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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얼굴 공개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
범죄자의 인권 보호? 또 다른 문명의 위선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2/09/0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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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지구상의 수많은 동물들 중 오직 인간만이 동족을 죽인다. 오직 인간만이 강간한다. <동물의 왕국>에선 암컷이 허락하지 않으면 백수의 왕조차도 교미를 할 수가 없다. 암컷이 수컷을 고르지만 수컷은 암컷을 고를 자격을 갖지 못한다. 자연에 쾌락을 위한 섹스란 없다. 자연에 도덕이 없다. 따라서 자연의 섭리로 보면 문명화된 인간의 짝짓기와 섹스는 모두 변태라 할 수밖에 없다. 쾌락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도 기실 위선에 다름 아니다.
 
남자가 욕정이 솟을 때면 모든 여자들도 자기처럼 섹스를 좋아할 거라 착각한다. 여성이 섹스를 싫어하리란 생각을 도무지 못한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여자들은 싫어할까? 여성에게 그 오랜 자연의 본능이 내재되어 있음을 미처 깨닫지도 배우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도리어 넘쳐나는 광고와 음란물로 인해 여성들이 언제 어디서든 섹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줄로 착각토록 세뇌당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배우, 모델, 탤런트, 가수 등등 노골적인 성애 동작으로 잠시 눈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사방에서 “섹스하세요!” “섹스하고 싶어요!” “섹스해 주세요!” 하며 충동질하고 있다. ‘섹시’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된 지 오래. 섹시해야만 웰빙할 수 있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 아무렴 섹시하지 못한 자에겐 섹스할 기회도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 열등감에 갇혔던 야만이 폭발하면 연약한 여성이나 아동에게 재앙으로 닥치는 게다.
 
성(性)의 공해와 성범죄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점점 좁혀질수록 규제와 절제, 지켜야 할 도덕이 늘어나고 복잡해지고 있다. 하여 점점 친밀하기는커녕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만 더욱 늘어나면서 인간 개개인은 오히려 더없이 고독해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인간이다. 스트레스, 히스테리, 우울증, 변태, 온갖 증후군으로 인간 공해가 늘어만 간다. 도처에 성(性)의 공해가 걷잡을 수 없이 넘쳐나니 그로 인한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인면수심’ ‘천인공노’란 표현으론 성에 차지 않는 온갖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바람에 이 땅의 여성들이 이제 불안해서 못 살 지경이 됐다. 그때마다 사람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과연 법이란 것이 피해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반대로 가해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점이다. 피해자 본인은 물론 가정이 파탄나고 평생을 고통과 두려움 속에 숨어 지내는 동안, 가해자는 고작 재수 없음을 한탄하며 ‘국립호텔’에 누워 짜릿했던 기억으로 히죽거릴 생각을 하면 문명에 대한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인간 같지 않은 놈 먹여 살릴 세금이 차라리 피해자를 위해 왜 사용되지 못하는지? 일단 잡고 나면 법이란 이름으로 오히려 범죄자를 보호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흉악범의 얼굴까지 가려야 할 만큼 초상권이란 것이 그토록 대단한 것일까? 술집 벽에 붙어있는 공개수배자의 초상권은 어떡하고? 이 정도면 문명도 갈 데까지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조차 든다. 도덕? 법? 인권? 그것들 속에 숨은 인간의 위선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문명도 결국 병들고 때로는 변태가 되는가 보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확정 판결 이전의 무죄 추정의 원칙?
 
2009년 경기 남서부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범인이 확실하면 수사 단계부터 흉악범 얼굴 사진 공개 여부를 언론사의 재량에 맡겨 관행으로 자리잡아 가는 추세다. 이번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인 고종석의 사진을 모 신문사에서 공개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사진을 싣는 바람에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또 현장검증에서는 주민들이 범인의 얼굴을 보자며 가린 수건을 낚아채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 바람에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논란이 잠시 일었지만 그저 원론적인 말만 오가다 가라앉고 만다. 법의 정신도 맞는 것 같고, 또 시민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능히 이해가 가지만, 그래 본들 사건의 재발이나 예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단순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인상착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 흉악범 얼굴 공개 신중해야. (사진출처:강원일보)
흉악범의 얼굴 공개를 법적 상식과 시민의 정서만으로 얘기하다 흐지부지 넘어가는 이면에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언론이나 방송 매체에서는 답답해하고 궁금해 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맞춰주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어 범인의 얼굴을 공개한다지만, 기실 피해는 당사자가 아닌 엉뚱한 제삼자들이 당한다.
 
살다 보면 누군가와 닮았다는 것 때문에 본의 아니게, 때로는 알게 모르게, 직간접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당하는 일이 있다. 예로 남들은 모두 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라 해도 어떤 이에게는 진저리치게 싫은 경우가 있다. 과거 어떤 일로 좋지 않은 기억을 준 어떤 이의 모습이 그 연예인과 닮았기 때문이다. 또 예전에 원수졌던 친구와 닮은 사람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섬뜩한 경우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고.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는 순간, 그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주변인들의 선입견에 피해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강호순 같이 말짱한 얼굴을 한 사람이나 시꺼멓게 흉악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나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시민들의 ‘지레짐작’이라는 선입견에 의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로 이력서를 내거나 상담을 하는데 하필 그 사람이 싫어하는 누군가와 닮았거나 엊그제 잡힌 흉악범의 인상과 비슷하다면 말이다. 실제로 예전에 이 나라 최고 권력자를 닮아 불이익을 당했던 탤런트도 있었고, 도리어 유명해진 배우도 있었다.
 
흉악범의 이름 공개도 신중해야
 
필자의 자식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하나같이 ‘신라면’이란 별명으로 놀림을 당했다. 그때마다 하필 남(?)의 귀한 성(性)을 라면에다 붙여 온 동성 아이들이 놀림을 받게 하는지 원망스러웠었다. 아무렴 그렇게 함부로 상표로 가져다 써도 되는지? 그렇다고 그 회사로부터 그 라면 한 개 공짜로 얻어먹은 적 없다. 양심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장학금 후하게 내놓을 일이다.
 
고종석, 유영철, 강호순, 오종근, 정성현, 김수철, 조두순, 김길태, 오원춘, 신창원, 조세형 등등 유명 범죄인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전국에 얼마나 될까? 자신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이름을 가진 흉악범이 생길 때면 그 사람들 기분이 어떻겠는가?
 
물어보나마나, 막말로 기분 더럽게 나쁠 것이다. 아이들이라면 학교나 동네에서 곧바로 놀림감이 되고 만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개명하고 싶을 게다. 성씨는 물론, 범죄가 일어난 곳, 범죄자의 고향, 그가 다녔던 학교가 밝혀지면 언짢아할 사람 적지 않다. 오종근 사건 땐 한동안 그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해 주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흉악범이 나올 때마다 극형에 처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결말 없는 논쟁으로 헛힘 쓰지 말고, 이번 일을 기회로 흉악범의 얼굴과 이름 공개에 대한 법적, 인도적,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본의 아니게 피해나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얼굴이든 이름이든, 그 존재마저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게 흉악범 아니던가. 더하여 굳이 범죄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이름자 수도 늘려 중복되는 이름을 차츰 줄여나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름 짓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관련기사보기 <'도가니'는 끝나지 않는다.>
             http://www.ggdaily.kr/sub_read.html?uid=5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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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9/09 [23:19]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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