鍾子期)와 유백아(兪伯牙)에서 유래한 ‘지음(知音)’ 또는 ‘지기(知己)’라 부른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유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천하를 유람했다. 어느 날 태산이 떠올라 연주를 하는데 나무꾼 종자기가 다가와 “좋구나! 태산이 눈앞에 아른거리네!”라고 감탄했다. 이번에는 강물을 상상하며 연주를 하니 종자기가 무릎을 치며 “멋지다! 장강이 출렁거리는구나!”라고 감탄했다.
마침 비를 만나 동굴에 피했다. 유백아가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는 “장맛비가 구슬프구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종자기는 유백아의 거문고 연주를 정확히 이해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가 됐다. 이듬해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때가 되어 유백아가 종자기를 찾아갔지만 이미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유백아는 그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하고 다시 자기의 음악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거문고 현을 자른 후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지음 또는 지기는 벗을 넘어 스승과 같다. 수행자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고행을 자처한다. 본인도 모르는 자기를 알아주는 누군가는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 있겠는가? 자신을 알아주니 진정한 친구이다.
목숨을 나눌 정도의 사귐을 ‘문경지교(刎頸之交)’, 능력과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귐을 ‘관포지교(管鮑之交)’, 상하의 우정을 ‘수어지교(水魚之交)’, 나이와 무관한 사귐을 ‘망년지교(忘年之交)’라 한다.
두보(杜甫)와 이옹(李邕)은 32세의 차이를 떠나 진심으로 우정을 나누었다. 사귐(交)의 상대를 가리킬 때는 우(友)를 붙인다. 왜 붕(朋)이 아니고 우(友)일까? 붕은 동성(同姓)끼리의 관계이고, 우는 이성(異性)끼리의 관계이다. 동이(同異)는 성(性-Gender)이 아니라 속성이다.
동류의 상종(相從)은 자연적 순리지만 이류의 융화는 사회적 결합이다. 나는 동류에서 벗어나 이류를 찾는 것을 수행한다. 동류의 결합은 동(同)이지만, 이류의 결합은 화(和)이다. 대립적 존재들을 하나로 화합하는 것은 새로운 계통의 창조이다.
중당(中堂) 정범진 선생은 나의 ‘망년지우’이다. 감히 ‘우(友)’라고 부르는 까닭은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연세는 나보다 24살이나 많다.
선생님은 이옹에 못지않지만 나는 두보와 감히 비할 수 없는 수행자에 불과하다. 선생님은 수려한 외모와 고상한 인품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선비이지만, 나는 머리는 깎고 수염은 기른 기괴한 모습과 거친 품성을 지닌 야인에 불과하다.
선생님은 최고 전통을 자랑하는 성균관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하셨지만, 나는 한 번도 우두머리 노릇을 해 본 적이 없다. 선생님의 높은 학문적 경지야 세상이 다 알지만, 나는 넉넉한 친구에게 잡학이나 늘어놓는 학생에 불과하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직전제자를 아라한(阿羅漢), 간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제자를 보살(菩薩)이라 한다. 나는 일찍부터 보살의 자세로 선생님을 모셨다. 약 10년 전에 직접 만난 이후로 선생님은 누구를 만나거나 나를 ‘젊은 친구’라고 소개하셨다.
수려한 선비와 기괴한 행자의 어울림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내 친구들도 선생님의 친구가 됐다. 선생님의 친구이신 원로 국문학자 향천 김용직 선생도 자주 어울렸다. 묵개(默介)라는 호도 선생님께서 장개석과 닮았다며 붙여주셨다.
학계의 원로이신 두 분은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 미미한 나에게 질문을 하신다. 대학자들의 물음에 으쓱하며 대답하던 나는 제법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것이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 위해 물었던 것이다. 두 선생님의 은혜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