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나라 척계광(戚繼光)이 남긴 《기효신서(紀效新書)》는 고스란히 모원의(茅元儀)의 《무비지(武備志)》에 다른 병서들과 함께 실린다. 당연히 기예 6기(六技)와 왜구가 남긴 장도(長刀, 雙手刀)도 함께 옮겼다. 한데 여기에 새로이 검결(劍訣) 한 종이 도해(圖解)와 함께 실리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세법(朝鮮勢法)」이다. 당시 모원의는 중국 천하의 병서와 무예서를 다 수집했었는데 유독 검법(劍法)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중 우연히 호사자가 있어 조선에서 검결(劍訣)을 구해서 실었노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그 명칭도 「조선세법」이라 명기하였다.
명대에는 이미 양날의 검(劍)은 군중에서 사용치 않고 모두 도(刀)를 사용했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는 검결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당시 조선에서도 이미 검(劍)은 사라지고 대신 직도(直刀)와 요도(腰刀)를 애용하고 있었다. 모원의가 구한 그 검결 또한 조선에선 이미 실전되었던 고대 검법으로 《무비지》를 통해 되찾은 것이다. 하여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던 당시의 학자들도 그 점을 애통해 하며 다시는 잃어버리지 말 것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고대 검법의 바이블격인 『조선세법 24세』 「조선세법」은 과히 검경(劍經)이라 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완벽하고도 뛰어난 검법으로 이후 모든 중국 검법의 모태가 된다. 비록 24세(勢)라 했지만 다른 검법들과는 달리 각각의 세(勢)가 2-3개의 세로 연결된, 즉 한 초식(招式)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24세가 아니라 60여 개의 세이다. 하여 중국의 그 어떤 검법도 이 『조선세법24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이 60여 세법 중 10-15개를 가지고 각자 자기 검법(도법)총보를 만들어 제 나름의 새 이름을 붙인다.
가령 제1세가 거정세(擧鼎勢)인데, 이어서 평대세(平擡勢)-퇴보군란세(退步裙襴勢)로 짜여 있다. 3개의 세로써 완전한 1초식을 이룬 것이다. 글자로 치면 한 세는 단자(單字)가 되겠고, 한 초식은 2-3자가 모여져 만들어진 단어라 여기면 된다. 실제 기예를 겨룰 때에는 이 한 초식으로 한 합(合)을 주고받는다. 그러니까 거정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은 다음 평대로 목을 베고 연이어 군란으로 허리를 친다는 말이다. 한 번에 연속적으로 원-투-쓰리를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이후 조선에서도 이 「조선세법24세」를 「예도(銳刀)」라 이름 하였는데, 사도세자가 섭정할 때 완성한 《무예신보(武藝新譜)》에는 24세 원보만 실었으나 《무예도보통지》에서는 그 중 일부를 가지고 새 총보를 만들어 예도총보(銳刀總譜)라 하여 추가했다. 그리고 이를 [元]과 [增]으로 표시해놓았다. 그리고 원래가 검법이었으니 검으로 해도 되고 요도(腰刀)로도 행할 수 있다. 단 검(劍)과 도(刀)를 구별해서 사용할 줄 몰라 검을 도처럼 몸에 붙여가며 휘두르는 딱한 무예인들도 많다.
복원(復原)과 전승(傳承)의 차이 사실 모든 기예가 그렇지만 특히 무예는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문파에서도 기밀인지라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강하다. 심지어 세명(勢名)을 지어 붙일 때도 남들이 해독하지 못하게 자기들만 알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 문중에서 직접 배운 사람들이야 실기와 세명을 함께 익히고 외웠기 때문에 세명만 들어도 그게 무슨 동작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하지만 다른 문중 사람들은 세명만으로는 그 실기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가령 시중에 몇몇 무인이나 단체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보고 「조선세법」과 「본국검」을 복원했다고 하는데, 심하게 말해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엉터리 동작이 거의 대부분이다. 원보대로 복원은 고사하고 검법 일반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 어이없는 동작을 볼 때마다 차마 안쓰러워 절로 외면하게 된다.
대부분의 세명을 외우기 좋게 하기 위해 시어(詩語)처럼 지어 붙이기 때문에 전승자가 아닌 사람이 그걸 글자풀이로 복원을 하려다 보니 무예 동작도 아니고 춤 동작도 아닌 요상한 퍼포먼스 같은 동작이 나오는데, 원 동작과는 너무 동떨어져 도무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심지어 무예에 통용되는 전문용어들까지 문학적인 자구(字句) 뜻풀이를 하는가 하면, 터무니없이 고대사 용어와 연결시켜 유추‧해석‧비약시키는 무모함을 저지르는 딱한 이들도 있다.
솥(鼎)을 드는 격(格), 거정세(擧鼎勢)
가령 조선세법 제1세 거정격은 솥을 드는 격(格)이다. 그러니까 격법(格法)인데 하필 솥을 드는 모양새로 상대의 공격을 막는다는 뜻이다. 자, 그런데 아닌 밤중에 솥을 들어 막는 것은 무슨 일이며, 또 솥을 어떻게 들라는 말인가? 솥과 칼?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다행히 원보에 그림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으니 두 손으로(때로는 한 손으로) 이마 위에서 칼을 가로질러 막는 모양새임을 알 수 있다.
한데도 그게 왜 거정, 즉 솥을 드는 격으로 표현했단 말인가? 전승 문중에서 배우지 않은 사람이 혼자 복원한다 해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동작에 확신이 안 선다. 당연히 그에 따라 무슨 목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힘을 주고, 경우에 따라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를 알 턱이 없다. 결국 문자해독에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정확치 않은 동작을 붙들고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먼저 거정(擧鼎)에서 정(鼎)은 지금 여러분들 부엌에 있는 가마솥이 아니다. 고대 중국에는 여러 종류의 정(鼎)이 만들어졌었는데 지금도 박물관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기물(器物)이다. 우리말로는 ‘솥’으로 해석하여 밥을 짓는 가마솥을 연상하면 거기서부터 착오가 생긴다. 정(鼎)이란 사진에서처럼 고대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던 제기(祭器)의 일종이다. 크기도 다양해서 두 손으로 들 수도 없는 것에서부터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작은 것도 있다.
그 정(鼎)에 당연히 곡식이나 음식 등 제물이 담겨져 있을 터, 그걸 공손하게 두 손으로 높이 받들어 신에게 바치는 행위. 그러니까 제사지낼 때 두 손을 받들어 술잔을 바치는 것과 동일한 자세가 되는 것이다. 중도에 내용물이 쏟기지 않게 수평으로! 표두격(豹頭擊)으로 내리치는 상대의 검이나 다른 무기를 자신의 칼을 힘차게 밀어 올려 이마 위 전방에서 가로질러 막는 모양새와 닮았다 해서 거정세라 이름 붙인 것이다.
정격(正格)과 변격(變格) 물론 처음 거정세라는 글자에만 매달리면 이렇게 풀어낼 수가 여간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실기를 전승받은 사람은 동작으로 세명을 풀면 금방 그 의미가 이해가 된다. 물론 그 문중 사람이 아니어도 무학(武學)에 상당한 깊이가 있는 사람은 경험상 그 동작을 짐작해낼 수도 있다. 또는 서예의 초서처럼 설사 한 글자가 애매하다 하더라도 앞뒤 글자와의 연결로 유추해내기도 한다.
원래 두 발로 똑바로 선 자세에서 칼을 들어 올려 이마 위에서 수평으로 막는 세가 정거정(正擧鼎)이다. 거기서 칼자루를 반대로 왼쪽으로 돌려 막으면 좌거정(左擧鼎)이 되겠다. 그리고 몸을 옆으로 누이면서 밀어올려 막는 편섬거정(偏閃擧鼎)도 있다.
원보에서는 왼발이 앞으로 나가 좌궁보(左弓步) 거정을 하고 평대로 목을 베어치고 도로 물러나면서 군란으로 상대의 가운데, 즉 허리를 후려치라고 하였다. 평대는 양 어깨선을 가리키는 전문 무예용어이니 굳이 글자풀이에 매달릴 필요 없다. 연습은 처음엔 원보대로 하지만 숙달되면 변화할 수도 있다. 가령 퇴보군란이 아니라 계속 적을 밀고 나가면서 진보군란할 수도 있고, 처음부터 연속해서 퇴보하면서 초식을 펼칠 수도 있다.
실제 칼을 들고 가르치면 간단한 몇 동작 시범으로 전해줄 수 있지만, 글로만 설명하려니 이렇게 복잡하고 장황해서 초보자나 깊이가 없는 사람에겐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여겨질 염려가 많다. 그러니 이미 발간된 해범 선생님의 《본국검》책자나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에서 펴낸 동영상 교본을 보고 익힌 다음 의문점이 남으면 직접 전승자를 찾아 물어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세를 똑같이 구사한다 해도 글로는 다 설명할 수는 없는 여러 수준의 격차와 노하우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