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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마음을 닦을 것인가
- 품새 수련을 중심으로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기사입력  2011/05/0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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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태권도는 몸과 마음을 닦는 무예(무도)이다. 태권도의 기술체계 가운데 특히 품새는 몸은 물론이고 마음을 닦는 데 이상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품새를 수련하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닦아지는 것일까.
 
우리는 도장에서의 일상적 수련에 모든 수련결과를 너무 기대하는 듯하다. 물론 훌륭한 지도자의 가르침은 그렇지 못한 지도자의 그것과는 질적인 차이의 학습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도장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기대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한다.
 
품새는 내가 ‘나’를 찾아 나서는 닦음의 길이고 목표이다. 여기서 닦음이란 두 가지 뜻을 지닌 개념이다. 하나는 기술적 닦음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 정신적 닦음의 뜻을 지닌다. 수련은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 학습효과는 닦음의 질과 양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특히 우리가 말하는 몸과 마음의 닦음이 품새 수련에서 어느 수준의 학습효과를 기대한다고 할 때, 그에 상응한 조건이 따르게 마련이다. 지도자의 구령에 따라 열심히 땀을 흘리며 하는 닦음에는 신체에서 기술의 자동화라는 변화가 감지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지도자보다는 닦음의 주체인 내가 수련 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른 결과는 그 태도의 여하에 따라 판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주체인 내가 수련 시 집중력의 강도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한번 내지름과 한번 걷어참의 성실여하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든 동작에는 동작표준(규정)이 있다. 우리는 그 동작표준에 얼마큼 성실하게 반복 연습하는 가에 기술성이라는 덕목이 몸의 자동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무턱대고 힘을 쏟으며 하는 수련과 집중력과 힘, 속도에 따른 원리적 이해를 통한 닦음의 결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사지(四肢), 즉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어 그것은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그 필수적 조건은 잠재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태권도 수련 시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는가는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하나의 동작을 놓고 볼 때 사지가 가야할 길이란 동작규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듯, 그것에의 합목적적 지름길은 몸이 가는 곳에 마음이, 되레 마음이 몸을 인도하는 것일 듯하다. 하나의 동작에서 발의 길〔道〕이 있고 손의 길과 눈의 길이 모두 일치돼 움직여야 하는 것이 동작표준이다. 사지란 인체의 도구적 수단으로서 두 팔과 두 다리를 뜻한다.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마음은 몸을 다스린다고 한다. 퇴계(退溪)는 특히 몸과 마음의 관계에서 몸을 다스리는 것은 오직 마음이라고 한다. 마치 사람에게 손과 발의 사지가 있는 것과 같이 사단(四端)은 마음의 지향성으로서 역할을 한다. 사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네 가지 실마리, 즉 단서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모든 인간은 자기(self) 안에 천부적으로 이 네 가지 본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맹자가 말한 사단은 태권도인에게 아주 새겨두고 실천해야할 덕목이 된다. 품새 수련 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정확한 동작을 숙달하는 데에 이상적인 방법이 된다.
 
사단의 태권도적 풀이는 품새에서도 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에게 성실하고 품새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과 동작의 총체성은 인(仁)에서 나오는 단서이고, 정확성(올바름)을 지키는 마음은 의(義)에서 나온 단서이며, 순리(동작규정)에 따르는 마음은 예(禮)에서 나온 단서이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은 지(智)에서 나온 단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춤서 몸통지르기’를 할 때 인은 ‘주춤서 몸통지르기’가 동작의 총체성이 되고, 의는 바른 자세, 즉 주춤서기 자세와 지를 때 두 주먹의 교체, 주먹의 위치와 틀어나가는 과정과 목표가 될 것이다. 예는 주춤서기와 지르기의 동작규정이 될 것이고 지는 동작규정의 이해, 즉 앎이다. 
 
사단은 좁게는 태권도 수련 시 필히 지녀야 할 덕목이고 넓게는 일상생활에서 자기의 인격을 드러내는 기준으로서 몸소 실천해 보여야 할 미덕인 것이다. 인간이 실제로 몸에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마음에 사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엇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까?
 
맹자(孟子)는 그 예로, 별안간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가로 기어가다가 곧 빠지려는 상황을 접했을 때,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것을 측은히 여겨 건져주려는 마음이 발동하는 것을 든다. 이는 천성적으로 내재한 마음으로, 이러한 측은한 마음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인간의 마음속에 천부적으로 인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무작정 뛰어들었지만,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그 상황선 누구나 뛰어들 것” ‘지하철 의인(義人)’ 박남이 씨(2003)는 “그 때처럼 사람의 목숨이 걸린 급박한 상황이라면 누구나 저처럼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맹자가 말하는 사단이란 쉽게 말하면 우리 내면에 있는 맑디맑은 양심에서 울려나오는 네 가지 음성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가 태권도 수련에서, 특히 품새 닦음에는 사단은 동작표준에 따르는 길잡이의 역할을 해줄 뿐 아니라 몸의 기술성과 마음의 수양성을 인도하는 훌륭한 덕목이 되고 있다.
 
이 사단을 실천하는 일상성에서 동양의 가르침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유·불·도의 가르침이다. 유가에서는 과욕을, 도가에서는 무욕을, 그리고 불가에서는 무념을 말하고 있다. 과욕은 절제하고 조절하는 상태이고, 무욕은 과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욕망을 없게 하는 것이다. 불가의 무념은 무욕과 욕구를 갖는 것을 떠나 생각 자체가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렇듯 유불도 세 사상의 수행방법에서 우리가 취할 방법으로는 무욕과 다욕의 중간 형태인 과욕(寡慾), 즉 욕심을 줄이는 방법이 좋을 듯하다. 성급하게 많은 기술동작을 익히려고 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수준에 따른 마음의 지향이 이상적인 길이라는 확신이다.
 
맹자가 주장하는 ‘사단’과 그 사단을 수양하고 실행함에 또 하나의 마음의 절제 방식으로 지나친 욕심을 줄이고 절제하는 ‘과욕’이라는 수행방법은 일상적 행위에서 뿐이 아니라 품새 닦음에서도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듯하다.
 
몸이 온갖 일에 수작을 다하지만 그 몸의 주인은 마음이며, 따라서 몸을 수양하는 방법은 결국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근본이 된다. 마음을 수양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과도한 욕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과욕’과 ‘사단’은 지금도 우리들이 품새를 닦음에 있어 추구하는 덕목으로서 보편적 가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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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03 [14:52]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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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wee 2011/05/28 [21:02] 수정 | 삭제
  • 품세를 통하여 마음을 딱는 방법을 말씀하셧는데 좀더 명확하게 설명을 알아듣시쉽게 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되겟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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